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 대통령이 판사에게 혼난 까닭은[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22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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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할까요?”

테드 번디에서 바바라 월터스, 롤리타까지
미국인들의 뇌리에 남는 법정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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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지방법원에서 열린 자산가치 조작 재판에 출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 캡처


The Donald Trump show is over. This was nothing more than a political stunt.”
(도널드 트럼프 쇼는 끝났다. 그의 증언은 정치 스턴트에 지나지 않았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판에 출석했습니다. 금융권에서 유리한 대출을 받기 위해 자산가치를 부풀렸다는 의혹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산가치 일부가 조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증언 시간의 90% 이상을 정치적 주장과 업적 홍보에 할애했습니다. 죄도 없는 사람을 재판에 나오게 한 검사와 판사를 향해 “crazy”(미친), “fraud”(사기꾼)이라고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이 계속되자 판사가 변호인에게 경고했습니다. “Can you control your client? This is not a political rally.”(당신 의뢰인 좀 통제해달라. 여긴 정치 유세장이 아니다)

폭풍 같았던 4시간이 지나고 트럼프 대통령이 법정을 빠져나가자 그를 기소한 뉴욕 검찰총장이 한 말입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기획하고 출연한 쇼’라는 의미입니다. ‘stunt’(스턴트)는 스턴트맨이 연상돼 ‘대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람의 이목을 끌기 위한 행동’을 말합니다. 셀럽들이 언론에 나오고 싶어서 돌출 행동을 벌이는 것을 ‘publicity stunt’(퍼블리시티 스턴트)라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정치적 스턴트, 즉 내년 대선을 앞두고 표를 모으기 위한 계산된 연기라는 것입니다.

법정은 죄의 유무를 따지는 신성한 공간입니다. 동시에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 드라마에서 보듯이 미국에서 재판은 ‘오락’ ‘쇼’의 요소를 중시합니다. TV 진행자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잘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미국인들이 즐겨 쓰는 ‘courtroom theater’라는 단어는 법정은 ‘무대’이고, 판사 변호사 피고 등 참가자들은 ‘공연’을 한다는 뜻입니다. 법정에 TV 카메라가 허용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미국 범죄 재판에서 유명한 장면들을 알아봤습니다.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오른쪽)가 재판 중에 캐럴 앤 분(왼쪽)에게 청혼하는 모습. A&E 방송 캡처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오른쪽)가 재판 중에 캐럴 앤 분(왼쪽)에게 청혼하는 모습. A&E 방송 캡처


Carol, do you want to marry me?”
(캐럴, 나와 결혼하고 싶어요?)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는 엽기적인 범죄 행각만큼이나 재판 과정도 화제였습니다. 그는 재판에서 자신이 직접 변호사로 나섰습니다. 어느 날 나비넥타이를 매고 법정에 나왔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캐럴 앤 분이라는 여성을 증인으로 불렀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라는 번디의 질문에 분은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번디의 입에서 나온 청혼 멘트입니다.

미국인들은 청혼 멘트를 던지는 것을 ‘pop the question’(질문을 터뜨리다)이라고 합니다. 번디가 터뜨린 질문은 일반적인 청혼 멘트 “will you marry me?”(나와 결혼해 줄래요)과 조금 달랐습니다. 분이 더 결혼을 원하는 뉘앙스입니다. 분은 번디의 무죄를 믿는 여성 팬 중 한 명이었습니다. 분이 웃으며 “yes”라고 하자 번디는 “나도 당신과 결혼하겠다”라고 답했습니다. 플로리다 법에 따라 번디-분 커플의 결혼이 성립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즉석 결혼식은 철저히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번디는 아는 기자에게 부탁해 결혼식 의상을 준비하고 결혼반지를 뉴욕의 보석전문점 티파티에서 주문했습니다. 분은 결혼식 공증인을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방청객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결혼식 장면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법정에는 축하 대신 침묵이 흘렀습니다. 번디가 즉석 결혼식을 올린 재판은 그가 12세 소녀를 성폭행 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재판이었습니다. “번디 나르시시즘(자아도취)의 극치”라는 비판이 쇄도했습니다.

