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재판 434건→4496건… “편리하지만 시스템 불안 여전”[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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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재판 확대시행 1년
지난해 민소법 개정 따라, 선고 이외 모든 민사재판 가능
“집-사무실서도 재판 참여”… 신속성-편의성에 이용 급증
“시스템 불안-제3자 관여 우려”… 판사 22%만 “계속하겠다”

서울중앙지법 소속 판사들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동관 3층 영상재판 전용법정에서 시연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이 법정은 국내 법원에 처음 설치된 영상재판 전용법정으로 3인실 2곳, 1인실 4곳, 전용 방청실로 구성돼 있다. 김동주 기자 zoo@danga.com
서울중앙지법 소속 판사들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동관 3층 영상재판 전용법정에서 시연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이 법정은 국내 법원에 처음 설치된 영상재판 전용법정으로 3인실 2곳, 1인실 4곳, 전용 방청실로 구성돼 있다. 김동주 기자 zoo@danga.com
권오혁 사회부 기자
권오혁 사회부 기자
지난해 11월부터 영상재판이 전국 법원에서 확대 시행됐다. 개정된 민사소송법 시행에 따라 민사재판의 경우 선고 외 모든 기일을 영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존에는 증인 및 감정인 신문, 변론준비기일에만 영상재판이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형사재판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공판준비기일을 영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됐고, 증인 등에 대한 영상신문 범위도 확대됐다.

영상재판 확대 시행 1년을 앞두고 법조계에선 영상재판이 재판의 신속성과 편의성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시에 시스템 불안정과 제3자 관여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적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기 급증한 영상재판이 법원의 ‘뉴노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다양한 법조계 인사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 확대 시행 1년 만에 10배로 증가

14일 대법원에 따르면 올 1∼10월 전국 각급 법원에서 진행된 영상재판 건수는 총 4496건으로 전년(434건) 대비 약 10배로 늘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1년 전만 해도 영상재판은 법원 내에서도 상당히 예외적인 제도였다”며 “이제는 대면 재판이 어려울 때 택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선택지라고 인식이 바뀐 것 같다”고 밝혔다.

영상재판 전체 건수는 늘었지만 서울중앙지법 등 일부 법원에서만 영상재판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 1∼10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실시된 영상재판은 총 941건으로 전국 법원 영상재판의 20.9%를 차지했다. 영상재판 경험이 있는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법원이 어딘지, 재판부가 누구인지에 따라 영상재판에 대해 온도 차가 적지 않다”면서 “개인적으로는 서울 법원에서 잘 받아들여졌고 지방법원에서 거절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중소도시 지방법원 지원에 근무하는 한 판사는 “최근에 군(郡) 법원 사건에서 영상재판 신청을 받았는데 장비 구축이 안 돼 기각했다”며 “지방 변호사 연령대가 서울에 비해 높은 점도 (영상재판이 적게 시행되는 데)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 대면재판에 비해 시·공간 제약 적어
영상재판의 가장 큰 장점은 대면재판에 비해 시·공간의 제약이 적다는 것이다. 민사소송의 경우 영상·음향장비를 갖춘 컴퓨터만 있으면 자택이나 사무실에서 재판 참여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주로 재판 당사자가 일정 등의 이유로 대면재판 출석이 어려울 때 재판부가 당사자 신청을 받거나 동의를 얻어 영상재판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10여 차례 영상재판을 경험한 김명하 서울지방변호사회 대변인(변호사)은 “영상재판을 통해 기일이 빨리 잡히면 재판이 지연돼 의뢰인의 이익이 침해되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영상재판을 통해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변호사들도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이다. 개인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한 변호사는 “지방 재판의 경우 오가는 데 하루를 다 쓰곤 했다”라며 “영상재판으로 10분 만에 마치니 편리했다. 지속적으로 활용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다만 한 중견 변호사는 “간단한 절차 진행은 영상재판이 효과적이지만 증인신문의 경우 대면재판으로 할 때보다 나은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판사들도 변론기일이나 심문기일을 보다 유연하게 잡을 수 있어 재판 진행이 늘어지는 걸 방지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영상재판의 장점으로 꼽는다.
○ 법원 내부에선 5명 중 1명만 “지속 실시”

법원 내부에선 최근 1년간 영상재판 활용도가 크게 높아졌고 판사들의 참여도 늘었다고 자평하는 분위기다. 다만 여전히 대면재판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판사들은 일반 법정이나 사무실에서 영상재판을 진행하는데 ‘영상재판 시스템 불안정’ 등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영상재판에 대한 판사들의 인식 조사를 위해 9월 2∼6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443명 중 31.7%는 영상재판의 단점으로 ‘시스템 불안정으로 재판 중단이 우려된다’고 했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영상재판 확대 시행 초기 화면만 나오고 소리가 안 나와 휴대전화 스피커폰을 켜놓고 재판을 진행한 적도 있다”고 했다.

향후 영상재판 진행 여부에 대해서도 판사들은 대체로 신중한 입장이었다. 향후 영상재판을 지속적으로 여러 사건에서 진행할 생각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 22.1%만 “지속 실시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49.7%는 “여러 사정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하겠다”, 25.1%는 “여러 염려로 영상재판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답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영상재판이 제3자 관여와 무단 녹화, 법정 권위 하락 등의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란 우려가 여전하다.
○ 법원, 영상재판 진입장벽 낮추기 총력
대법원은 영상재판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대내외 의견 수렴을 이어가고 있다. 판사들은 영상재판 확대 시행 전부터 법원 내부망 게시판을 통해 영상재판 관련 질의응답을 주고받고 재판 후기도 공유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시행 초기만 해도 영상재판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판사들이 어디에 문의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최근에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만 봐도 노하우가 상당히 축적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18일 영상재판 확대 시행 1주년 심포지엄을 열고 이르면 내년 초 영상재판 1년 백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노후 시스템 개선 작업도 진행 중이다. 대법원은 세 차례 전국 법원을 대상으로 법정 내 노후 음향장비 전수 조사를 한 뒤 교체 작업을 진행 중이다. 영상재판에 활용되는 프로그램 ‘비디오커넥트’에 대해서도 개별 대화 기능 등 판사들이 요청한 내용을 반영한 개선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법원은 서울중앙지법에 설치된 영상재판 전용 법정도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3인실 2곳, 1인실 4곳, 전용 방청실로 구성된 영상재판 전용 법정을 전국 최초로 10일부터 운영 중이다. 판사뿐 아니라 변호사 등 재판 관계자들도 신청을 통해 전용 법정 이용이 가능하다.

연선주 서울중앙지법 민사공보관은 “새롭게 시도되는 영상재판 전용 법정이 국민의 사법접근성을 높이고 시대의 변화에 맞는 미래지향적인 재판의 모습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첫 전용 법정의 운영 상황을 지켜보고 향후 타 법원 확대 설치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오혁 사회부 기자 hyuk@donga.com


#영상재판#시스템 불안#확대 여부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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