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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치즈, 미식가의 첫걸음[정기범의 본 아페티]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입력 2021-11-18 03:00업데이트 2021-11-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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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프랑스에 오기 전 치즈 하면 고작 피자 위에 올리는 모차렐라나 버거에서 패티와 빵 사이에 넣는 슬라이스 치즈 정도밖에 몰랐다. 25년간 프랑스에 살면서 360여 종에 달하는 치즈를 접하고 그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1인당 연간 치즈 소비량이 15kg에 달하는 프랑스인들의 치즈 사랑은 치즈, 버터와 같은 유제품들을 판매하는 크레므리라는 가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대형 마트나 동네 슈퍼에도 수십에서 수백 종이 있을 만큼 치즈는 일상의 음식이다.

7, 8세기경 수도사들이 고기를 먹는 게 금기시되자 소, 염소의 젖을 이용해 처음 만든 후, 제조기술이 전파되며 확산된 치즈는 프랑스인들에게 오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치즈는 장인들의 손을 거치는 사이 깊은 풍미를 더하는데, 발효되며 맛의 깊이를 더해가는 모양새는 우리네 묵은지와 닮았다.

법관이자 미식가로 유명했던 브리야사바랭은 “치즈가 없는 후식은 눈 한쪽이 없는 미녀와 같다”고 말했는데 그만큼 강렬한 치즈 사랑을 상징하는 말이다. 실제로 고급 레스토랑을 뜻하는 가스트로노미에 가면 언제나 커다란 손수레를 가득 채운 치즈 가운데 자기 취향에 따라 3, 4종을 고르는 것으로 만찬이 마무리될 정도다. 치즈 중에는 브리야사바랭의 이름을 딴 치즈도 있는데, 이 치즈는 1890년 처음 제조된 후 1930년대부터 상업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으며 크림 향이 나는 순한 풍미가 퍽 인상적이다.

이 외에도 노르망디의 부인들이 나폴레옹에게 대접했다는 카망베르, 파리 근교의 마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치즈의 왕’ 브리, 알프스 산맥 콩테 지역에서 생산되는 콩테, 푸른곰팡이가 핏줄처럼 퍼진 ‘블루치즈의 대명사’ 로크포르 등이 있다. 사실 레스토랑이나 일반 가정집에 초대를 받았을 때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크게 당황할 일은 없다.

식사의 마지막 코스에 등장하는 치즈 외에 퐁뒤와 더불어 겨울철이면 전 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요리인 라클레트 치즈는 한 끼 식사 대용으로 훌륭하다. 프랑스어로 ‘긁다’라는 뜻을 가진 이 치즈는 불에 쬐어 녹인 단면을 칼로 긁어 찐 감자 등에 얹어 먹는다. 겨울철 다양한 먹거리가 없는 프랑스와 스위스 산간 지역에서 오랫동안 저장이 가능한 감자와 치즈, 말린 소시지, 작은 오이피클 등과 함께 와인을 곁들여 먹던 습관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치즈는 제대로 프렌치를 즐기기 위해서 도전해야 할 과정 중 하나다. 느끼하다는 선입견을 갖지 말고 하나씩 접해보는 게 미식가가 되기 위한 첫걸음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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