아내 살해 혐의로 수감 중인 배우 로버트 블레이크(왼쪽)를 감옥에서 인터뷰한 바바라 월터스(오른쪽). ABC 방송 캡처
아내 살해 혐의로 수감 중인 배우 로버트 블레이크(왼쪽)를 감옥에서 인터뷰한 바바라 월터스(오른쪽). ABC 방송 캡처


Barbara Walters, God bless you, darling. I’d have never gotten out of the joint without you.”
(바바라 월터스, 달링,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당신이 아니었으면 감옥에서 못 나올 뻔했다)
OJ 심슨 사건 7년 뒤 비슷한 남자 배우 아내 피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2001년 로버트 블레이크 아내 피살 사건입니다. 블레이크는 1970년대 터프한 역할을 많이 맡은 유명 배우입니다. 바니 리 베이클리라는 여성이 블레이크와 결혼 2년 뒤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부부가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하고 나온 뒤 베이클리가 차 안에서 머리에 총을 맞은 채 발견됐습니다. 블레이크는 베이클리가 총을 맞은 시각에 레스토랑에 두고 나온 호신용 총을 가지러 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블레이크가 과거에 베이클리 청부살인을 의뢰했던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체포했습니다.

여기서 여성 언론인 바바라 월터스가 등장합니다. 월터스는 재판을 앞둔 블레이크를 감옥으로 찾아가 인터뷰했습니다.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은 블레이크는 “늙어서 사람을 죽일 힘도 없다”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베이클리와의 사이에 낳은 한 살짜리 딸에게 절절한 사랑도 고백했습니다. 블레이크 변호인단은 재판이 시작되자 모두 변론 단계부터 인터뷰 영상을 집중적으로 틀었습니다.

블레이크는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기자회견에서 그가 가장 먼저 고마움을 전한 사람은 가족도 변호사도 아닌 월터스였습니다. 월터스를 “달링”이라고 부르며 “감옥에서 나온 것은 당신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joint’(조인트)는 ‘join’(잇다)의 형용사입니다. 합동 콘서트를 ‘joint concert’라고 합니다. ‘관절’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관절 약을 ‘joint supplements’(관절 영양제)라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별로 좋지 않은 의미로 많이 씁니다. 우선 블레이크가 말한 것처럼 ‘감옥’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큰 방과 이어진 음습한 방이라는 의미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듯이 마리화나를 담배처럼 돌돌 말아서 피우는 것을 ‘조인트’라고 부릅니다. 담배 종이를 이어서 말기 때문입니다.

월터스는 블레이크 인터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블레이크 편을 든 것은 아니었지만 인터뷰라는 포맷 자체가 블레이크에게 일방적으로 자기주장을 밝힐 기회를 줬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는 블레이크를 “humanize”(인간화) 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는 월터스, 다이앤 소여, 코니 정 등 유명 여성 앵커들 사이에 인터뷰 경쟁이 극에 달했던 때였습니다. 월터스는 경쟁 욕심에 블레이크의 주장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입니다. 블레이크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베이클리 가족으로부터 그녀 사망에 책임이 있다는 민사 소송을 당했습니다. 위자료 300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고 파산해 은둔생활을 하다가 올해 초 사망했습니다.

‘롱 아일랜드 롤리타’ 사건 14년 후 TV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재회한 3명. 오른쪽부터 불륜남 아내에게 총을 쏜 에이미 피셔, 총에 맞은 메리 조 부터퓨코, 불륜남 조이 부터퓨코. CBS 방송 캡처
‘롱 아일랜드 롤리타’ 사건 14년 후 TV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재회한 3명. 오른쪽부터 불륜남 아내에게 총을 쏜 에이미 피셔, 총에 맞은 메리 조 부터퓨코, 불륜남 조이 부터퓨코. CBS 방송 캡처


She is not a ‘Lolita.’ This is a sick girl. This is not a seductress.”
(그녀는 롤리타가 아니다. 아픈 여자다. 유혹녀가 아니다)
1950년대 소설 ‘롤리타’는 중년 남성의 어린 소녀에 대한 성적 집착을 그린 내용입니다. 1992년 ‘롱 아일랜드 롤리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주인공은 뉴욕 롱 아일랜드에 사는 에이미 피셔라는 16세 여고생. 조이 부터퓨코라는 35세 남성과 불륜관계를 맺고 그의 아내 메리 조 부터퓨코에게 총을 쏜 사건입니다. 대담하게 불륜남의 집으로 찾아간 피셔는 아내가 상대해주지 않자 얼굴을 향해 총을 발사했습니다.

