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상향의 표현[간호섭의 패션 談談]〈55〉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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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주의 패션

프랑수아 제라르 ‘마담 르카미에’, 1805년.
프랑수아 제라르 ‘마담 르카미에’, 1805년.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신고전주의 양식(Neo-Classicism Style)은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의 고전적 양식에 대한 재해석으로 순수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했습니다. 그 이면에는 변화된 시민 의식의 발현도 한몫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자유화 물결 속에서 시민들은 귀족들이 사랑했던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 대신 고대 그리스·로마 예술에서 나타났던 고전적 아름다움을 탐미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의 미술사가인 요한 요아힘 빙켈만은 고전주의 양식의 미학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는 18세기 영국에서 시작해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신고전주의 양식은 이 시기 시민들의 평등의식과 새로운 시대의 도덕적 기준 그리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추구까지 어우러져 모든 생활양식에 스며들었습니다.

이러한 양식은 스스로를 황제라 칭한 나폴레옹 1세 시대(1804∼1815년)에 크게 번성했습니다. ‘엠파이어 스타일’이라는 그리스·로마풍의 신고전주의 양식이 패션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리스·로마 조각상을 연상케 하는 헤어스타일입니다. 나폴레옹 1세의 황후 조제핀의 헤어스타일은 그 시대 여성들의 표본이었습니다. 곱슬거리는 긴 머리카락을 머리 가운데나 뒤에서 올리는 스타일은 고대 스타일을 재현했습니다. 또 옆머리에서 자연스럽게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헤어밴드나 깃털, 보석, 리본으로 장식했습니다.

의상도 이상향을 추구하는 순백색 의상에 과장 없는 단순한 스타일로 표현되었습니다. 영국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얇고 저렴한 면직물이 보급되어 인체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허리선을 가슴선 바로 밑까지 올린 엠파이어 패션스타일이 완성되었습니다. 깊게 판 네크라인에 퍼프소매를 달고, 고대 그리스의 키톤같이 자연스러운 주름을 잡았습니다.

이후에는 인체를 드러내는 유행이 극도로 치달아 속살이 비칠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각선미를 서로 뽐내듯 경쟁적으로 얇은 모슬린 직물을 사용하고, 추운 겨울에도 이러한 스타일을 포기하지 않아 어깨에 숄은 둘렀으나 감기나 폐렴에 걸리는 위험까지 감수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이렇게 엠파이어 스타일 드레스를 고집하다가 폐렴에 걸리는 일이 많아져 폐렴드레스(Pneumonia Dress)라는 오명이 붙었고, 폐렴은 모슬린 병(Muslin Disease)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었습니다.

올해는 엠파이어 스타일을 번성시킨 나폴레옹 서거(1821년)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시민혁명을 통해 변화된 사회에서 스스로 월계관을 쓰고 황제에 올랐지만 귀양지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던 그의 인생은 이상에서 출발했으나 과한 욕망과 뒤틀린 미의식을 초래한 엠파이어 스타일의 드레스와 묘하게 닮았습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신고전주의 양식#엠파이어 스타일#나폴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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