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세에 까막눈 탈출…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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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학습관서 한글 깨친 할머니들

“이건 뭐예요?”

아들이 어릴 적 책을 보며 질문할 때면 엄마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쓰린 마음을 들킬까 천장만 올려봤다. 엄마는 한글을 몰랐다.

김현정 할머니(79)는 칠순이 넘어서도 까막눈이었다. 광복과 6·25전쟁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평생 은행에서 돈을 부치거나, 관공서에 갈 때면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평생 눈 뜬 장님이었죠.”

이랬던 김 할머니의 삶은 5년 전 서울 노원평생학습관에서 초등·중등학력 인정 문해(文解)교육을 받으며 달라졌다. 우선 글을 익힌 뒤 마음속에 담아뒀던 말을 글로 풀었다. 한글을 가르쳐준 교사에게 편지로 감사인사를 처음으로 썼다. 돌아가신 부모님에게도 편지를 썼다. 김 할머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며 웃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정정임 할머니(68)는 3년 전 암 판정을 받고 공부를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배우지 못한 한을 풀고 싶었다. 그는 어릴 적 동생을 뒷바라지하느라 학교를 못 다녔다. 글을 몰라 처음 가는 곳이면 언제나 택시를 탔다. 중요한 약속 장소엔 하루 전날 다녀왔다. 길을 헤매다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서였다.

김영자 할머니(73)의 애창곡은 ‘비 내리는 고모령’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김 할머니는 노래방에 가도 글을 몰라 멍하니 있곤 했다. 하지만 서울 마포구 양원주부교실에서 한글을 배우면서 달라졌다. “노래방이든 어디든 이젠 마음 편히 다닙니다.”

서울시교육청은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시교육청교육연수원에서 이들처럼 뒤늦게 초중학교 과정을 마친 만학도 770명의 졸업식을 연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서울 노원평생학습관#문해 교육#김현정 할머니#정정임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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