1990년대 풍요로운 미국 사회의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불륜, 젊은 여성, 총 등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모든 요소를 갖춘 이 사건은 한 해 동안 영화가 3편이나 만들어질 정도로 화제의 중심이었습니다. 당시 17세의 드류 베리모어도 피셔로 출연했습니다. 메리 조 부터퓨코는 12시간이 넘는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지만, 총알 파편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 얼굴이 비뚤어지고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습니다.

피셔는 1급 상해죄로 15년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7년 만에 열린 형량 재조정 재판에 메리 조 부터퓨코가 증인으로 나왔습니다. 피셔의 형량 감축을 불허해달라는 요청을 하러 온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형량을 줄여달라는 호소였습니다. 사건의 반전에 방청석은 술렁거렸습니다. 메리 조 부터퓨코는 총상 후유증으로 어눌해진 말씨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법정에 어울리지 않는 ‘롤리타’라는 단어가 나오자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이미 가석방 조건을 채운 피셔는 즉시 석방됐습니다.

메리 조 부터퓨코는 불륜녀를 용서한 것도 모자라 감형까지 도와준 것에 대해 “총상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피셔는 일찍 감옥에서 나왔지만, 불륜녀라는 악명 때문에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성인영화 배우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부터퓨코 부부는 이혼했습니다.

명언의 품격
그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 ‘앵무새 죽이기’의 재판 장면. 위키피디아
그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 ‘앵무새 죽이기’의 재판 장면. 위키피디아
미국은 법정 공방을 흥미진진하게 다루는 재주가 뛰어납니다. 미국인들이 꼽는 최고의 법정 장면은 1960년 출간된 하퍼 리 소설 ‘To Kill A Mockingbird’(앵무새 죽이기)입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1930년대 앨라배마주에서 백인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가 백인 소녀를 강간한 혐의를 받는 흑인 청년을 변호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그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등 3개 부문에서 수상했습니다. 이 작품의 정점은 핀치의 최종 변론 장면입니다. 가장 유명한 구절입니다.

This case is as simple as black and white.”
(이 사건은 흑백처럼 간단하다)
‘black and white’는 ‘흑백’을 말합니다. 흑백은 색맹인 사람도 구별할 수 있는 정반대의 색깔입니다. ‘확실한’ ‘복잡하지 않은’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성격을 말할 때 “he sees things in black and white”이라고 하면 “그는 흑백으로 사물을 본다”라는 뜻입니다. 좋고 싫음이 확실한 똑 떨어지는 성격을 말합니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there is no black, no white — only shades of grey”라는 격언도 있습니다. ‘grey’(회색)는 ‘black and white’의 반대 개념으로 불확실성을 말합니다. 인생은 흑백 논리로 구분할 수 없고, 수많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라는 뜻입니다.

핀치의 ‘black and white’ 구절이 유명한 것은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 이번 사건은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를 밝히는 것은 흑백 색깔처럼 간단한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번 사건은 흑백이라는 인종적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무죄 입증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의미입니다. 편견과 차별이 끼어들기 때문입니다. 핀치는 백인 배심원단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압니다. 확실한 법적 증거로만 사건을 판단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실전 보케 360
1985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끝)이 허베이성 당서기 시절 미국 아이오와를 방문했을 때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1985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끝)이 허베이성 당서기 시절 미국 아이오와를 방문했을 때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미중 갈등이 첨예한 시점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아이오와 친구들’(friends from Iowa)을 통해서입니다. 1985년 허베이성 당서기 시절 시 주석은 축산 대표단을 이끌고 아이오와 머스카틴을 2주 동안 방문했습니다. 미국의 선진 농업 시스템을 배우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스타트랙’ 포스터가 걸린 가정집에서 머무르며 미국 문화를 접했습니다. 각자 음식을 가져오는 ‘potluck’(팟럭 파티)에 참석하고 영화관에도 갔습니다. 2012년 차기 지도자로 내정됐을 때 미국을 방문해 아이오와를 찾았습니다. 자신을 환대했던 주민들을 다시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To me, you are America.”(나에게는 당신들이 미국이다)

