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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사랑한다는 말 없이, 가장 근원적 사랑 보여주고 싶었다”

입력 2022-08-02 03:00업데이트 2022-08-0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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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어질 결심’ 각본 공동집필한 정서경 작가
“해준의 ‘나는 붕괴됐다’는 한마디
스스로 무너지며 지켜준 사랑 표현”
정서경 작가는 “박찬욱 감독과 지금까지 다섯 번 작품을 공동 집필하며 작가로서 서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차기작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박 감독이 내게 ‘(다음 작품을) 생각해야 된다’는 말을 남겼다”고 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6월 개봉한 영화 ‘헤어질 결심’ 각본에는 “사랑해”라는 대사가 딱 한 번 나온다.

형사 해준(박해일)이 살인사건 용의자 서래(탕웨이)와 사랑하는 내용이지만, 정작 그 대사를 뱉는 인물은 서래의 남편 임호신(박용우). 하지만 말만 사랑일 뿐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 반면 해준과 서래는 단 한 번도 사랑을 입에 담지 않지만 서로 지독히도 사랑했다.

이들의 애절한 사랑이 긴 여운을 남겨서일까. ‘헤어질 결심 각본’(을유문화사)은 지난달 18일 사전예약 판매 직후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2주 연속 전체 1위에 올랐다. 박찬욱 감독과 각본을 공동 집필한 정서경 작가(47)는 “사랑이라는 말 없이도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헤어질 결심’을 비롯해 ‘친절한 금자씨’(2005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년), ‘박쥐’(2009년), ‘아가씨’(2016년)까지 모두 5개 작품을 박 감독과 함께 썼다. 지난달 27일 정 작가를 서울 용산구 작업실에서 만났다.

(※아래 기사에는 ‘헤어질 결심’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작품에서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 대사를 꼽는다면….

“해준의 ‘나는 붕괴됐다’는 한마디다. 서래는 원래 해준을 범죄에 이용할 남자로만 여겼다. 하지만 이 말이 서래에게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어떤 사람이 무너지면서까지 자신을 지켜줬다는 뜻이니까.”

―해준은 서래의 범죄 혐의를 감춰준다.

“사랑이란 나의 가장 중요한 걸 버리더라도 상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지켜주는 게 아닐까. 형사인 해준에게 제일 중요한 건 윤리의식이었다. ‘나는 붕괴됐다’는 건 ‘당신을 위해 내가 무너진 채로 살겠다’는 고백 아닌 고백이다.”

―그런 고백을 받았는데도 서래는 왜 해준과 헤어질 생각을 하나.

“붕괴의 깊이는 무너져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서래는 중국에서 어머니를 잃고 국경을 넘으며 완전히 무너졌다. 그 아픔을 알기에 ‘나 때문에 저 사람이 무너져도 되나’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되묻는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울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서래는 범죄 증거 자체인 자신이 사라져야 해준이 예전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서래가 사라지기로 결심하면서 사건은 미제로 남는다. 해준은 서래를 계속 찾을까.

“비극적이게도 그러지 않을까. 이건 한 남자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 번쯤 길을 잃고 무너진다. 바로 발밑에 사랑이, 혹은 진실이 묻혀 있는데도 바보처럼 평생을 찾아 헤매지 않나.”

―영화에서 그 사랑이 가장 완벽하게 녹아든 장면을 꼽는다면….

“처음 경찰서에 간 서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여느 부인처럼 어깨를 움츠린 채 등이 굽어 있다. 하지만 용의자인 서래에게 해준이 수사 용어를 하나하나 풀이하며 존중해 주자, 서래는 조금씩 허리를 펴기 시작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해준을 만나 존엄성을 회복하는 서래처럼 서로를 꼿꼿하게 세워주는 마음이 아닐까.”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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