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오영수 댄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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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상식의 주인공은 수상자다. 그제 열린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선 아시아 최초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은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가 특히 주목받았다. 그런데 시상식 뒤풀이를 뒤집어 놓은 건 조연배우 오영수(78)였다.

▷에미상 뒤풀이 참석자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35초짜리 영상엔 ‘오영수 꺾기 춤’ 현장이 담겼다. 점잖게 정장을 차려입은 백발의 신사가 뜻밖에 관절을 꺾어가며 격렬하게 춤추자 사람들이 박수치고 환호하는 영상은 시상식 하이라이트 장면 못지않게 화제가 됐다. 해외 누리꾼들도 “깐부 할아버지의 대변신” “78세 배우에게 이런 에너지가 나오다니”라는 댓글을 달며 놀라워했다. 그가 요즘도 매일 아침 집 근처 남한산성 밑에서 평행봉 50개를 하며 속 근육을 단련하는 줄 모르나 보다.

에미상 뒤풀이에서 춤을 추고 있는 배우 오영수. 트위터 @Meena Harris
에미상 뒤풀이에서 춤을 추고 있는 배우 오영수. 트위터 @Meena Harris

▷오영수는 팔순 가까워 찾아온 전성기를 누리는 중이다. 오징어게임에서 ‘1번 참가자’ 오일남 연기를 선보인 후로는 마스크를 쓰고 나가도 “사인해 달라”며 줄을 선다. 에미상 남우조연상 수상은 불발됐지만 올해 1월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TV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라 우리 속의 세계입니다”라는 그의 수상소감은 명대사 “우린 깐부잖아”와 함께 해외 언론도 보도했다. ‘글로벌 스타’의 티켓 파워는 다르다. 오징어게임 이후 출연작인 연극 ‘라스트 세션’은 전석 매진이었다.

▷시작은 미미했다. 월남한 흙수저 집안에서 ‘오세강’으로 태어나 막노동 하다 1967년 극단 광장에서 ‘오영수’로 배우 인생을 시작한다. 연기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학력이 보잘것없어 번듯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존재감 없던 내가 무대에선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황홀한 경험”을 하는 맛에 50여 년간 200편 넘는 연극에 출연했다. 동아연극상(1980년)과 백상예술대상(1994년) 연기상을 수상한 실력자이지만 데뷔 45년 차에도 언더스터디, 즉 주연배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투입되는, 무대에 선다는 기약도 없는 배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빛나지 않아도 무대에 진심이었던 시간은 내공으로 쌓였다.

▷그는 에미상 시상식 후 기자간담회에서 “전에는 민족의 나약한 면을 느꼈는데, 이제는 자신감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45달러이던 시절 연기를 시작해 3만5000달러였던 지난해 오징어게임으로 전 세계 미디어업계를 흔들어 놓았다. 가난한 나라의 ‘딴따라’였던 그가 이제는 대중문화의 최강국에서 ‘명배우’로 대접받는다. 오영수는 흥이 날 만도 한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오징어게임#오영수#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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