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화재 원인 추적해보니… 리콜해도 ‘불안감’ 증폭

  • 동아경제
  • 입력 2018년 8월 24일 0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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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코리아가 리콜을 시작한 첫날인 20일 오후 4시 50분경 경북 문경시 중부내륙고속도로 내서 기점 174.4km 지점에서 양평 방향으로 달리던 BMW 520d 승용차에 불이 나 차량이 전소되고 주변 야산에도 불이 붙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사고 차량은 이달 초 안전진단을 받았는데도 불이 났다. 한국도로공사 제공
BMW코리아가 리콜을 시작한 첫날인 20일 오후 4시 50분경 경북 문경시 중부내륙고속도로 내서 기점 174.4km 지점에서 양평 방향으로 달리던 BMW 520d 승용차에 불이 나 차량이 전소되고 주변 야산에도 불이 붙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사고 차량은 이달 초 안전진단을 받았는데도 불이 났다. 한국도로공사 제공
BMW 측 화재 원인 결론 과학적 논리 지적
EGR 밸브 설계상 매연 퇴적물 제거 어려워
고압 배기가스로 EGR 쿨러 부동액 역류 안돼
매연저감장치 작동 소프트웨어도 필수 점검

BMW 520d 엔진 발화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배기가스재순환장치(이하 EGR) 쿨러’ 결함이 일부 과학적으로 오류가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또 BMW가 준비한 EGR 모듈 개선품은 일시적이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게 국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난 6일 BMW는 한국에서 연쇄 엔진 화재사고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요한 에벤비클러 BMW그룹 품질 관리 부문 수석 부사장은 “디젤 엔진의 EGR 쿨러에서 발생하는 냉각수 누수 현상이 근본 화재 원인”이라며 “쿨러에서 냉각수가 새어 나와 EGR 파이프와 흡기다기관 등에 침전물이 쌓였고, 바이패스 밸브가 열려 냉각되지 않은 고온의 배기가스가 빠져나가면서 침전물에 불이 붙는다”고 설명했다. 즉 쿨러를 통해 새어나온 부동액 주성분인 에틸렌글리콜과 배기가스 오일 성분과 그을음이 함께 퇴적돼 배기가스 통로를 막아 문제가 됐다는 결론이다.
독일 EGR 밸브 제조사는 BMW 디젤 엔진의 경우 엔진회전수 약 3000rpm이 넘어가는 시점에 배기가스 흐름을 막는 밸브가 닫힌다고 설명한다. 피어버그 제품설명서 캡처
독일 EGR 밸브 제조사는 BMW 디젤 엔진의 경우 엔진회전수 약 3000rpm이 넘어가는 시점에 배기가스 흐름을 막는 밸브가 닫힌다고 설명한다. 피어버그 제품설명서 캡처

하지만 일각에서는 BMW 리콜 대상 차량 설계 구조상 EGR 쿨러 냉각수 누수가 화재사고 발단이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추정하고 있다. 호주연방대법원 선정 제조결함 전문가 장석원 박사는 “BMW 공식 입장을 보면 EGR 쿨러에서 결함이 불거져 화재 사고가 난다고 오해할 수 있다”면서 “근본적인 화재 이유는 EGR 파이프에 침전물이 쌓여 EGR 밸브가 완벽하게 차단되지 않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BMW EGR 밸브는 엔진회전수 3000rpm 이상일 때 닫히도록 설계 돼있다”며 “문제의 BMW 차량 경우 퇴적물로 인해 이 조건에도 EGR 밸브가 완전히 닫히지 않아 틈새로 고온의 배기가스가 통과하다보니 EGR 쿨러 내구성에 한계가 온 같다”고 덧붙였다.
BMW 배기가스는 흐름도 21번 EGR 밸브를 거쳐 20번 EGR 쿨러를 통과해 열기가 낮아지는 구조다. BMW그룹 유니버시티 테크니컬 트레이닝 엔진소개서 캡처
BMW 배기가스는 흐름도 21번 EGR 밸브를 거쳐 20번 EGR 쿨러를 통과해 열기가 낮아지는 구조다. BMW그룹 유니버시티 테크니컬 트레이닝 엔진소개서 캡처

장 박사가 BMW의 주장을 반박하는 또 다른 근거는 유체역학 원리다. 취재진이 입수한 지난 4월 환경부 리콜 대상인 BMW 535d(B57 엔진) 설계도를 보면 배기가스 순환과정은 다음과 같다. 그동안 BMW는 국토교통부와 언론의 요청에도 영업비밀을 이유로 이 같은 엔진 설계도 공개를 거부해왔다.