시 주석이 그 아이오와 친구들을 다시 만납니다. 11∼1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회의(APEC) 정상회의 만찬에 초청한 것입니다. 주미 중국대사관으로부터 초청 연락을 받은 85세의 사라 랜드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We can’t figure it out. We don’t even know why he likes us!”
(모르겠어요. 왜 그가 우리를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figure’(피규어)는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원래 ‘형태’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피겨 스케이팅’은 얼음 위에서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어낸다는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여기서 파생해 ‘인물’이라는 뜻도 있고, ‘숫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역사적 위인’을 ‘historical figure’라고 합니다. ‘모형 장난감’(피규어)을 말하기도 합니다. 명사보다 동사로 많이 씁니다. ‘figure out’은 형체를 추측하는 것이므로 ‘이해하다’라는 뜻입니다. ‘can’t figure it out’은 “이해가 안 된다”라는 뜻입니다. 미국인들이 일상 대화에서 자주 하는 말로 ‘go figure’가 있습니다. 직역하면 ‘가서 이해하라’라는 뜻입니다. 놀랍거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을 접했을 때 ‘그게 이해가 돼?’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랜드 할머니가 “can’t figure it out”이라고 한 것은 왜 시 주석이 계속 아이오와 친구들에게 호의를 베푸는지 진짜 이해가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만큼 기쁘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0년 2월 17일 소개된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 재판입니다. 영화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와인스틴은 2017년 성폭행 전력이 폭로되면서 피고의 신분으로 전락했습니다. 50여 명이 넘는 여성들이 와인스틴으로부터 성추행 성폭행을 당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습니다.

▶2020년 2월 17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217/99734191/1

재판을 위해 뉴욕 법원에 들어가는 하비 와인스틴(왼쪽). 위키피디아
영화 ‘기생충’을 만든 봉준호 감독이 미국 홍보 투어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2014년 ‘설국열차’ 미국 개봉 때 와인스틴은 상영 시간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25분 분량을 자르라고 요구했습니다. 봉 감독이 거부하자 괘씸하게 여긴 와인스틴은 개봉 극장을 줄였습니다. 6년이 지난 지금 봉 감독은 아카데미가 인정한 거장이 됐고, 와인스틴은 성폭행 혐의로 뉴욕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신세입니다. 와인스틴 재판에서 나온 발언들입니다.

I wanted to pretend it never happened.”
(나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가장하고 싶었다)
첫날 재판에는 6명의 여성이 출석해 와인스타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5번째 증인으로 나온 여배우 애너벨라 쇼라. 수치심과 모욕감이 너무 커서 성폭행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다고 합니다. 다른 여성들도 비슷한 증언을 했습니다.

He treated women who he tricked into entering his lair like ants he could step on without consequences.”
(그는 자신의 소굴로 꼬드겨 데려온 여성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밟아 죽일 수 있는 개미처럼 취급했다)
이번 재판에서는 증인뿐 아니라 검사와 변호사도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맨해튼 검찰의 조앤 일루지 오번 검사는 최종 변론에서 와인스틴을 ‘우주의 제왕’(master of the universe)에 비유했습니다. 여성들을 개미 취급했다는 것입니다.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을 ‘개미(ants) 위에 서다(step on)’라고 합니다. ‘lair’(러)는 ‘은신처’를 말합니다.

I would never put myself in a position to be sexually assaulted.”
(나 같으면 성폭력을 당할 소지가 있는 상황에 처하지 않는다)
도나 로투노 변호사가 와인스틴 변호를 맡았습니다. 성범죄 혐의를 받는 부자 남성들을 무죄 방면시켜 주는 것이 전문인 변호사입니다. 그녀는 최종 변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처럼 현명한 여성은 성폭행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범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피해자 책임론입니다. ‘put oneself in position’은 ‘상황에 자신을 놓다’ ‘상황에 처하다’라는 뜻입니다. ‘put yourself in his position’은 ‘네가 그의 상황에 처해 봐라’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해봐라’라는 뜻입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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