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음악의 재발견[김학선의 음악이 있는 순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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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정훈희 ‘안개’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정훈희의 ‘안개’가 흘러나올 때 수많은 사람이 그 노래에 반했다. 박찬욱 감독도 분명 그 반응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건 그 노래를 알고 있던 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굵게 이름이 새겨져야 마땅한 위대한 작곡가 이봉조와 불세출의 보컬리스트 정훈희가 함께한 ‘안개’는 충분히 그런 예상을 할 수 있는 노래였다.

여기에 또 한 명의 위대한 예술가 송창식 버전의 ‘안개’도 있다. 송창식은 정훈희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노래를 소화해냈다. 두 노래를 알고 있던 박찬욱은 영화의 마지막에 정훈희와 송창식의 듀엣 버전을 새롭게 탄생케 했다. 각각 10대와 20대의 나이에 취입했던 노래를 이제 70대가 된 두 노장이 함께 회한을 담은 듯 노래한다. 이건 음악을 사랑하는 박찬욱에 의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박찬욱은 영화를 위해 늘 이런 음악의 발견을 해왔다. 박찬욱의 영화가 나왔다는 건, 즉 훌륭한 사운드트랙이 한 장 더 만들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는 조영욱이나 방준석, 어어부 프로젝트 등 신뢰가 가는 음악가들에게 스코어를 맡기고 중간중간 기존에 있던, ‘잊혀졌던’ 노래를 넣는 방식으로 사운드트랙을 만들어 왔다. 이런 음악에 대한 애정 덕분에 정훈희의 ‘안개’는 다시금 젊은 세대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게 됐다.

과거 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고정 초대 손님으로 나갔는데 그때 담당 PD와 여러 차례 부딪쳤다. 사적인 감정이 아니었고 프로그램의 방향 때문에 그랬던 거였기 때문에 그 PD와는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내가 고른 노래에 대해 가끔씩 그 PD는 노래가 너무 비대중적이라는 이유로 선곡을 바꿔 달라 요구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대체 안 유명한 노래는 언제 유명해지냐?” 그렇게 한 번, 두 번 방송을 타고 대중적으로 바뀔 수 있는 노래조차 라디오에서 선곡되지 못하면 그 노래는 계속 비대중적인 노래로 남게 된다.

최근 주변 음악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방송사의 음악 편중은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한 동료 음악평론가는 고정 출연하던 라디오에서 자진 하차했다. 유명한 노래, 아이돌 위주의 노래만을 틀어주길 바라는 제작진의 요구에 응하기가 어려워서였다. 과거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고 전파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역할은 이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정훈희의 ‘안개’가 사람들에게서 회자되는 걸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헤어진 결심’ 개봉 전 이 노래를 골라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가면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이유로 거절당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과한 것 같지만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새로운 음악의 발견은 유튜브나 스트리밍 사이트 등의 뉴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누군가는 말할 수 있지만 그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것도 방송사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정훈희#안개#잊혀진 음악#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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