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우먼파워 어디까지 왔나[장환수의 수(數)포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8일 1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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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운동 능력으로 본 남녀 차이 ◀
(하) 성 대결에서 이길 방법은 없나

서양 민주주의는 자신들이 착취했던 흑인 남성보다 백인 여성에게 참정권을 늦게 줬다. 골프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에서 ‘개와 여성 출입금지’ 푯말이 사라진 것은 20세기가 저물 무렵이다. 유리벽을 깨는 게 페미니즘인지 휴머니즘인지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엔 관심이 없다. 다만 남녀의 차이는 태초부터 있어 왔다. 스포츠 기자를 오래 하면서 품었던 궁금증. 운동 능력에서 남녀 차이는 과연 얼마나 날까. 종목별 부문별 편차는 어떨까. 여성이 이기는 역전 현상은 없을까.

그리 어려운 질문도 아닐 텐데 온종일 검색 해봐도 무릎을 칠 만한 답을 찾을 수 없다. 구름 잡는 이론과 설은 넘쳐나지만 구체적인 숫자가 나온 것은 전무하다. 수포츠의 갈 길은 험난하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수포츠가 아니다.

▶우선 기록경기 육상부터 살펴보자. 육상의 꽃인 100m와 200m 세계기록은 난공불락이다. ‘번개’ 우사인 볼트가 13년간, ‘달리는 패션모델’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가 34년간 근처에 오는 것조차 허용치 않고 있다. 100m는 볼트가 9초58, 그리피스 조이너가 10초49로 둘의 기록 차이는 91.3%(남자÷여자) 수준이다. 200m는 볼트가 19초19, 그리피스 조이너가 21초34로 89.9%이니 더 벌어진다.

그리피스 조이너의 역주
그리피스 조이너의 역주
아쉬운 것은 두 선수 모두 200m에서 기록 단축이 기대됐지만 이루지 못했다. 스타트보다 가속과 코너링 능력이 중요한 200m는 남자의 경우 100m 기록의 두 배보다 빠르고, 여자는 조금 더 나와야 일반적이다. 그런데 볼트는 0.03초, 그리피스 조이너는 0.36초를 넘겼다. 볼트는 너무 빨리 축구장으로, 그리피스 조이너는 1998년 39세의 젊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떠났다.

리우올림픽에서 우승한 후 세리머니를 하는 우사인 볼트.
리우올림픽에서 우승한 후 세리머니를 하는 우사인 볼트.


▶거리에 따른 남녀 차이는 어떨까. 스타디움에서 뛰는 트랙경기는 400m(90.4%), 800m(90.0%), 1만m(90.2%)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거리와 관계없이 그 격차가 엇비슷하다. 그러나 기자는 이렇게 믿고 싶다. 순발력과 근력이 중요한 단거리일수록 남녀 차이는 벌어져야 마땅한데 그리피스 조이너란 위대한 여성이 왜곡현상을 일으켰다고. 실제로 이후 30여 년간 세계대회에서 여자 100m 우승자들의 기록은 10초 후반대로 볼트와 비교하면 80%대 중반까지 뚝 떨어진다.

메달을 목에 걸고 눈물을 흘리는 그리피스 조이너.
메달을 목에 걸고 눈물을 흘리는 그리피스 조이너.
도로를 달리는 로드 경기는 양상이 다르다. 하프마라톤은 남자 57분31초, 여자 1시간2분52초로 91.5%. 마라톤은 남자 2시간01분39초, 여자 2시간14분04초로 90.7%다. 여자 선수의 경쟁력이 높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정반대 견해도 있다. 앞의 기록은 남녀가 같이 달린 혼성대회 기록이다. 남자 페이스메이커들이 여자 선수를 둘러싸고 뛴다. 이 때문에 국제육상연맹은 혼성대회와 여자대회 세계기록을 따로 관리한다. 여자만 뛴 대회의 세계기록은 하프가 1시간05분16초, 풀코스가 2시간17분01초다. 거의 3분 가까이 늦다. 이 경우 남녀 수준 차는 각각 88.1%, 88.8%로 확 벌어진다. 남녀가 따로 뛰는 경보 50km는 남자 3시간32분33초, 여자 3시간59분15초로 88.7%이니 비슷하다.

결국 트랙 중장거리보다는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이 남녀 차이가 더 벌어진 것으로 정리된다. 반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종목은 아닌 100km는 남자가 6시간9분14초, 여자가 6시간33분11초로 93.9% 수준이다. 이는 선수들이 기록보다는 순위 경쟁에 치중한 결과로 보인다.

