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 가족 보려 방 얻었어요”…찐팬들이 말하는 푸바오 덕질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2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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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에 걸터앉아있는 푸바오. 4월 중국 송환 예정인 푸바오는 3월 3일까지만 일반에 공개된다. 용인=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190분.

20일 오후 3시 30분 경 에버랜드 판다월드 앞에 안내된 대기 시간이다. 지금부터 기다려도 3시간 10분을 기다려야 판다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셈이다. 한 타임에 80명이 들어가는 판다월드는 팀 당 5분의 관람 제한 시간이 정해져 있다. 단순 계산으로도 1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는 셈이다. 에버랜드에 따르면 이 날 판다랜드의 방문객은 총 7000여 명에 달했다.

4월 초 중국 송환이 결정된 판다 푸바오(福寶)를 향한 ‘마지막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에버랜드 측은 검역 및 적응을 이유로 다음달 3일까지만 관람객들에게 푸바오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실질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 채 열흘도 남지 않은 셈이다.
국내 첫 자연 번식 판다인 푸바오는 2020년 7월 태어난 이래 ‘용인 푸씨’, ‘푸공주’ 같은 별명이 붙으며 관람객들의 인기를 끌었다. 특히 사육사 강철원, 송영관 씨와의 교감이 유튜브 등을 통해 중계되며 푸바오의 인기는 판다 가족과 사육사들을 포함하는 ‘바오 가족’으로까지 확장됐다.
푸바오와 바오 가족의 인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본보는 20일 에버랜드에서 푸바오 ‘찐팬(진짜 팬을 의미하는 유행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푸바오 보기 위해 방 얻었어요”
충청도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최효진(가명) 씨는 푸바오의 송환 소식을 듣고 지난해 12월부터 에버랜드가 위치한 경기 용인시에 임시 거처를 얻어 매일 푸바오를 보러 온다. 자체 푸바오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는 최 씨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야생동물을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직장인 나경민 씨(25)는 푸바오 팬 커뮤니티 ‘푸바오 갤러리’ 부운영자를 역임하며 지하철 생일 축하 광고판 등 이벤트를 주도했다. 팬 커뮤니티 운영 경험을 토대로 외신 인터뷰도 진행했다. 지난해 11월부터 매주 연차를 내면서 푸바오를 보러 오는 직장인 박미진 씨(32)는 푸바오 사진이 들어간 손거울 굿즈도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1년 전 유튜브로 우연히 푸바오 영상을 접한 장시온 양(12)는 두 동생과 매일 푸바오 영상을 보며 수의사를 장래희망으로 결정했다.

이들 모두 푸바오와 바오 가족(판다 가족 및 사육사들)이 보여주는 스토리에 빠졌다. 푸바오의 엄마인 아이바오가 새끼를 돌보는 모습은 대리 육아를 방불케 했다. 특히 판다들의 할아버지로 불리며 ‘강바오’, ‘송바오’ 별명을 얻은 강철원, 송영관 사육사들과 푸바오의 교감은 가족과도 같은 유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푸바오에 빠지기 전부터 연예인,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의 팬 활동을 해왔다는 박미진 씨는 “사람 사이에서도 얻기 힘든 유대감을 동물에게서 받는다”고 말했다. 나경민 씨도 “푸바오가 사육사들과 교감하는 모습을 보면 대가 없는 사랑이 있다는 점을 배우게 된다”며 “푸바오 덕질이 대가 없는 사랑인데 이 사랑을 하다 보니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푸바오를 사랑하는 삼남매가 에버랜드 판다월드 내 교육장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장시온(14), 장효제(10), 장시유(12) 어린이. 가족 제공
푸바오를 사랑하는 삼남매가 에버랜드 판다월드 내 교육장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장시온(14), 장효제(10), 장시유(12) 어린이. 가족 제공
쑥쑥 자라는 푸바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대리 육아에 가까운 만족감을 줬다는 의견도 있었다. 장시온 양은 “조그마할 때부터 (푸바오를) 봤는데 그 조그만 동물이 쑥쑥 크니 더 귀엽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최효진 씨도 “푸바오가 태어날 때부터 모든 순간을 처음으로 함께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라고 밝혔다.

송영관 사육사는 “저희와 어미 판다가 푸바오를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 귀여운 아이에 대한 대리만족을 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0년 탄생 당시 197g에 불과했던 푸바오의 몸무게는 현재 103kg에 달한다.

○“푸바오는 건전한 가치관 알려준 스승”
이들에게 ‘나에게 푸바오는 OO다’를 물었더니 다양한 답이 돌아왔다. 나 씨는 푸바오가 건전한 가치관을 깨닫게 해준 삶의 스승이라고 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로 서고, 나무에 오르고, 대나무를 소화시키고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은 모든 성장의 순간에 누구보다 최선을 다한 푸바오”라며 “그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사는 것 자체의 즐거움을 잊고 결과만을 보면서 산 거 아닌지 되돌다봤다”고 했다.

박 씨는 푸바오는 행복을 주는 삶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그는 “너무 힘든 직장 생활 속에서도 푸바오를 생각하면서 견뎠다”고 했다.

에버랜드에서 푸바오를 볼 수 있는 기간은 채 열흘도 남지 않았다. 매일같이 푸바오를 만나던 팬들 역시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다.

에버랜드가 홈페이지에 올린 푸바오 송별 이미지.
에버랜드가 홈페이지에 올린 푸바오 송별 이미지.
본보와 만난 푸바오 팬들은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결국엔 푸바오를 보내줘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최 씨는 “(푸바오가) 떠난다면 감당이 안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푸바오가 적응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장시온 양도 “여기보다 좋은 환경에서 푸바오가 잘 살 수 있다면 그곳에서 행복하라고 빌어주고 싶다”고 했다.

푸바오와 정을 쌓아온 사육사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나 씨는 “저보다 더 푸바오를 많이 봤을 사육사분들이 더 슬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도 “사육사분들이 말씀하신대로 (송환이) 푸바오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여기려 한다”고 말했다. 송영관 사육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3년 간 노력하고 여러 가지를 제공했기에 적응하리란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강철원 사육사는 푸바오의 중국어 지시 적응을 위해 직접 중국어를 공부해 요즘엔 중국어로 말을 걸고 있다.

15일 서울 홍대입구역 공항철도 경의선 방향 통로에 온라인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 푸바오갤러리 운영진이 팬들과 비용을 모금해 내건 광고. 이 광고는 내달 13일까지 게시된다. 뉴스1
송환 이후에도 팬들의 사랑은 이어질 전망이다. 나 씨는 나중에 푸바오를 보러갈 수 있도록 적금을 모으고 있다. 박 씨도 “중국에 있는 지인들을 통해 푸바오를 보러가는 방법을 생각중이다”라고 했다.

푸바오는 2021년 1월 4일 공개 이래 약 540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22일 기준 누적 굿즈 판매갯수만도 약 270만 개, SNS 내 ‘#푸바오’ 언급량은 20만 개에 달한다. 현재 강철원, 송영관 사육사 등 판다 할아버지들은 푸바오가 판다월드에서 즐거웠던 순간을 기억하도록 평소 좋아했던 대나무 장난감을 방사장 안에 만들어 놓은 상태다.

에버랜드 측 역시 판다 가족과 사육사의 이야기를 담은 신간 에세이집 ‘나는 행복한 푸바오 할부지입니다’를 27일 출간한다. 푸바오를 볼 수 없는 4일부터는 푸바오 특별 영상 상영회를 에버랜드 내 실내 극장에서 매일 2회 씩 상영 예정이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송환 이후에도 푸바오의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고 말했다.
용인=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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