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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희생자 더 못살린 내가 죄인”… “정쟁 멈추고 진상 밝혀야”

입력 2022-11-29 03:00업데이트 2022-11-2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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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한달… 남겨진 사람들이 말하는 그날 이후
배우 이지한 유족 “1달만에 아들 꿈”
클럽 직원 “구조 못한 여성 안 잊혀”
유족들 “협의체 만들어 목소리 낼것”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 한편에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 메모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전날 밤 포스트잇과 국화 등이 비에 훼손되지 않도록 비닐로 덮어 놨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 한편에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 메모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전날 밤 포스트잇과 국화 등이 비에 훼손되지 않도록 비닐로 덮어 놨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오늘(28일) 새벽 지한이가 한 달 만에 처음 우리 부부 꿈에 나왔어요. 시간이 지나면 슬픔이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는데 갈수록 더 생각이 납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세상을 떠난 배우 이지한 씨의 아버지는 2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하며 오열했다. 이 씨 아버지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윗선에 대한 경찰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정치인들은 참사를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만 이용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망자 158명과 부상자 196명 등 총 35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 한 달이 지났다. 취재팀은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과 간신히 목숨을 건진 생존자, 당일 구조를 도운 목격자 등 8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희생자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었다.
○ “아직 생생한 참사, 악성 댓글에 마음 아파”
충북 서산시에 거주하는 고등학생 유성주 군(16)은 친구 최승헌 군(16)과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을 찾았다가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 갇혔다. 인파에 깔린 유 군은 구조대원 손을 잡고 겨우 빠져나왔고, 최 군은 앰뷸런스 침대 위에서 정신을 차렸다.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감도 잠시, 유 군은 참사 후 이틀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당일 인파 사이에 끼여 마비됐던 오른 다리 역시 아직 감각이 온전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유 군은 “뒤에 있던 외국인을 끝까지 못 구하고 나온 게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며 “여전히 잠자리에서 최소 30분 정도는 뒤척여야 잠들 수 있다”고 했다. 친구 최 군은 “등하굣길에 버스에 사람이 많으면 사고 당시 경험이 떠오른다”며 “상담을 받으면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지만 희생자들에 대한 악성 댓글을 볼 때마다 마음이 괴롭다”고 말했다.
○ “누구도 구하지 못했다” 죄책감 호소
사고 현장 인근 클럽 직원 이상현 씨(24)는 당일 인파가 몰리자 문을 열어 대피를 돕고 구조에 동참했다. 하지만 이날 이 씨가 심폐소생술(CPR)을 했던 사람 중 생존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이 씨는 “누구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며 “지금도 빈 의자를 보면 희생자가 앉아 있는 것 같고, 혼자 있으면 구하려 했던 여성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함께 구조를 도운 클럽 매니저 김상현 씨(29)도 “참사 이후 수면 장애가 생겼다”면서도 “가급적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사건을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 있는 패션잡화점 ‘밀라노컬렉션’의 사장 남인석 씨(80)는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부터 가게에서 숙식 중이다. 올해로 가게 운영 11년째라는 그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집에 가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고 자꾸 참사가 생각나서 가게에 있다”며 “(숨진) 아이들과 49재 때까지는 같이 지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남 씨는 참사 당일 골목에서 “살려 달라”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뛰쳐나가 구조를 도왔다. 참사 다음 날 ‘아이들 밥이라도 먹여 보내야 한다’는 마음에 손수 해장국과 과일을 내 제사상도 차렸다. 지금도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는 그는 “젊은 애들이 내 가게 앞에서 죽었다. 내가 죄인이다. 정치권은 희생자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정쟁을 멈추고 최선을 다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 달라”며 울먹였다.
○ 유족들 “유가족 협의체 만들 것”
한편 유족들은 28일 참사 1개월을 맞아 유가족협의체를 구성하고 집단행동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희생자 65명의 유족이 모인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유가족협의회(가칭) 준비모임’은 이날 성명을 내고 “참사 이후 유가족들은 고립된 채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야만 했다”며 “협의회를 만들어 유가족 목소리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며, 책임자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고자 한다“고 했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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