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종엽]경찰 ‘민주적’ 통제 위해서는 정보 경찰 제도 개선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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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사회부 차장
조종엽 사회부 차장
오래전 한 대형 화재사고를 취재했다. 병원에 모인 유족들과 대화를 이어가던 중 30대로 보이는 남녀가 들어섰다. 그들은 한쪽 구석에서 오래도록 말없이 서 있었다. 일을 하다가 사고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것 같은 차림새에 황망한 탓인지 빨개진 눈, 오누이 같은 느낌이 유족처럼 보였다. 사고 상황이나 고인에 관해 묻고자 말을 건넸지만 답이 없었다.

뒤늦게 신분을 밝힌 그들은 경찰 정보관(IO)이었다. 경찰 상부는 이들의 보고를 바탕으로 사고가 갈등으로 이어질 소지나 관련 상황의 장기화 가능성 등을 분석했을 것이다.

경찰이 대형 사고 유족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이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 경찰의 직무를 벗어난 ‘민간인 사찰’이었을까? 경찰의 정보 수집 범위를 제한했다는 2019∼2021년 제정·개정 경찰관 직무집행법과 관련 대통령령, 경찰청 훈령을 살펴봐도 선뜻 판단이 서지 않는다. 수집 범위를 열거한 뒤 ‘그 밖에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에 관한 정보’ ‘그 밖에 규정한 사항에 준하는 정보’ 식으로 애초에 폭넓게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탓이다.

경찰 정보는 정보관들이 발로 뛰어 현장에서 얻은 것들이 상당해 구체적이고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방대하기까지 하다. 3000명을 훌쩍 넘는 전국의 경찰 정보관이 보고서를 1장씩만 내도 3000장이 쌓인다. 여론 동향과 시위 정보, 공직자에 대한 세간의 평가, 노동계 재계 뒷얘기 등 사회 전반을 망라한 정보가 취합된다. 지난 정부에선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을 없앤 뒤 경찰 정보 의존도가 더욱 높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악용이다. 조현오 강신명 이철성 등 전 경찰청장 3명이 ‘맞춤형’ 선거정보 수집이나 댓글 여론 공작을 한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 선 뒤 정치 관여를 위한 정보 수집은 법으로 금지됐다. 그러나 경찰의 정보 기능이 속성상 칼자루를 쥔 사람에 따라 국민을 위해 쓰일 수도, 권력을 위해 쓰일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최근 정부의 움직임에서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이후 권한이 커진 경찰에 대한 장악력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정부는 행정안전부 장관 사무에 ‘치안’을 포함시키는 등 경찰을 지휘·감독하는 방안을 자문위원회를 통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4일 정부가 새 경찰청장 임명 전 이례적으로 경찰 계급 서열 2위인 치안정감을 대거 교체한 것도 이전 정부에서 치안정감으로 승진한 이들 가운데서 새 청장을 고르지 않겠다는 취지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다.

경찰의 정보 수집 범위가 여전히 광범위하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행안부 장관은 최근 취임 일성(一聲)으로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방안을 마련하라”고 했다. ‘민주적’이라는 말이 수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보 경찰 제도 개선도 이어져야 한다. 정책 정보 수집을 각 부처로 넘기는 등 성격별로 분리해 경찰의 정보 기능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조종엽 사회부 차장 jj@donga.com


#경찰#민주적 통제#정보 경찰 제도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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