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 스틸사진집 제작에 3년 “단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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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인아카이브 백준오 대표
칸 수상 ‘브로커’ 각본집 제작도 맡아
박찬욱 감독 등 거장들이 먼저 찾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 스틸사진집 ‘아가씨의 순간들’(위쪽 사진)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각본집·스토리보드북 세트. 플레인아카이브 제공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 스틸사진집 ‘아가씨의 순간들’(위쪽 사진)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각본집·스토리보드북 세트. 플레인아카이브 제공
520쪽 분량, 무게 3kg. 가격도 13만 원에 이르는 ‘센’ 책이 나왔다.

지난달 10일 출간된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의 스틸사진집 ‘아가씨의 순간들’(플레인아카이브)이다. 고가에도 작품을 유형의 추억으로 간직하고자 하는 팬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과 온라인 서점 등을 통해 벌써 2800권가량 팔렸다.

쉽지 않은 도전에 나선 플레인아카이브는 영화 굿즈 제작사. 팬들 사이에서는 감각적인 패키지 디자인으로 ‘장인’이란 정평이 났다. 박찬욱과 봉준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 거장들이 먼저 찾을 정도다.

2013년 문을 연 플레인아카이브는 영화 ‘멜랑콜리아’(2021년)를 시작으로 ‘들개’ ‘캐롤’ 등 75개 작품을 블루레이 디스크로 선보였다. 봉 감독의 ‘기생충’ 각본집과 스토리보드북, 고레에다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각본집도 출간했다.

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백준오 대표(42·사진)는 “이번 스틸사진집을 만드는 과정은 누구도 간 적이 없던 지난한 길이었다”고 떠올렸다. 방대한 분량에 제본조차 쉽지 않아 내용을 절반 이상 덜어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는 타협하지 않고 무려 3년을 매달렸다고 한다.

“가장 신경 쓴 건 북클로스(책 표지를 싸는 천)였어요. 주인공 히데코(김민희)의 주 의상이 기모노라 그 느낌을 살린 북클로스를 원했어요. 국내에선 맘에 드는 업체가 없어 수소문 끝에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천을 수입했어요. 표지에 들어가는 글자를 ‘박 인쇄’(글자에 열과 압력을 가하는 방식)하는 과정에서는 깨알같이 작은 글씨도 뭉개지지 않게 하려고 테스트에만 북클로스 300만 원어치를 썼습니다.”

영화 제작도 이런 시간을 들이면 집요하다고 하지 않을까. 백 대표의 정성은 여러 영화감독들에게도 크게 각인돼 있다. 일본에서도 나온 적 없는 고레에다 감독의 각본집도 세 권이나 낸 백 대표는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고레에다 감독의 ‘브로커’ 각본집과 스토리보드북 제작도 맡았다. 9월 출간이 목표. 고레에다 감독의 스토리보드북이 별도로 나오는 건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처음이다.

“일본어 대사를 적은 손 글씨를 한국어 번역으로 덮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그대로 살렸어요. 창작자 머리에서 나온 최초의 기록을 보여주기 위함이죠. 고레에다 감독은 콘티를 그릴 때 세로 방향만 고수하지 않고 자유롭게 종이를 사용해서 가로 판형으로 기획했습니다.”

‘영화를 간직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

플레인아카이브 소셜미디어에는 이런 소개가 실려 있다. 그 아름다움을 위해 백 대표는 지금까지 느리지만 타협 없이 매진했다. 영화 ‘올드보이’ 블루레이에는 3년,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 블루레이에는 4년을 매달렸다.

“어쩌면 큰 회사는 못하는 일이죠. 결정권자가 많고 효율성으로 판단하면 어쩔 수 없이 탈락되는 디테일들이 있거든요. 저희는 하나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결과물이 나왔을 때 ‘이거 만들려고 그렇게 오래 걸렸구나’란 말을 듣고 싶어요.”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플레인아카이브 백준오 대표#영화 아가씨 스틸사진집#3년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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