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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재고 급증, 커지는 ‘R의 공포’[횡설수설/이정은]

입력 2022-08-20 03:00업데이트 2022-08-2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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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65% 세일, 엄청난 딜입니다!” 미국 유통업체 월마트와 베스트바이 같은 업체들은 요즘 세일이 한창이다.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도 가격을 확 낮춘 상품들이 나온다. 늘어난 재고 물량을 처리하기 위한 땡처리가 시작된 것. 월마트는 지난달 재고품 규모가 600억 달러(약 79조 원)까지 늘어나 있다. 이들 기업을 포함한 전 세계 2300여 개 제조업체들의 재고 총액은 현재 1조8700억 달러로, 10년 만에 최대치까지 치솟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전자의 올해 상반기 재고자산 총액은 처음으로 50조 원을 넘어섰다. 재고가 팔리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역시 역대 최고치인 평균 94일까지 늘어났다. LG디스플레이를 비롯한 다른 주요 기업들의 상반기 재고자산도 대체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재고가 늘어나는 만큼 냉장고와 세탁기, 휴대전화 같은 제품의 생산량은 줄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 코로나19 특수 대응 차원에서 공급을 늘리다 보니 수요를 초과하게 된 측면이 있다지만 그 흐름이 심상치 않다.

▷창고에 들어찬 재고 상품들은 경기침체의 전조로 여겨진다. 세계경제가 현재 경기침체에 진입했는지를 놓고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재고 수치는 기업들이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선행지표 중 하나다. 재고 증가는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 생산 감소, 투자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 LG전자의 경우 TV 생산라인 가동률이 72%대까지 내려와 있다. 경기침체(Recession), 즉 ‘R의 공포’가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물건은 안 팔리는데 원자재 가격과 운송비용은 오르니 기업들의 한숨도 커져 간다.

▷미국 CNBC는 주요 기업들의 재고가 쌓여가는 상황을 놓고 ‘재고가 이끄는 경기침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재고 부담이 기업 활동을 얼마나 위축시키는지를 보여주는 평가다.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기침체 요인들은 당장 해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져온 에너지와 식량 위기, 인플레이션 및 급속한 금리 인상의 여파가 얽혀 있다. 중국 경제도 글로벌 경제를 흔들 변수다. 2분기 0%대 성장, 20%대 청년실업률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든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 5%를 낙관하기 어렵다.

▷재고떨이와 폭탄 세일이 당장은 반가운 뉴스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업들의 생산 위축이 수익성 악화, 인력 구조조정과 대규모 실직 사태로 이어지면 그 여파는 걷잡을 수 없다. 가뜩이나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지갑을 닫는 실업자들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다. 960조 원대 자영업자 빚폭탄마저 째깍거린다. ‘R의 공포’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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