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위기 제주 마을공동목장 활로 찾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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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 분포
마을이 공동 관리하는 문화 유산
목축업 쇠퇴로 최근 위기 맞아
보존-지원 위한 연구용역 착수

제주 서귀포시 마을공동목장 풍경. 독특한 공동체 목축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제주 마을공동목장이 세금 부담과 개발 압력 등에 따른 해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용역이 진행된다. 다큐제주 제공
제주 서귀포시 마을공동목장 풍경. 독특한 공동체 목축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제주 마을공동목장이 세금 부담과 개발 압력 등에 따른 해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용역이 진행된다. 다큐제주 제공
초지 등 공유자원에 대해 각 개인이 자신의 최대 이익만을 추구할 때 파멸에 이를 수 있다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주장이 있다. 미국 생물학자인 개릿 하딘은 마을 초지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소 떼를 초지에 풀어놓게 되고, 그 결과 초지가 파괴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럼은 이해 관계자들의 조정을 통해 공유지의 비극 문제를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런 논리와 논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제주 ‘마을공동목장’이다. 한라산 중산간 지역(해발 200∼600m)에 대부분 분포한 마을공동목장은 마을회나 조합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다. 자체 규칙과 규약을 만들어 운영하는 등 제주 특유의 목축문화를 간직한 유산이다.

하지만 마을공동목장은 목축업 쇠퇴와 과도한 세금 부담, 개발 압력 등으로 해체 위기를 맞고 있다. 제주도는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제주대 산학협력단에 마을공동목장의 보존과 지원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하고 최근 착수보고회를 개최했다. 그동안 논의만 무성했던 마을공동목장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접근이다.

이번 용역은 마을공동목장 조합원의 고령화, 양축농가 감소, 세금 부담 등으로 목장 운영에 대한 불안이 가중된 것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용역비 6600만 원을 들여 올 9월부터 내년 6월까지 연구조사가 이뤄진다. 마을공동목장에 대한 △지원 방안 △법률 및 제도 개선 △목장 특성별 이용 사업 △지원을 위한 논리 등을 마련할 예정이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자리 잡은 광활한 마을공동목장은 기후위기 시대에 지하수를 품거나 탄소흡수원 등으로 생태적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환경이나 관광 등의 가치도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부 마을공동목장은 재산세 등을 충당하기 위해 조림이나 휴양림 조성 등 수익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마을공동목장은 일제강점기에 제주의 목축 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목장 조합을 설립한 것이 시초다. 일제가 토지조사와 임야조사 등을 거쳐 수익 창출을 위해 조선시대 국영 목장으로 쓰던 곳을 임대하거나 매각한 것이다. 1930년대 조직된 목장 조합만 120여 개에 달했다. 농업의 기계화 등으로 목축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마을공동목장은 방치되거나 사유화의 과정을 거쳤다. 골프장이나 리조트 단지 조성을 위해 상당한 면적이 매각됐다.

마을공동목장은 1993년 114곳에서 2004년 75곳, 지난해 말 현재 51곳으로 줄었다. 현재 마을공동목장의 면적은 5358㏊다. 이 가운데 국유지는 243㏊, 공유지는 1049㏊, 사유지는 4066㏊로 조사됐다. 전체 조합원은 7000여 명으로, 마을공동목장 가운데 32곳은 직영을 하고 나머지 19곳은 임대를 내줬다.

마을목장연구 전문가인 강만익 박사(제주제일고 교사)는 “마을공동목장은 특유의 목축공동체를 계승하고 있지만 경계돌담(잣성), 급수장, 진드기 구제장 등 목축 관련 자원이 방치되거나 사라지는 상황에 놓였다”며 “마을공동목장마다 여건이 달라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이번 용역은 의미가 있는 시도”라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마을공동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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