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도약 주역들 희망의 100년 다시 연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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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sight]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인터뷰
기업인과 격의 없는 윤대통령 감명… 한총리도 규제개혁 꼼꼼이 챙겨
CEO 고령화 탓 기업승계 발등의 불… 세금 무거워 문 닫는 기업 없어야
원자재값 폭등 그대로 떠안는 현실… 납품단가 연동제 빠른 법제화 절실
외국인쿼터제 풀려야 구인난 숨통… 근로시간도 상황따라 탄력 운용을

5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광장에서 ‘2022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다짐하는 핸드프린팅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주보원 삼흥열처리 대표, 구광모 ㈜LG 대표, 강삼권 벤처기업협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윤석열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정한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오세희 소상공인연합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5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광장에서 ‘2022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다짐하는 핸드프린팅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주보원 삼흥열처리 대표, 구광모 ㈜LG 대표, 강삼권 벤처기업협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윤석열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정한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오세희 소상공인연합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1962년 설립된 중소기업중앙회가 올해 창립 60돌을 맞았다. 60년 전 대한민국은 아프리카보다도 가난한 국민소득 82달러의 최빈국이었다. 어머니들은 비녀를 풀어 긴 머리를 잘랐고, 딸들은 그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 수출을 시작했다. 앨범, 완구에서 금성테레비와 포니자동차로 외국의 빗장을 열어 지금은 스마트폰과 반도체로 세계 8위의 무역강국으로 우뚝 섰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구기까지 묵묵히 산업현장에서 피땀 흘린 중소기업인들과 근로자들은 숨은 영웅이었다. 이들의 60년 발자취를 톺아 봤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경내에서 열린 중소기업중앙회 창립기념 행사에서 60여 개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중소기업 경영의 애로사항을 청취해 감동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경내에서 열린 중소기업중앙회 창립기념 행사에서 60여 개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중소기업 경영의 애로사항을 청취해 감동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中企人 애로 귀 기울이는 尹대통령-韓총리에 큰 기대
기업승계-외국인고용 빗장 풀 소통 기회 더 넓어지길”

“아니, 이제 8시 20분인데 왜 벌써 끝냅니까. 지방에서 올라오신 분들도 많은데 더 얘기하다 가시지요.”

5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경내에서 열린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기업인들과 어울리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새 정부 출범 보름 만에 열린 이 행사는 중소기업인을 격려하기 위한 자리였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550여 명의 중소기업인들은 윤 대통령과 격의 없이 애로를 토로하고 소통했다. 윤 대통령은 60여 개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얘기를 나눴다.

중소기업인부터 찾은 尹 대통령
“예전 이명박 대통령 때 청와대 녹지원에 중소기업인 500여 명을 초청해 식사한 적이 있었어요. 이후엔 뚝 끊겼다가 이번에 윤 대통령께서 초청해주셔서 아주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천에도 불구하고 당초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밤 9시까지 자리를 함께 해 참석한 기업인들의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이번에 오지 못한 기업인들은 내년엔 꼭 신청하겠다고 앞다퉈 얘기하더군요.”

