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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도어스테핑’ 실험이 남긴 교훈[동아광장/한규섭]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입력 2022-11-29 03:00업데이트 2022-11-2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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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쿨리지 대통령(재임 1923∼1929년)은 월평균 6번 정도 기자회견에 나섰지만 1940년대 TV 시대가 열린 이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 횟수가 크게 줄었다.미국의 쿨리지 대통령(재임 1923∼1929년)은 월평균 6번 정도 기자회견에 나섰지만 1940년대 TV 시대가 열린 이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 횟수가 크게 줄었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슬리퍼를 신고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와 대통령실 비서관 사이에 벌어진 설전의 여파로 헌정사상 처음 시도된 대통령의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속칭 ‘도어스테핑’)이 중단됐다. ‘도어스테핑’을 통해 언론과의 직접 소통을 늘리겠다던 의욕적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자신들은 해 보지도 않은 시도지만 야당은 “약속을 이행하라”며 공세를 이어간다.

사실 해외 사례를 참고한다면 ‘도어스테핑’은 모험적 수준을 넘어 무모한 실험이었다. ‘미국의 대통령 프로젝트(The American Presidency Project)’ 집계를 보면 지난 100여 년 사이 미국 대통령들의 기자회견 빈도는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쿨리지 대통령(1923∼1929년)은 월평균 6번 정도 기자회견에 나서 직접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던 반면 TV 시대에 접어든 트루먼(1945∼1953년), 아이젠하워(1953∼1961년) 대통령 때는 월평균 3.5회와 2.0회로 급속히 줄었다. 이후 월평균 3회 이상 기자회견을 한 미국 대통령은 없었다. 즉, TV 매체의 등장 이후 기자들의 질문에 직접 답변하는 기자회견은 모든 대통령의 기피 대상이다. 미국 대통령에게 월 20회 이상의 ‘도어스테핑’은 상상 불가다.

반면 미국 대통령의 이벤트성 행사 참석은 과거보다 크게 늘었다. 후버 대통령(1929∼1933년)은 월평균 8.3회 정도 이벤트성 행사에 참석했던 반면 클린턴 대통령(1993∼2001년)은 두 번의 임기 동안 각각 월평균 28.5회와 28.7회 대중 앞에 나섰다. 즉, 기자가 직접 질문할 기회는 주지 않으면서 미디어 노출이 가능한 이벤트는 대폭 늘린 것이다.

흥미롭게도 우리에게 소통 이미지로 알려진 대통령들이 오히려 기자회견 빈도가 낮았다. 대표적인 미디어 대통령으로 꼽히는 배우 출신 레이건 대통령(1981∼1989년)은 월평균 불과 0.48회의 기자회견을 가져 언론에 가장 폐쇄적인 대통령이었다. 전임자인 시골 출신 카터 대통령(1977∼1981년)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역설적이지만 언론에 개방적이었던 카터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선에 실패한 몇 안 되는 대통령이고, 가장 폐쇄적이었던 레이건 대통령은 가장 사랑받는 전임 대통령 중 한 명이다.

TV 토크쇼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색소폰을 불었던 클린턴 대통령도 ‘셀레브리티’ 이미지와는 달리 월평균 2회 정도의 기자회견을 가져 전임자인 아버지 부시 대통령(1989∼1993년·2.9회)이나 후임자인 아들 부시 대통령(2001∼2009년·2.2회)보다도 언론에 폐쇄적이었다. 또 한 명의 ‘셀레브리티’인 케네디 대통령(1961∼1963년·2.0회)도 군인 출신인 전임자 아이젠하워 대통령(2.0회)이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닉슨 대통령(1969∼1974년·2.2회)보다 언론에 개방적이지 않았다.





우리도 모든 대통령이 취임 전 ‘소통’을 강조했지만 매번 실패로 끝났다. 가장 개방적인 정부를 표방했던 노무현 정부 대언론 관계의 엔딩은 기자실 통폐합이었다. 한국갤럽의 2007년 10월 여론조사에서 유권자 67%가 노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에 반대했고 같은 해 6월 한국갤럽이 한국언론학회 소속 언론학자 2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72.8%가 반대했다.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대언론 관계는 세무조사로 끝이 났고, ‘촛불 혁명’의 대명사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었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래리 새버토는 언론의 정치 보도 행태를 “먹잇감에 달려드는 광란 상태(Feeding Frenzy)”로 표현했고, 토머스 패터슨은 “공격 저널리즘(Attack Journalism)” 또는 “가차 저널리즘(Gotcha Journalism)”으로 불렀다. 즉, 언론의 속성을 상어나 피라냐 등이 떼를 지어 먹잇감에 달려들어 물어뜯는 광란의 상태에 비유한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 양극화’와 ‘언론의 정치화’도 극심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실험이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불과 5∼6년 전 탄핵 정국에서는 대통령실 비서관과 논쟁을 벌인 기자가 윤 대통령을 응원하고 있었을 것이란 점이 정치의 비정함을 보여줄 뿐이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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