‘BMW그룹 유니버시티 테크니컬 트레이닝’이 미국에 배포한 엔진 설계 자료에 따르면 엔진 폭발 과정을 거친 배기가스는 최대 600도에 육박한다. 이 배기가스는 배기매니폴더를 지난다. 이후 온도가 일부 낮아진 배기가스는 EGR 밸브를 통과해 EGR 쿨러로 들어간다. EGR 쿨러에서 100도 이하로 냉각된 배기가스는 다시 흡기다기관으로 향한다.

장석원 박사는 “EGR 밸브가 BMW 520d와는 달리 쿨러 뒷단에 설치된 경우 쿨러 누수 발생 시 에틸렌글리콜이 EGR 밸브에 퇴적 될 수 있다”면서 “하지만 BMW 520d는 쿨러 전단에 설치돼 고압의 배기가스 흐름의 영향으로 에틸렌글리콜이 역류해 EGR 밸브에 퇴적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BMW EGR 밸브 납품업체인 독일 피어버그(Pierburg) 제품설명서에 따르면 BMW 디젤엔진 배기가스는 시간당 최대 180kg(50hPa)의 고압으로 EGR 밸브를 통과한다. 그러나 BMW가 한국에 제시한 논리대로라면 쉽게 말해 한쪽 방향으로 엄청난 바람이 부는데 반대편에서 빗방울 하나가 역류해 퇴적물을 만들어 화재 원인을 제공했다는 얘기다.

장 박사는 “EGR 밸브에 쌓인 퇴적물은 질소산화물이나 오일찌꺼기, 매연가루 성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국토교통부는 EGR 밸브와 쿨러에 쌓인 퇴적물을 화학 분석해 정확한 성분을 밝혀야한다”고 했다.
2013년 9월 일본 부품회사 덴소는 EGR 밸브 주변 퇴적물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버터플라이밸브(오른쪽)를 설계해 적용하고 있다. 덴소 EGR 밸브는 양쪽 끝에 날카로운 쇠를 달아 끈적하고 딱딱한 이물질을 청소한다. 왼쪽은 BMW에 장착된 독일 피어버그의 EGR 밸브.
2013년 9월 일본 부품회사 덴소는 EGR 밸브 주변 퇴적물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버터플라이밸브(오른쪽)를 설계해 적용하고 있다. 덴소 EGR 밸브는 양쪽 끝에 날카로운 쇠를 달아 끈적하고 딱딱한 이물질을 청소한다. 왼쪽은 BMW에 장착된 독일 피어버그의 EGR 밸브.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BMW가 리콜을 위해 제작한 개선품에도 의구심을 품었다. 부품 설계와 소프트웨어에서 모두 허점이 있다는 의견이다. 장 박사는 “BMW 기존 밸브 여닫이 부품으로는 퇴적물을 제거하는데 한계가 따른다”며 “일본 덴소의 경우 EGR 밸브 주변 퇴적물이 화재사고와 같은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2013년부터 여닫이 부품에 단단하고 날카로운 쇠를 별도로 달아 EGR 밸브 주변 퇴적물을 완벽히 없애는 구조로 설계했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미세먼지 저감장치(이하 DPF)가 작동하는 소프트웨어 설정이다.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DPF 연소과정에서 먼지를 태울 때 배출되는 배기가스 온도가 600도 수준”이라며 “BMW 차량은 DPF 작동 시에도 EGR 밸브와 쿨러를 통해 재순환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산차는 DPF 연소 때 밸브를 열리지 않도록 소프트웨어를 설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BMW에서 하드웨어만 짚어 리콜을 시행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전했다.

김 대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심각한 자동차 화재사고가 유독 한국에서만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데도, BMW는 화재발생 원인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내놓지 않은 채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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