1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집무실에서 만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이날을 회상하면서 뿌듯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행사 형식도 파격이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비롯한 5대 그룹 총수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용산 대통령실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린 이 행사는 중소기업중앙회 창립 60주년 기념식이자 제33회 중소기업인대회였다. 주인공이 중소기업인으로 5대 그룹 총수들은 손님으로 초청받았다. 연락은 대통령실이 아닌 김기문 회장이 직접 맡았다. 이 부회장 등 5대 그룹 총수들은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윤 대통령께서 대선후보 때와 똑 같이 기업인들과 어울려주셔서 너무나 고마웠다”며 “부처 장차관들도 테이블마다 나눠 앉아 기업인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고 애로사항에 귀를 기울였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외국인근로자 고용 문제 등 기업인들의 하소연을 듣고 즉석에서 주무 부처 장관에게 “선거 때도 수도 없이 들은 얘기인데, 부처에서 빨리 해결해주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소탈한 윤 대통령의 스타일을 직접 보고 지방에서 올라온 한 기업인은 “대통령과 함께 있다는 것을 부인에게 자랑하고 싶다”고 요청해 즉석에서 ‘깜짝’ 영상 통화도 이뤄졌다고 한다. 대통령 경호실과 의전비서관실에선 비가 오니 행사를 서둘러 마무리해줬으면 좋겠다고 재촉했지만, 윤 대통령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규제개혁에 귀 기울이는 韓 총리
윤석열 정부에서 중소기업을 중시하는 태도에 기업인들의 관심이 뜨겁다. 윤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 후 첫 행사로 중소기업인들을 먼저 초청한 것부터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대기업 주도 성장전략 기조가 바뀔지도 관심이다. 윤 대통령뿐 아니라 한덕수 국무총리도 중소기업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김 회장은 “8월엔 한덕수 총리 주재로 ‘규제개혁 대토론회’가 열렸는데, 중기중앙회에선 외국인력 쿼터제 폐지와 산업단지 입주 문제 등 229개 규제 개혁 사안을 전달했다”며 “한 총리는 점심 약속도 취소한 채 2시간 동안 토론을 계속하면서 ‘한 건 한 건 허투루 보지 않고 꼼꼼히 살펴보겠다’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이날 전달된 규제개혁 과제는 범부처 규제혁신TF에서 검토하고 있다. 김 회장은 “한 총리는 역대 총리 중 경제 현실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라며 “규제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더 많은 편으로 부처에서 규제는 곧 권력이므로 안 내려놓으려 하지만 새 정부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할 것 같다”고 기대했다. 그는 “규제개혁은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만 해선 안 된다”며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 규제는 ‘올라운드 플레이’를 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기문 회장은 “기업은 사회적 자산”이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다 살 수 있는 분위기가 되도록 여야가 힘을 합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기문 회장은 “기업은 사회적 자산”이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다 살 수 있는 분위기가 되도록 여야가 힘을 합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70세 넘은 기업인 2만여 명, 기업승계 애로
김 회장은 1955년 생으로 우리 나이로 68세다. 1988년 시계브랜드 ‘로만손’을 창업해 연매출 1000억 원대 기업으로 키웠다. 시계시장의 침체가 이어지자 2016년에 주얼리·패션기업 제이에스티나로 사명을 바꾸고 업종도 전환했다. 중소기업 CEO의 고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기업승계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 됐다.

“70세 넘은 CEO가 2만 명이 넘습니다. 기업승계 애로사항에 막대한 조세부담을 꼽는 CEO가 76%나 됩니다. 기획재정부에서 마련한 내년도 세제개편안에 업계 숙원이던 기업승계 관련 사항들이 적극 수용되면서 현장에선 기대가 있습니다만 실효성 있게 추진돼야 할 것입니다.”

김 회장은 “죽어라 노력해서 회사 하나 만들어 성공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하니 세금 낼 돈이 없어 승계를 못하는 것이 지금의 가혹한 현실”이라며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이제 곧 노인이 되면 70세 이상 CEO 는 10만∼20만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업은 한마디로 사회적 자산입니다. 일본에선 100년 넘은 기업은 3만∼4만 개나 되지만 우리 제도하에선 기업승계가 어려워져 이런 오래된 기업이 존속하기 어렵습니다. 기업을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일각에선 있지만 요즘은 오너가 회삿돈을 빼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세무조사하면 다 나오기 때문이죠. 지금 상속세 제도 상황에선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면서도 세금 때문에 시계 사업하다가 드론 사업으로 바꾸지 못하고, 스마트팩토리 등 자동화가 빨라져도 직원 임금은 상속 후 10년 동안 유지해야 한다는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기업이 갖고 있는 부동산이나 현금은 상속세를 제외하고 주식에 대해서만 세금을 매기되 자식이 사업을 계속 유지하는 한 상속세는 유예하고 회사를 처분할 때 세금을 물리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습니다.”

이런 고민은 중소기업뿐 아니라 규모가 큰 중견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이번 세제개편안에 증여세 과세특례 한도를 기존의 1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대폭 올리고 상속세와 증여세 납부유예제도 신설됐다. 하지만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회 통과가 쉽지만은 않다는 게 고민이다.

