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근무로는 생활비 충당 안돼” 불법 알바 나서는 유학생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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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동떨어진 유학생 취업 규정
한국어 성적 따라 근로시간 제한… 조건 충족해도 최대 주25시간 허용
학점 2.0 미달 땐 취업 아예 불가… 구인난에 외국인 알바 늘고 있지만
현실 동떨어진 기준에 미신고 취업… 부당 노동행위 노출 위험성도 커져

최근 늘어난 외국인 유학생 아르바이트생 가운데는 까다로운 취업 조건 때문에 불법으로 일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의 한 식당에 붙은 ‘한국어 능통 외국인 찾는다’란 구인 광고. 동아일보DB
최근 늘어난 외국인 유학생 아르바이트생 가운데는 까다로운 취업 조건 때문에 불법으로 일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의 한 식당에 붙은 ‘한국어 능통 외국인 찾는다’란 구인 광고. 동아일보DB
서울 용산구에서 쌀국숫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61)는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외국인 유학생 2명을 아르바이트생으로 쓰고 있다. 최근 한국인 아르바이트생 구하기가 어려운 와중에 외국인 유학생들은 취업 시간 제한이 까다로워 신고해도 허가가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박 씨는 “근처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고용한 식당은 대부분 (나처럼) 불법 고용일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자영업 구인난이 심해지면서 박 씨처럼 외국인 유학생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는 가게가 늘고 있다. 하지만 유학생은 취업 허용 시간이 주중 10∼35시간으로 제한돼 있어서 아예 신고를 하지 않고 불법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외국인 유학생 수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이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구인난에 급증하는 유학생 알바

14일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1∼9월 시간제 취업 허가를 받은 외국인 유학생은 1만3224명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유학생 신분(D-2, D-4 비자)으로 입국한 외국인에게 학업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취업을 허용하고 있다. 시간제 취업에 나선 외국인 유학생 수는 매년 증가해 2017년 4171명에서 지난해 1만2370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9월까지 이미 지난해 전체 허가자 수를 넘어섰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 자영업 구인난과 비싼 생활비를 충당하려는 외국인 유학생 수요가 맞물려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감소했던 대면 서비스업 수요가 회복하면서 구인 수요는 늘었지만 배달 등 플랫폼 노동 증가로 식당, 카페 등에서 일하는 사람은 줄었다. 서울 중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최모 씨(45)는 “구인 공고를 냈더니 연락 온 사람 6명이 전원 외국인 유학생이었고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문제는 유학생 취업 조건이 까다로워서 정식 허가를 받고 일하는 사람이 적다는 점이다. 유학생의 취업 허용 시간은 학위 과정과 한국어 능력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학사과정 3, 4학년은 한국어 능력(토픽, KIIP) 4급 미만이면 주중 10시간, 4급 이상이면 25시간까지 가능하다. 원래 주중 최대 20시간이었지만 올해 5월부터 추가 조건을 충족하면 최대 가능시간을 5시간씩 늘려줬다. 단, 요구되는 한국어 수준을 갖춘 경우 주말과 방학에는 시간제한이 없다. 이와 별개로 외국인 유학생은 직전 학기 학점이 평균 2.0을 넘지 않으면 시간제 취업이 아예 불가능하다.

자영업자들은 이 같은 기준이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서울 광진구의 한 치킨집 사장은 “지금 일하는 유학생 알바는 정식 신고를 했지만 정해진 시간을 넘겨 일하고 있다”며 “법에 정해진 대로 주중에 하루 2∼5시간만 일한다면 학생들은 생활비를 벌기 힘들고, 우리는 하루에 아르바이트생을 2, 3명씩 써야 해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 불법 내몰리지 않게 제도 보완해야
불법으로 일하는 유학생들은 불안함과 어려움을 호소한다. 당국 허가 없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베트남 유학생 A 씨는 “불법인 걸 알지만 정해진 시간만 일해선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렵다”며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시간제한 때문에 불법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가를 받았지만 정해진 시간을 초과해 일했던 카자흐스탄 유학생 B 씨(28)도 “한국 주거비와 물가가 비싸 유학생 대부분 알바를 병행한다”며 “나처럼 신고한 뒤에 몰래 정해진 시간을 넘겨 일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 유학생 C 씨(25)는 “한국 학생은 성적이 낮아도 알바를 할 수 있는데 외국인만 학점이 낮다고 못 하게 하는 건 부당하다”며 “적발되면 강제 출국당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불법 알바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유학생의 경우 학업이 우선이라는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불법 고용이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불법 고용을 방치하면 유학생들이 임금체불이나 최저임금 미지급 등 여러 부당 노동행위에 노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류지웅 동국대 법과대학 연구교수는 “여러 제약 때문에 유학생들이 불법에 내몰린다면 제도를 현실성 있게 바꿔야 한다”며 “제도 도입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취업 시간 제한을 완화하는 등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소설희 인턴기자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외국인 유학생#시간제 취업#유학생 알바#단기 근무#불법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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