미국으로 입양된지 40여 년 만인 18일 친어머니를 만나게 된 박동수 씨(45·벤저민 박)는 정부 관계자들에게 감사 표시를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살고 있는 박 씨는 이날 화상으로 어머니 이애연 씨(83)와 친형 박진수 씨를 만났다. 친척집에 맡겨졌던 박 씨가 1984년 5살의 나이로 엄마를 찾겠다면서 집을 나가 실종된지 40여 년 만이었다. 박 씨는 고아원에 머물다가 입양기관인 대한사회복지회를 거쳐 미국으로 입양돼 살아왔다. 당장 국내로 입국할 수 없었던 박 씨가 “가족들의 얼굴만이라도 먼저 보고싶다”고 해서 어머니 이 씨가 입원 중인 요양병원에서 화상으로 만나게 된 것.
박 씨 가족의 상봉은 재외동포청과 경찰청, 아동권리보장원이 합동으로 진행하는 ‘무연고 해외입양인 유전자 검사제도’를 통해 이뤄졌다. 박 씨가 2012년 가족을 찾고싶어 국내 경찰서를 방문해 등록해둔 유전자가 박 씨 가족이 2021년 등록한 유전자와 정확하게 일치했던 것이다. 정부는 2020년부터 재외공관 34곳을 통해 해외 입양된 한국인의 유전자를 채취한 뒤 한국의 실종자 가족과 대조하는 ‘유전자 검사제도’를 시행해왔다. 이 제도를 통해 가족을 찾은 사례는 이번이 다섯번 째다.
경찰청과 재외동포청에 따르면 박 씨는 1980년 남매들과 함께 경남 김해의 친척집에 잠시 맡겨졌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남매들은 1984년 “직접 엄마를 찾아가겠다”고 친척집을 나섰다가 실종됐다. 박 씨는 고아원에 머물다가 입양기관인 대한사회복지회를 거쳐 이듬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가족을 찾고 싶었던 박 씨는 대학교 3학년이었던 2001년 한국으로 입국해 입양기관을 찾아갔다. 하지만 입양기관에서는 박 씨의 가족을 찾을 만한 단서를 발견할 수 없었다. 박 씨는 2012년 다시 한국으로 입국해 경찰서를 찾아가 유전자 정보를 남겼다. 경찰에 유전자 정보를 남겨두면 언젠가 가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박 씨의 큰형 박진수 씨가 “실종된 동생들을 찾고싶다”며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 것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21년 10월 무렵이었다. 큰형 박 씨는 당시 실종신고를 하면서 함께 거주하고 있던 어머니의 유전자를 채취해 경찰서에 등록했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022년 8월 “박동수 씨와 어머니 이 씨가 친자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내렸다.
경찰은 이때부터 미국에 거주 중인 박 씨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집중 수사에 나섰다. 당시 경찰이 가진 정보는 박 씨가 2012년 국내 어학당에 다닐 당시 사용했던 전자 메일 주소 밖에 없었다. 경찰은 출입국외국인청의 협조를 통해 박 씨의 미국 내 과거 거주지를 확인했고, 주 시카고 대한민국 총영사관과 협조를 거쳐 박 씨의 주소를 파악했다.
이기철 재외동포청장은 “경찰청, 재외공관과 더욱 협력해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하는 모든 해외 입양동포가 가족 찾기를 통해 정체성을 회복하고, 한국이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여전히 기억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유전자 분석 제도는 첨단 유전기술을 통해 장기실종아동 등을 신속하게 발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제도”라며 “이번 사례가 더 많은 실종아동을 찾는 기폭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가족 상봉 이후 개명, 가족관계 정리, 심리상담 등 사후서비스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친모와 친형을 찾게 된 것을 축하한다. 그런데 '1984년에 고아원에 머물다가 입양기관인 대한사회복지회를 거쳐 미국으로 입양돼 살아왔다'라고 한다. 1984년이면 전쟁 직후도 아니고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한 때라서 극빈이 아니다. 납치가 아니라면 길 잃은 아이를 경찰서 등에서 보호하다가 부모를 찾아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고안원에 있다가 미국으로 입양이라니 지나친 처사였다. 혹자는 고아원과 복지회가 입양 커넥션이 있다는 의혹을 말하고 있다. 키워준 미국인 양부모가 고맙다. 그러나 만약에 입양에 검은 의혹이 있었다면 천벌 받는다.
친모와 친형을 찾게 된 것을 축하한다. 그런데 '1984년에 고아원에 머물다가 입양기관인 대한사회복지회를 거쳐 미국으로 입양돼 살아왔다'라고 한다. 1984년이면 전쟁 직후도 아니고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한 때라서 극빈이 아니다. 납치가 아니라면 길 잃은 아이를 경찰서 등에서 보호하다가 부모를 찾아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고안원에 있다가 미국으로 입양이라니 지나친 처사였다. 혹자는 고아원과 복지회가 입양 커넥션이 있다는 의혹을 말하고 있다. 키워준 미국인 양부모가 고맙다. 그러나 만약에 입양에 검은 의혹이 있었다면 천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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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8 21:04:27
친모와 친형을 찾게 된 것을 축하한다. 그런데 '1984년에 고아원에 머물다가 입양기관인 대한사회복지회를 거쳐 미국으로 입양돼 살아왔다'라고 한다. 1984년이면 전쟁 직후도 아니고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한 때라서 극빈이 아니다. 납치가 아니라면 길 잃은 아이를 경찰서 등에서 보호하다가 부모를 찾아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고안원에 있다가 미국으로 입양이라니 지나친 처사였다. 혹자는 고아원과 복지회가 입양 커넥션이 있다는 의혹을 말하고 있다. 키워준 미국인 양부모가 고맙다. 그러나 만약에 입양에 검은 의혹이 있었다면 천벌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