김 회장은 “조그만 기업에서 출발해 중기업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을 꿈 꾸는 것이 기업하는 사람들”이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다 잘살 수 있게 하고, 서로 공존공생하며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여야가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中企 애로 납품단가 국제 원자재가 시세 연동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원자재가 상승과 공급망 위기는 중소기업 경영을 위협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달 말 제주에서 개최한 리더스포럼에서 복합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위한 4대 정책과제를 제안했다. 그중 첫째가 납품단가 연동제의 조속한 법제화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들려드릴게요. 고소대라고 건축 폴대를 만드는 회사 얘기인데, 미국에 수출하는 회사였어요. 어느 날 몇십만 달러가 미국에서 회사 통장으로 송금이 됐기에 미국 수출회사에 ‘돈이 잘못 들어온 거 같다’고 얘기했더니 답변이 ‘원자재 연동제에 따른 차액을 보내 준 것’이라고 했다는 거예요. 원자재 값이 오른 만큼 계약에 따라 납품 회사에 돈을 부쳐준 것이죠. 우리는 아직 이런 것이 법제화되지 않아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고스란히 납품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판입니다. 물론 일부 대기업에선 처음부터 원자재를 사서 주는 회사도 있지만 아주 드문 케이스죠.”

중소벤처기업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납품대금연동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기업 29개를 포함해 335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데 민간자율로 이뤄지고 있다. 업계에선 조속한 법제화를 촉구하고 있다. 김 회장은 “중소기업 67%는 납품단가 반영을 위해 연동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며 “국회에서 여야 모두 상생협력법과 하도급법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라 국회 민생특위에서 조속히 처리해 중소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외국인력·주 52시간제 운용의 묘 살려야
산업현장에서 외국인쿼터제와 경직적인 주52시간제는 큰 애로 사항이라고 김 회장은 강조했다.

“지금은 외국 인력을 쓰지 않으면 공장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농촌에 가도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배추 뽑을 사람도, 사과 따는 사람도 못 구합니다. 외국인쿼터제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취지로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을 우려해 만든 제도지만, 현실에선 외국인 고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제조 현장에서 외국인쿼터제를 없애야 공장이 제대로 돌아갑니다. 중소기업도 전산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정보기술(IT) 분야 산업연수생도 고급 외국 인력에 대한 빗장을 풀어줘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만든 주 52시간제도 현실에선 보다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노조에서 건강권을 주장하면서 바쁠 땐 바짝 일하고 다소 여유가 있을 때 휴가를 쓰는 것을 못하도록 막는다”며 “중소기업 근로자의 70%가 오버타임을 하고 싶어 하지만 주 52시간 노동시간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일본처럼 근로시간저축제 개념을 도입해 일이 바쁠 때 근로 시간을 더 많이 쓸 수 있도록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대출 만기연장도 촉구했다. 김 회장은 “코로나19로 전시업 등 이벤트 회사, 학교급식업, 여행업 등이 큰 피해를 봐왔다”며 “이제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는 상황이니까 은행에서 회생계획서를 받아보고 전향적으로 대출만기를 연장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 회장은 출범 5개월이 지난 윤석열 정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가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 치우친 경제정책을 펴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 또한 없지 않다.

김 회장은 “법인세 등 각종 세제 완화에 따른 감세 폭은 대기업일수록 크고, 산업부 장관이나 공정거래위원장 등 경제부처 장관들이 대기업에 치우친 듯한 시각을 내비치고 있어 다소 걱정도 된다”면서 “대기업은 정부가 도와주지 않아도 성장할 수 있지만 사업체의 99%, 고용의 81%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은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없으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대통령과 소통으로 中企 현안 해결 노력
김 회장은 “경제6단체장과의 간담회 때 윤 대통령께선 ‘저녁 약속이 없으면 참모들과 소통 자리를 갖고 있으므로 기업인들도 격의 없이 편하게 연락을 주면 도시락 간담 자리를 갖겠다’고 하셨다”며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특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더욱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만큼 현안에 대해 수시로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 때 기업인들과 자주 소통을 하겠다고 해서 주요 기업인 50명에게 대통령 소통 전화번호를 알려줬다”면서 “윤 대통령께서도 경제인들과 소통 전화를 하겠다고 했는데, 기업인들이 주저 없이 대통령께 전화 걸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기업인들을 만나 보면 ‘한국 기업은 날아가는데 일본 기업은 기어간다’고 얘기한다”며 “정치하는 사람들이 기로에 처한 우리 경제를 잘 이끌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the insight#김기문#중소기업중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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