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연금개혁, 국회 아닌 국민 설득해야 [기자의 눈/이지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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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운·정책사회부
이지운·정책사회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가 이번 주 중 산하 민간자문위원회의 연금개혁안 초안을 보고받을 예정이다. 16인의 연금 전문가들이 석 달 넘게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지만 높은 점수를 받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혁의 ‘방향타’ 역할을 할 이 초안이 신통치 않으면 지난 정부에서 실패한 연금개혁이 이번에도 표류할 가능성이 커진다.

일단 지각 제출이다. 원래 제출 시한은 1월 말이었지만 자문위원들이 1박 2일 끝장토론을 벌이고도 합의점을 찾지 못해 한 달을 늦췄다. 장고(長考)한 만큼 충실한 개혁안이 담기기를 바랐으나 오히려 ‘맹탕’ 보고서가 될 모양이다. 연금특위 여야 간사의 주문에 따라 연금개혁의 핵심인 모수개혁, 즉 국민연금 보험료율(내는 돈)과 소득대체율(받는 돈) 조정 방안은 초안에서 빠지게 됐다. 군인·사학·공무원 등 직역연금과의 연계, 퇴직연금 강화 등 구조개혁의 방향성이 담기겠지만 장기 과제일 뿐 ‘급한 불’을 끄는 대책이 되기 어렵다.

김연명 민간자문위 공동위원장은 최근 한 방송 인터뷰에서 “모수개혁이 집을 수리하는 것이라면, 구조개혁은 집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낡아빠진 집을 수리하는 것보다 아예 부수고 새로 짓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취지다. 맞는 말이다. 현행 공적 연금 제도의 문제가 단순히 저출산 고령화 추세를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집’이라는 것뿐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현행 국민연금제도는 낡은 집일 뿐만 아니라 적자로 돌아서기까지 18년밖에 남지 않은 ‘불난 집’이다. 일단 불길부터 잡아야 수리든 재건축이든 할 수 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자문위가 꾸려진 뒤 3개월 가까이 별말이 없던 연금특위는 8일 돌연 “구조개혁에 집중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보험료·소득대체율 조정은) 정부가 10월에 국민연금 종합 운영 계획을 내면 국회가 받아서 최종 결정할 사안”이라고 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심’에 민감한 국회가 결국은 “더 내라”는 연금개혁에 선을 그을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국회 연금특위는 국민 500명이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를 꾸리겠다고 했다. 국민이 직접 연금개혁의 방향과 수위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취지인데, 정작 국민에겐 판단을 위한 정보와 근거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 자문위원 16명이 합의해 하나의 개혁안을 만들기 어렵다면, 자문위에서 거론된 주장과 자료들을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이 판단을 내릴 근거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제 자문위원들이 설득해야 할 대상은 ‘선 긋기’에 바쁜 국회가 아니라 연금의 고객이자 주인인 국민들이다.


이지운·정책사회부 기자 easy@donga.com
#연금개혁#연금특위#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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