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아프간인, 난민지위 인정 가능… 예멘 때와 달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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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난민사태’ 총괄 김도균 전 청장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 때 법무부 제주출입국·외국인청장으로서 예멘인들의 입도부터 수용, 난민 심사 등을 총괄 지휘했던 김도균 제주 한라대 특임교수(59·사진)는 2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예멘 사태와 달리 아프가니스탄인은 법적 난민 지위가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교수가 예멘 사태를 총괄 지휘할 때 법적 난민의 지위를 받은 예멘인의 수는 많지 않았다. 제주 예멘인 484명 중 법적 난민 지위는 2명. 나머지는 난민의 지위보다 불안정하지만 취업이 가능한 인도적 체류허가 412명, 단순 불인정 56명, 직권종료 14명이었다. 김 교수는 예멘 사태를 통해 올해 아프간 사태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를 총괄 지휘한 김도균 전 법무부 제주출입국·외국인청장이 25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를 총괄 지휘한 김도균 전 법무부 제주출입국·외국인청장이 25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6일 아프간 현지에서 한국 관련 기관과 일한 아프간인 391명이 입국한다. 이들이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있나.

“예멘 난민 사태 때와는 다르다. 예멘인들은 내전으로 인해 한국으로 왔다. 예멘 내전은 난민법상 난민 인정 사유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아프간 사태는 다르다. 충분히 종교·신분·정치 등 사유로 박해를 받았거나 받을 위험이 명백하다는 정보가 쌓여있다.”

―아프간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난민이 되는 건가.

“난민으로 인정되려면 본국에서 박해를 받았거나 받을 위험이 명백해야 한다. 이렇게 난민으로 인정돼 사회보장, 가족 초정, 기초생활보장 등 ‘준국민’ 대우를 받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이 박해를 입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프간의 처참한 상황에 대한 사실 조사가 많이 이뤄져 ‘박해가 있거나 예상된다’는 점이 인정되기 쉽다. 한국 등 외국 관련 기관에서 일한 아프간인에 대해 탈레반 정권의 보복조치가 예상되는 상황이 그 예시다. 부르카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살될 위험이 있는 아프간 여성도 마찬가지다. 물론 난민 심사는 개별 신청자의 개별 사례 및 진술을 바탕으로 증거를 조사해 결정한다. 모두가 난민 인정을 받을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불쌍하니까 난민으로 인정해주자’라고 절대 못한다. 당연히 현행 난민법과 유엔난민협약 등을 따져 결정한다.”

―난민 요건을 따질 때 ‘국익이냐 인권이냐’ 중 무엇이 먼저냐.

“국익이다. 그런데, 인권을 고려하는 것도 국익이다.”

―아프간 난민이 모호하다. 누가 아프간 난민인가.

“아프간 피란민은 크게 세 분류다. 첫째는 아프간의 한국 관련 기관에서 일하던 아프간 현지인과 그 가족 391명이다. 26일 한국으로 이송된다. 둘째는 국내 체류하고 있던 아프간인 434명이다. 셋째는 추후에 개인적으로 산 넘고 물 건너 한국으로 입국하는 아프간인이다. 이들은 대부분 단기비자(C-3)로 한국에 입국한다. 90일 이내까지 체류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법무부에 난민 신청을 해 박해를 인정받아 난민으로 인정되면 난민 비자를 발급 받고 ‘준국민’ 대우를 받는다. 5년마다 정기적으로 체류 기간을 연장하면 된다. 이중 난민으로 인정되지 못하면 그보다 한 단계 아래로, 취업만 가능하지 사회보장 등은 불가능한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는다.”

―‘돈도 줘야 하고 집도 줘야 하는데 왜 난민을 받냐’는 국민의 일부 여론도 있다. ‘그렇게 좋으면 기자 네가 데리고 살아라’는 댓글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경제적 손실이 크지 않다. 26일에 한국에 들어오는 아프간인이 3만 명도 아니고 3000명 도 아니고 391명이다. 그정도 예산은 이미 짜여져 있고 행정력도 있다. 한국에 피란을 왔다고 해서 무조건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는다. 난민을 신청하면 생계비를 지급할 수 있긴 한다. 이 경우에도 예산이 한정돼 있고 주거 지원을 받는 난민이라면 한 달에 20만 원 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그 정도로는 식음료 값도 안 된다. 예산도 한정돼 있어 급한 사람부터 준다. 더구나 난민으로 인정받더라도 자동으로 주는 돈은 없다. 취업을 한 난민에게는 기초생활수급도 주지 않는다.”

2018년 제주도에서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이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다
2018년 제주도에서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이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난민이 ‘범죄의 온상’이라는 국민 의견도 있다. 예멘 사태를 겪어보니 어떻나.

