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준이법? 몰랐어요”… 비탈길 고임목 없이 주차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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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진 주차장 설치 의무화 첫 주말
법 제정 계기 사고난 놀이공원서도 규칙 준수 차량 찾아보기 힘들어
주차장 12곳중 안내표지판 2곳뿐… 관리인조차 “의무인줄 몰랐다”

‘하준이법’ 시행 첫날인 25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인근 경사진 주차장. 차들이 고임목 같은 미끄럼 방지 시설 없이 주차됐다. 주변에 고임목 설치 안내 표지가 있는데도 고임목을 사용한 차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하준이법’ 시행 첫날인 25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인근 경사진 주차장. 차들이 고임목 같은 미끄럼 방지 시설 없이 주차됐다. 주변에 고임목 설치 안내 표지가 있는데도 고임목을 사용한 차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고임목요? 해야 되는 줄 몰랐는데….”

27일 오전 경기 과천에 있는 한 놀이공원 주차장. 경사진 주차장에 차를 댄 이용객 A 씨(38)는 아들과 함께 곧장 매표소로 향했다. 뛰어가던 아들이 고임목을 가리키며 “이게 뭐야”라고 묻자 A 씨는 멈춰 섰다. A 씨는 그제야 ‘하준이법’ 관련 안내표지를 발견한 뒤 “법이 이미 시행된 줄 몰랐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 놀이공원 주차장은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하준이법’(개정 주차장법)의 계기가 됐던 사고가 벌어진 장소다. 2017년 10월 경사진 주차장에서 굴러 내려온 차량에 치여 최하준 군(당시 5세)이 세상을 떠났다. 사고가 벌어진 뒤 3년. 곳곳에는 이동형 고임목과 안내표지가 비치돼 있었다. 하지만 100여 대가 넘는 주차 차량 가운데 고임목을 사용한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이를 안내하거나 단속하는 직원 역시 없었다.

하준이법은 경사로 주차장의 설치·관리자는 고임목과 같은 미끄럼 방지 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경사로 주차장의 명확한 기준이나 고임목의 형태나 크기, 개수 및 관리방안 등 구체적 내용이 없어 현장에 혼란만 가중되고 있단 지적도 나온다.

25일 법이 시행된 뒤 주말까지 수도권 경사로 주차장 12곳을 돌아본 결과, 고임목 및 안내표지를 갖춘 곳은 놀이공원을 포함해 2군데뿐이었다. 이 2곳도 시설은 갖춰놓았지만, 실제로 고임목을 사용하는 이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차장 관리자는 “차량 한 대당 고임목을 몇 개 쓰라는 기준이 없어 (시민들에게) 안내가 어렵다. 법을 어기면 단속된다는 전달도 못 받았다”고 했다. 혼란스럽긴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법이 추상적이라 현장에서 적용하기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이동형 고임목을 잘못 방치하면 또 다른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이동형 고임목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을 경우 주행 중인 자동차가 고임목을 밟거나 보행자가 고임목에 걸려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고임목 관리규정도 명확히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하준이법 홍보도 부족했다. 주차장 12곳 가운데 6곳이 “하준이법이 시행됐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이렇다보니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노상주차장은 경사가 가팔랐는데도 고임목이 없었다. 차량도 여러 대가 주차돼 있었지만, 별도의 안내표지도 보이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주차장마다 상황이 달라 세부규정을 정하면 더 혼선이 벌어질 수 있다”며 “지자체별로 매년 1회 이상 지도·점검, 3년마다 안전관리실태 조사를 실시해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하준이법#경사진 주차장#미끄럼 방지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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