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시위-쌍용차 파업 손배소 취하’ 압박 시달리는 경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진상조사위 소송취하 권고 이어 청와대-정치권-시민단체 등
압력성 메시지 잇달아 쏟아내… 경찰청장, 해법찾기 고민 깊어
내부선 “불법과 타협 절대 안돼”

‘사면초가에 몰렸다.’

경찰이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2015년 ‘민중총궐기투쟁대회’ 당시 불법 시위로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과 관련해 최근 경찰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자조 섞인 목소리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달 경찰에 두 사건의 소송을 취하하라고 권고한 데 이어 청와대와 국회, 시민단체 등이 잇따라 관련 메시지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경찰이 민중총궐기 당시 입은 인적·물적 피해액 3억8000만여 원을 배상하라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한 1차 조정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경찰과 민노총 측은 손해배상 여부에 대해 의견차를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 소송이 2015년 세월호 추모집회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비슷한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경찰은 세월호 추모집회 당시 불법 시위로 입은 피해액 7780만여 원을 배상하라며 주최 측에 소송을 냈지만 최근 법원의 조정을 거쳐 양측이 사과하는 선에서 금전 배상 없이 종결했다. 경찰 관계자는 “법원 조정이라는 형식을 통해 사실상 소송을 취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쌍용차 파업 당시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서도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에서 전방위적으로 취하를 요구하고 나섰다. 법원은 2심에서 쌍용차 노조와 민노총 등이 11억6761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상태다.

이용선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은 17일 서울 대한문 앞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를 방문해 노조원들을 만났다. 쌍용차 노조 측은 “이 수석이 소송 취하 문제에 대해 절차를 밟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국회의원 29명은 이날 국가 소송을 맡아서 하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쌍용차 노조에 대한 소송을 취하해 달라’는 탄원서를 보냈다.

일선 경찰관들은 ‘소송이 취하되면 경찰이 불법과 타협하는 꼴’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소송을 취하한다면 명백한 배임죄를 저지르는 것이란 법조계 의견도 적지 않다. 13일 경찰청 앞에서 소송 취하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인 홍성환 경감(30·경찰대 28기)을 응원하는 내부 게시판 글에는 600개가 넘는 호응 댓글이 쏟아졌다.

민 청장은 홍 경감의 1인 시위 이후 참모들에게 소송 처분을 두고 깊은 고민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최근 여러 경로를 통해 청와대에 ‘소송 취하는 법리적 문제가 많아 쉽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취하 여부를 신중히 검토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메시지를 내놓는다면 경찰이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문 대통령이 14일 트위터에 쌍용차 해고자 119명 복직을 축하하며 ‘긴 고통의 시간이 통증으로 남는다’고 언급한 것을 ‘손해배상 소송 취하에 대한 대통령의 간접 메시지’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이에 경찰 일각에선 “민 청장이 직(職)을 걸고서라도 소송 취하를 막아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폭력시위#쌍용차 파업 손배소 취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