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첫아이 낳는 드라마, 노인 안락사 음모 소설 [서영아의 100세 카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30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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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 사회, 창작 세계의 상상력도 달라지나
국가 활력 위해 청년 0.1% 돌연사 시키는 설정도
눈앞에 닥친 초고령 사회의 한 단면

NHK 홈페이지 캡처.
NHK 홈페이지 캡처.


“나, 임신이래요.”

만 65세를 꽉 채워 정년퇴직하는 날, 직장 동료들의 회식 제안도 뿌리치고 집으로 달려간 에즈키에게 폭탄발언이 날아왔다. 오늘은 며칠 전 일터에서 구역질을 하며 쓰러진 69세 아내 유코가 병원에 다녀오는 날이고, 아무래도 뇌졸중이 의심됐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받은 꽃다발을 건네자 아내에게 들은 말이 ‘임신’이었다.

○70세 초산 부부 얘기…만화 같지만 리얼한 육아일기
“뭐라고? 벌써 노망이 왔나?” 하지만 사실이었다. 부부가 평생 염원했지만 포기했던 아이가 이제야 찾아와준 것이다. 이게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경악한 에즈키는 인터넷 검색까지 해보다가 70세 인도 할머니가 첫 출산을 했다는 기사를 찾아낸다. 이 경우는 인공수정으로 인한 임신이다.

“그래서 어쩌려고?”

“어쩌긴, 낳아야죠.”

초고령출산은 생명이 오가는 위험한 일. 주변에서는 모두가 뜯어말리는데 아내는 낳겠다고 고집한다. 부부가 함께 찾은 대학병원에서 의사가 “임신, 축하드립니다”고 하자 아내가 울기 시작했다. “축하한다는 말 처음 들었어요….” 경악을 거듭해온 에즈키도 병원에서 초음파 영상에 비친 태아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엇인가 솟아오른다. 4월 NHK가 방영한 ‘세븐티(70세) 초산’이란 3부작 드라마의 앞부분이다.

NHK 드라마 ‘세븐티 초산’의 한 장면. 합계 136세 부부의 고군분투 출산과 육아가 시작된다. NHK 홈페이지 캡처.
NHK 드라마 ‘세븐티 초산’의 한 장면. 합계 136세 부부의 고군분투 출산과 육아가 시작된다. NHK 홈페이지 캡처.


○인구구조 변한 사회, 상상력도 달라져
초고령 사회 일본에서는 창작의 세계에서도 색다른 상상이 발휘되는 듯하다. ‘세븐티 초산’은 4월 어느 금요일 저녁에 만난 일본인 주재원이 이걸 봐야 한다며 방송 시간에 맞춰 귀가를 서두르는 바람에 알게 됐다. 70세에 출산이라니, 처음엔 망측하게 느껴졌지만 드라마를 보다 보니 빠져든다. 실제 나이 68세인 아내 역의 배우를 보면 아주 불가능한 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요즘 노인은 나이와 실물 차이가 워낙 크지 않던가.

드라마의 원작인 만화 ‘세븐티 초산’ ‘세븐티 드림스’ 표지들.
드라마의 원작인 만화 ‘세븐티 초산’ ‘세븐티 드림스’ 표지들.


같은 제목의 만화 시리즈가 원작인데, 엄마 나이 70세에 출산한 주인공 부부가 건강한 딸을 낳아 우여곡절을 겪으며 유치원에 보내기까지 키워내는 과정을 2016년부터 현재까지 연재 중이다. 연재를 묶은 단행본은 ‘세븐티 초산’ 5권을 끝낸 뒤 ‘세븐티 드림’으로 이어져 4권까지 나왔는데, 엄마가 75세 생일 케익의 촛불을 끄는 장면에서 끝났다.

원작도 드라마도 노인 출산이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빼면 출산과 육아의 과정은 리얼하기 그지없다. 여기에 부부의 나이 때문에 한층 대조적으로 느껴지는 생명과 삶에 대한 경외감이나 감동도 각별하다. 은퇴의 허탈함을 압도하는 출산과 육아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은 세월과 더불어 바래져갔을 소시민 부부에게 미래라는 찬란한 빛을 던져줬다. 그래서 딸의 이름은 ‘미라이(未來)’이고, 드라마는 가족 모두의 성장사이기도 하다. ‘함께 울고 웃는다’는 독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국가주도 노인 안락사 음모 다룬 소설도 등장
‘70세 초산’이 탄생을 다뤘다면 죽음을 다룬 드라마 쪽은 암울한 현실을 부각시켜 준다. 2015년 방영된 NHK 8부작 드라마 ‘하레쓰(破裂)’는 국가 주도의 안락사 음모를 소재로 해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 현역 의사인 구사카베 요(久坂部羊)가 2004년 펴낸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NHK드라마 ‘하레쓰(破裂)’의 DVD 판매용 포스터. 현직의사가 쓴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2015년 방영됐다. 국가 주도의 안락사 음모를 다뤘다. NHK홈페이지 캡처. 오른쪽은 소설 ‘하레쓰’ 표지.
NHK드라마 ‘하레쓰(破裂)’의 DVD 판매용 포스터. 현직의사가 쓴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2015년 방영됐다. 국가 주도의 안락사 음모를 다뤘다. NHK홈페이지 캡처. 오른쪽은 소설 ‘하레쓰’ 표지.