▶육상 필드 경기에선 달리기보다 훨씬 차이가 난다. 높이뛰기는 남자가 2.45m, 여자가 2.09m로 85.3%(여자÷남자)다. 멀리뛰기는 84.0%(남자 8.95m, 여자 7.52m), 장대높이뛰기는 81.9%(남자 6.18m, 여자 5.06m)로 더 벌어진다. 필드가 트랙보다 순발력, 근력이 더 필요하고 종합적인 운동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창던지기는 73.4%(남자 98.48m, 여자 72.28m)로 절정에 이른다.

흥미로운 점은 포환던지기는 남자 23.37m, 여자 22.63m(96.8%)로 별 차이가 없다. 해머던지기도 남자 86.74m, 여자 82.98m(95.7%). 원반던지기는 여자(76.80m)가 남자(74.08m)를 앞선다. 그러나 이는 남녀가 사용하는 포환, 해머, 원반의 무게와 직경이 다른 데서 비롯된 것이다.

▶기록경기의 양대 산맥인 수영은 육상 트랙과 비슷하지만 거리가 늘어날수록 남녀 격차는 확연히 줄어든다. 총알 같은 스타트와 순발력이 필요한 자유형 50m 세계기록은 남자 20초91, 여자 23.67로 88.3% 수준. 반면 800m는 93.3%로 좁혀진다. 수영의 마라톤인 자유형 1500m는 94.6%. 선수들이 막판 스퍼트 전까지 순위 경쟁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200m까지 있는 배영은 자유형과 거의 똑같은 패턴이다. 반면 평영과 접영은 남녀 차이가 좀 더 난다. 에너지 소모량이 많기 때문이다. 평영은 50m에 이어 100m에서도 88.7% 수준이다. 접영은 100m가 89.1%, 200m가 89.4% 수준이다. 참고로 수영 4종목의 스피드는 자유형이 가장 빠르고 접영 배영 평영 순이다.

▶남녀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종목은 뭐니 뭐니 해도 역도다. 유일하게 남녀 체급 단위가 같은 69kg 이하급 남자 세계기록은 인상 166kg, 용상 198kg이다. 반면 여자는 인상 128kg, 용상 158kg. 남자가 드는 무게의 77.1%, 79.8%밖에 들지 못했다. 무제한급에선 차이가 더 벌어진다. 라샤 탈라카제는 지난해 12월 세계선수권에서 인상 225kg, 용상 267kg을 들어 8월 도쿄 올림픽에 이어 또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타타냐 카시리나(인상 155kg, 용상 193kg)는 그의 68.9%, 72.3%에 불과하다.

비교가 불가능해서 그렇지 복싱 레슬링 태권도 유도 같은 격투기에서 남녀가 맞붙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일반인들끼리 벌이는 스트리트 파이트에서야 여자가 이길 수도 있겠지만 엘리트 선수 간에 그런 결과는 나올 수가 없다. 구기종목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해볼만 하다고 여겨지는 골프에서 성 대결 시도는 제법 있었지만 여자 선수가 한 번도 만족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남녀 차이가 거의 없거나 오히려 역전된 종목은 없을까. 단순 비교가 가능한 기록경기로는 사격과 양궁이 있다. 사격은 10m 공기 소총과 권총, 25m 권총 등에서 여자가 남자 세계기록을 앞선다. 다른 세부 종목에서도 차이가 거의 없다. 양궁은 전체적으로는 남자가 약간 앞선다는 게 정설이지만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등에서 역전이 자주 일어난다. 이밖에 컬링, 승마 같은 경우는 성대결을 해볼 만하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집중력과 정확성이 요구되는 멘털 스포츠에서도 여자 선수가 강세를 보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바둑에선 루이나이웨이 9단이 2000년 국내 최고 기전인 동아일보 국수전에서 우승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여자 프로 기사의 실력은 남자 시니어 프로 기사와 비슷하거나 약간 아래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 달로 사상 유례가 없는 100개월 연속 국내 여자 랭킹 1위를 기록 중인 최정 9단은 세계대회 6번을 포함해 22번이나 우승했지만 혼성 대회에선 2019년 참저축은행배에서 4강에 오른 게 최고 성적이다. 남녀 통합 랭킹은 29위. e스포츠인 스타크래프트에선 여자 게이머가 우승한 적은 없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독자들께 죄송하지만 겨울 스포츠 종목 비교와 골프 성대결에서 여자 선수가 이길 수 있는 비법 등에 대해선 다음 주에 연재할 것을 약속드린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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