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구자룡]교황과 시진핑, 聖俗의 ‘거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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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2016년 6월 로마 베드로광장에서 가진 행사에 참가한 한 사람이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흔들고 있다. 동아일보DB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6년 6월 로마 베드로광장에서 가진 행사에 참가한 한 사람이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흔들고 있다. 동아일보DB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前 베이징 특파원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前 베이징 특파원
중국 베이징(北京)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2년 전 영업용 택시를 탔을 때다. 50대 중반쯤의 기사가 낮은 목소리로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어디에서 위안을 얻느냐”고 물었다. 무슨 뜻인가 잠시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슬쩍 말을 이어갔다. “예수님을 만나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중국에 공인된 교회가 아닌 속칭 ‘가정교회’ 혹은 ‘지하교회’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전도를 이렇게 조심스럽게 은밀히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래도 라오포(老婆·아내)도 함께 믿어 다행이다”고 다소 엉뚱한 대답을 했다. 아마 부부간에도 숨기면서 지하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해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20일 폐막한 직후 중국이 바티칸과 중요 협약을 맺을 전망이라는 홍콩과 서방의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왕차오(王超) 외교부 유럽 담당 부부장(차관)이 로마 교황청을 방문해 중국내 가톨릭 주교 서품 절차에 대해 합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양측 수교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주교 임명 절차에 대한 타협이 이뤄져 수교가 이뤄지면 올해로 집권 2기를 맞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종교 자유 보장에 교황청의 공인을 받았다는 명분을 얻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6년 5월 취임 이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대만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에게는 또 한 번의 외교적 일격을 가하게 된다. 바티칸은 대만의 20개 수교국 중 유일하게 남은 유럽 국가다. 수교국 중 9개국이 가톨릭 국가여서 교황청을 따라 단교 도미노로 이어질 수도 있다.

중국은 교황청이 1951년 대만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자 관계를 단절하고 자체적으로 주교를 임명해 왔다. 교황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별도로 주교를 임명해 비공식적으로 활동하도록 했다.

주교 임명권 문제가 해결되면 수교로 이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많다. 주교 임명권 문제는 2010년 ‘베트남 모델’이 적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이 지하교회까지 참여하는 주교단을 구성해 주교를 추천하면 교황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중국 정부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바티칸이 임명한 성직자를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임명하는 ‘자선자성(自選自聖) 원칙’을 고수해 관영 ‘천주교 애국회’ 소속의 성당만을 인정하고 있다.

개신교 쪽은 이른바 ‘삼자(三自)교회’만을 인정한다. ‘삼자교회’란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은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위원회’ 소속의 교회다. 삼자란 자치(自治) 자양(自養) 자전(自傳)을 말한다. 가톨릭과 기독교를 불문하고 중국내 활동은 어떤 외부 세력의 지배나 간섭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세력이 중국에 들어올 때 서양 기독교가 앞잡이를 했다는 의식이 바탕에 남아 있다. 중국 헌법 36조는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갖는다’고 명시하면서도 ‘종교 단체나 종교 사무는 외국 세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함께 규정하고 있다.

교황청의 타협이 굴복이라는 비판도 많다. 지하교회 신도들은 공산당의 통제를 받게 하는 것이라며 교황청이 배신했다는 반발도 있다고 한다.

바티칸의 한 고위 소식통은 “천주교는 중국 내에서 여전히 ‘새장 안의 새’이겠지만 새장은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앞으로 새장을 1cm라도 더 키우기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유럽의 교세가 쪼그라들고 북미와 남미의 성장이 정체 또는 둔화하고 있어 바티칸으로서는 중국이 ‘꿈의 시장’”이라는 전문가의 분석을 소개했다. 중국내 기독교 인구는 지하교회를 포함해 줄잡아 1억 명이 넘고 2030년에는 2억4000만 명에 달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13년 3월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중국과의 수교에 적극적이었다. 2014년 8월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비행기가 중국 상공을 지날 때 가진 기내 인터뷰에서 “내일이라도 중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5일 바티칸에서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 교구의 쉬훙건(徐宏根) 주교를 접견해 단교 이후 처음으로 교황과 중국 당국이 임명한 주교가 만났다.

앞서 교황청은 지난해 12월 바티칸이 서품했던 광둥(廣東)성과 푸젠(福建)성의 두 명의 주교에게 자리를 애국회에 물려주라고 지시했다. 중국이 임명한 애국회 주교 7명에 대한 파문도 취소하고 모두 성직자로 인정하는 등 수교 준비 작업을 해왔다.

중국과 바티칸의 수교가 임박했다는 관측은 그동안 몇 차례 나왔지만 수면 아래로 가라앉곤 했다. 수교 여부에 관계없이 중국내에서 속삭이지 않고 전도하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명실상부한 종교의 자유 분위기가 더욱 높아질지 관심이다.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前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 가정교회#지하교회#양회#왕차오#자선자성 원칙#프란치스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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