“난민들도 범죄를 저지르면 보호소에 구금되거나 강제퇴거 명령을 받아 출국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장을 하며 제주 예멘 난민 사태를 총괄할 때 보고 받은 예멘인의 범죄 발생 보고는 단 2건이었다. 하나는 수용시설 주방에서 예멘인들끼리 설거지를 하다 서로 싸운 건이었다. 다른 하나는 길거리에서 신용카드를 주워 마트에서 사용한 예멘인이었다. 당시 가짜뉴스 등에서 이야기하듯이 살인, 강간, 강도 등 흉악범죄를 저지른 예멘인은 없었다.”

―제주 예멘인들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나.

“예멘인들끼리 제주도에서 식당을 열었다. 이때 식당에서 그들을 돕던 한국 여성이 있었다. 식당 사장을 맡은 예멘인이 한국 여성을 직원으로 채용했는데 그 여성이 자신들에게 잘해주니 식당 이름을 ‘와르다’라고 지었다. 예멘어로 ‘꽃’이라는 뜻이다. 얼마 전에 예멘인 사장과 한국인 여성 직원이 결혼했다더라. 우리 삶에 악영향을 미칠 것 같고, 불안 요소일줄 알았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한국인과 공존하며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산업구조상 도움이 되기도 하나.

“우리 나라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물론 있다. 물론 타국에서 온 노동력보다는 생산성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자신들이 궂은 일을 하는 직종에 취업해서 국가의 구호를 받지 않고 자립해서 살아가는 것 정도도 고맙다.”

―한국에 온 아프간인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은 무엇일까.

“역지사지 해보면 답이 나온다. 가장 필요한 건 안정이다. ‘괜찮다. 여기는 안전한 곳이다. 여기는 대한민국이다. 해칠 사람이 없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멘 사태를 떠올려보면, 우리도 난민들이 불안할 수 있지만 난민들이 우리를 보고 더 불안하고 잠 못 잔다. 난민들은 생명의 위협을 피해 종교·문화·언어가 다른 나라에 왔기 때문이다. 예멘 사태 때 예멘인들은 수용시설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뉴스 기사에 달리는 댓글을 보고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깨달았다. 예멘인들이 오히려 한국인들에게 테러를 당할까봐 ‘절대 혼자 다니지 말고 2인 1조로 다닐 것’ ‘길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피할 것’ 등의 행동강령을 정했다. 숫자를 보라. 5000만 명대 400여 명이다. 어디가 절대 다수이고 어디가 사회적 ‘강자’냐.”

―그럼 우리는 어떻게 아프간인들과 ‘공존’할 수 있을까.

“공존이라고 이야기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국내에 들어온 아프간인 숫자가 적다. 국내 체류 아프간인이 434명이고 새로 국내 이송된 사람이 391명. 합치면 825명이다. 이들이 전국에 흩어져 살면 몇 년 동안 거리에서 아프간인을 한 번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이 가장 바라는 건 ‘우리에게 관심 가지지 말아주십시오. 제가 일하고 제가 벌어서 범죄 안 저지르고 살겠습니다’라는 것이다. 내버려두고 서로의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확실한 ‘공존’이다.”

―그래도 난민에 대한 혐오나 차별은 남는다.


“인권의 측면에서 물론 혐오나 차별은 안 된다. 그런데 차별이나 박해, 혐오를 해봐라. 오히려 난민들은 더 눈치를 보고 더 두려워하고, 더 반감이 생긴다. 품어주고 도와주고 지원하는 건 한 단계 더 나아간 단계다. 안 해줘도 된다. 단지 차별이나 혐오만 멈추고 내버려 둬도 공존은 가능하다.”

―난민과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막을 방법이 있나.

“원론적인 답변이지만 예멘 사태를 겪어보니 교육만이 답이더라. 상호문화교육이 필요하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온 난민에게 삼겹살을 구워 먹으라고 강요할 필요 없다. 너는 너 먹고 싶은 것 먹고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것 먹을게. 어렵게 말하면 상호문화를 인정하는 세계시민교육이다. 우리 아이들이 이슬람이나 아프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가짜뉴스로 접하는 것이 더 많을 터. 난민들은 자신들 중 한 명이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난민 전체가 욕을 먹는다는 것을 잘 안다. 성숙한 국민 인식이 생겼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만한 능력이 있는 국가다.”

―예멘 사태 이후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나.

“예멘 사태 때 당시 법무부 장관이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으로 난민 인정이 불허된 사람의 이의신청을 심리하는 난민위원회의 독립, 난민 전담 법원의 설치 등을 약속했다. 아직 실현되지 않아 아쉽다.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 때는 난민법상 예멘 내전을 이유로 예멘인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계적 추세는 국익 등을 따져 내전을 이유로 피란 온 이들에게도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예멘인이 있나.


“한국 관련 기관에서 일해 26일 한국으로 피란 온 아프간 현지인들 중 신생아가 3명 있다고 들었다. 예멘 사태 때도 배가 불러 제주도에 온 여성이 있었다. 제주에서 아기가 탄생했을 때 육아용품과 금일봉을 보내줬다. 조금 아쉬워서 제주도 사람이라는 뜻의 ‘제민’(濟民)‘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예멘인 아빠가 좋아하더라.”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아프간인#난민지위#예멘 난민사태#김도균 전 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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