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앙코르 문명 집어삼킨 기후변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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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한국기상협회 이사장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한국기상협회 이사장
“교수님, 앙코르와트 문명이 가뭄으로 붕괴되었다는 것은 믿기가 어렵습니다. 이곳은 열대우림지역으로 비가 많이 오는 데다 이 지역에는 ‘톤레삽’이라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뭄으로 쌀농사가 붕괴되었다니요?”

대학에서 ‘기후와 문명’을 강의하는 중 받았던 질문이다. 앙코르와트 문명은 지금의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를 통일해 대제국을 만들었다. 쌀농사가 기반이 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엘니뇨로 인해 가뭄이 지속돼 쌀 경제가 파탄에 이르렀고 결국 앙코르와트 제국은 열대우림 속에 잠들어 버렸다. 지금도 강력한 엘니뇨가 발생하면 동남아시아 지역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린다.

“과거의 수많은 대국들은 기후조건의 유불리에 따라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했다.”(엘스워드 헌팅턴) 세계 문명의 흥망사를 보면 헌팅턴의 말처럼 기후변화가 문명을 흥하게 하거나 붕괴시켰다. 고대문명을 보자. 인류 최초의 문명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기원전 3500년경에 수메르인들이 세운 우루크를 비롯한 여러 도시국가들이 생겨나면서 본격적인 문명이 탄생했고 이어 이 지역을 아카드 제국이 통일했다. 그러나 기원전 2200년부터 약 300년 동안 건조화로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었고 기온이 2도 낮아졌다. 가뭄과 평균기온 2도 하강은 농작물의 생장에 치명적이다. 경제가 붕괴된 아카드 제국이 문명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집트 문명을 보자. 기후가 건조기에서 습윤기로 변하면서 아프리카 북반부는 물기가 많은 대초원이 되었다. 사하라 사막과 건조한 사바나에는 초목이 자라고 새와 짐승, 물고기도 많았다. 온화하고 서늘한 기후가 반복되며 나일강의 홍수를 조절했고 이런 기후여건은 고제국 성립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나일강의 풍부한 물은 곡식의 생산을 증대시켜 인구가 급증하면서 이집트 문명이 탄생했다. 이집트 초기 왕조가 세워지고 고왕국 시대에 이르는 6개의 왕조 시대까지 기후가 온난하고 비도 적당히 내렸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열대수렴대(북동 무역풍과 남동 무역풍이 수렴하는 지역)가 남하하면서 사하라 지역은 사막으로 변했다.

이집트 예언자인 이퓨테르는 그때의 대기근을 이렇게 기록했다. “식량창고는 비었고/경비병은 땅바닥에 뻗었네. (중략) 사방에서 약탈의 무리가 날뛰고/노예도 자기가 줍는 것을 차지하네.” 기후변화로 고왕조가 붕괴되고 제1중간기가 이어진 뒤 중왕국에 의해 통일되기까지 141년 동안 이집트는 혼란에 빠졌다.

기후변화는 대제국뿐만 아니라 작은 문명도 붕괴시켰다. 에게해의 미노스 문명은 화산폭발과 쓰나미로 사라졌다. 요르단의 페트라 문명은 지진으로 물 관리 체계가 무너지면서 멸망했다. 오만의 우바르 문명은 몬순대 북상으로 비가 많이 내리면서 지하의 석회암 동굴이 무너져 모래 속에 묻히고 말았다.

인류 역사상 많은 문명을 붕괴시킨 기후변화는 지금의 기후변화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과학자들은 인류세(人類世)의 멸종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인류, 멸종을 피하려면 100년 내 지구를 떠나라.”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말이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한국기상협회 이사장


#기후변화#앙코르와트 문명#가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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