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저커버그가 가진 힘[이정향의 오후 3시]

이정향 영화감독 입력 2021-01-09 03:00수정 2021-01-09 04:24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25> 소셜네트워크

이정향 영화감독
개봉했을 때 남들이 다 봐도 나는 안 봤다. 작년 여름 2G 폰 서비스가 종료된 다음 날에야 스마트폰으로 갈아탄 나는 지금까지도 페이스북은커녕 카톡도 써본 적이 없다. 이런 내게 ‘5억 명의 온라인 친구, 최연소 억만장자, 하버드 천재’ 같은 문구가 큼직하게 박힌 영화 포스터는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가 5억이 15억 명으로 늘어날 때쯤 봤다.

하버드대 2학년인 마크 저커버그는 오만하고 재수 없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에게 차인 날, 홧김에 여학생들을 외모로 평가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든다. 여학생들의 사진을 구하느라 해킹을 했고, 여성을 비하했기에 학교로부터 경고를 받지만 그는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호들갑이냐며, 자기 덕분에 보안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걸 확인했으니 고마워해야 한다고 유세를 떤다. 이 사건으로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선배 윙클보스 형제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주면서 동업을 제안한다. 저커버그는 수락함과 동시에 친구 새버린을 찾아가 그 아이디어를 자신의 것인 양 얘기하며 동업을 제안한다. 투자하면 수익의 30%를 주겠다며. 그러고는 윙클보스 형제를 따돌리고 ‘페이스북’을 개설한다. 그 후, 페이스북이 승승장구하자 저커버그는 필요 없어진 공동 창업자 새버린을 쫓아낸다. 영화는 저커버그와 윙클보스 형제의 소송, 그리고 새버린과의 소송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으며 페이스북의 탄생 비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를 본 후 놀랐다. 포스터의 광고 문구와 영화 내용이 정반대라서. 찾아보니 미국 포스터에는 ‘몇 명을 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5억의 친구를 가질 수 없다’라고 큼직하게 적혀 있다. 영화 주제와도 딱 맞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영웅 찬양 식의 문구로 바꿨을까? 그래서인지 댓글에도 ‘저커버그처럼 되고 싶다. 부럽다’ 식의 감상이 많아서 섬뜩했다.

점점 나이 어린 재벌이 늘어나는 추세다. 아이돌 가수, 운동선수, 그리고 정보기술(IT) 천재들이 그렇다. 게다가 이제는 돈이 권력인 시대다. 그래서 부를 가진 이들의 인성이 무척 중요해졌다. 저커버그는 양친이 모두 의사라서 부유하게 자랐고, 비싼 영재 교육도 받았다지만 정말 중요한 건 놓친 것 같다. 그는 고소인과 변호사 앞에서 여전히 자신은 잘못이 없다며 곤란한 질문은 회피하거나 딴전을 피우다가 불리해지자 마지못해 합의를 해준다. 이런 영화 속 저커버그로부터 12년이 흘렀다. 그는 이제 전 세계 소셜네트워크의 황제다. 27억 명의 개인 정보가 그의 손 안에 있고, 마음만 먹으면 세계 여론을 조장할 수도 있는 권력을 가졌다. 사리사욕에 빠지지 않는 올바른 인성이 더욱 절실한 때이다. 나만의 노파심이 아니길 빈다.

주요기사
이정향 영화감독
#이정향의 오후3시#이정향감독#저커버그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