한 의사가 노화된 심장 기능을 되살리는 주사치료법을 개발했는데, 이 요법에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심장이 갑자기 파열되는 부작용이 있다는 데서 얘기는 시작된다. 초고령 사회 일본의 미래를 우려하던 ‘국민생활성’의 천재 관료 사쿠마가 이 부작용을 이용해 노인을 줄이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 주사를 맞은 노인들이 수개월간 정정하다가 돌연사로 사망한다면 막대한 의료 재정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한 것이다.

‘국민생활성의 마키아벨리’라 불리던 사쿠마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이 치료법을 손에 넣은 뒤 ‘프로젝트 천수(天壽)’라는 이름을 붙여 노인 대상 시술을 대대적으로 시행한다. 노인들은 한동안 건강을 되찾지만 하나, 둘 심장파열로 쓰러져 간다. 질병을 앓던 노인들도 점차 이런 결말을 알게 되지만 그래도 시술을 택한다. 결국 경찰에 체포되는 사쿠마는 “초고령 사회를 앞두고 무위무책(無爲無策)으로 있으면 이 나라는 망한다”고 절규한다.

○초고령사회의 재정부담 등 현실 고민 부각
사쿠마는 평소 노인들의 꿈은 ‘핑핑 복쿠리(정정하게 살다가 갑자기 사망하는 모습을 나타냄)’라며 “그들도 온몸이 아프기만 한 상태로 연명하느니 시술로 다만 몇 달이라도 정정하고 행복한 삶을 원할 것”이라며 자신의 음모를 정당화했다. 이런 사쿠마에게 닥친 결말은 소설 말미에 뒷얘기처럼 나오는데,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그는 경찰조사를 받던 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잠금 증후군(locked in syndrom)이란 진단을 받는다. 의식은 말짱한데 뇌의 지시를 몸으로 전달하는 교뇌 기능이 막혀 남은 평생을 뇌 속에 갇힌 상태로 꼼짝할 수 없게 돼 버린 것이다.

책이 발간된 이듬해인 2005년 일본은 초고령 사회(인구 20%가 고령자)로 진입했다. 한국도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에 들어서니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당신에게 딱 24시간만 남아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만화로 발표되고 2008년 영화화되기도 한 ‘이키가미(逝紙)’도 발상이 특이하다. 제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발부된 징집영장 ‘아카가미(赤紙)’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이 나라에서는 모든 초등학교 신입생이 입학식날 예방주사를 맞는다. 접종이 끝난 뒤 교장선생의 훈시에서 그 취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여러분 중 몇 명은 어른이 될 때까지 살지 못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더욱더 내일 죽어도 좋을 정도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겁니다. 알았죠?” 멋모르는 아이들은 입을 모아 “네~”라고 대답한다.

예방접종은 ‘국가번영유지법’에 따른 것으로 주사를 통해 1000명에 한명 꼴로 특수 캡슐이 주입되는데, 대상자는 18~24세 기간에 캡슐이 터져 목숨을 잃게 된다. 법의 목적은 국민에게 생명의 가치를 재인식시킴으로써 국가를 풍요롭게 하는 것. 그런 죽음의 24시간 전에 관청에서 대상자에게 도착하는 사망예고증이 통칭 ‘이키가미’라 불리는 카드다.

영화 ‘이키가미’의 한 장면(왼쪽)과 만화 ‘이키가미’ 표지사진.
영화 ‘이키가미’의 한 장면(왼쪽)과 만화 ‘이키가미’ 표지사진.


전체의 나레이터 역할을 하는 주인공은 구청에서 근무하며 이키가미를 나눠주는 ‘이키가미 배달원’이다. 주인공은 증서를 나눠주면서 피하지 못할 죽음의 운명에 처한 사람들과 그 가족을 만나게 된다. 종이를 받은 젊은이는 저마다의 상황에서 남은 24시간의 인생을 어떻게 사용할지 절박하게 모색하고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하려 노력한다. 누군가는 부모와 화해하고 누구는 가장 소중한 사람을 만나러 가거나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을 하려 분주히 움직이게 된다. 만화는 매회 이키가미를 받은 젊은이가 어떻게 최후의 24시간을 지내고 죽어갔는지 묘사하고 주인공이 그것을 보고서로 작성한 뒤 소견을 붙이는 형식으로 그려졌다.

70세 출산의 생명과 성장이 주는 감동도, 국가 주도 안락사가 등장할 만큼 암울한 현실 인식도, 우리 앞에 다가온 초고령 사회가 보여주는 ‘비현실적이지만 리얼한’ 미래다. 또 내게 24시간만 남는다면 무엇을 할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에 대해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가 될 듯하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
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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