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지진으로 지반이 늪처럼 물렁해지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행정안전부 활성단층조사단 소속 부산대 교수팀은 진앙 주변에서 물과 진흙이 땅 위로 솟구쳐 오른 현상이 지진에 의한 액상화로 추정된다는 분석 결과를 19일 내놓았다. 지진 발생 닷새 만에 규모 3.5와 3.6의 여진이 잇따라 발생한 가운데 포항 200여 곳에서 액상화 징후가 관측돼 포항 시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액상화가 진행되면 지반이 물러지고 물러진 지반이 다져지는 과정에서 건물이 파손되거나 구조물이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도로 하수관 등 도시기반기설이나 멀쩡해 보이는 건물이 약한 강도의 여진에도 내려앉거나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다. 액상화 현상은 강진(强震)이 발생한 이후 나타나는 대표적 2차 피해로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1964년 니가타 지진으로 나타난 액상화를 계기로 지진 분포도는 물론이고 액상화 위험도 지도를 만들어 전국 지자체에 배포하고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정부가 이곳에 건축물을 지으라, 말라 규제하지는 않는다.
액상화 가능성이 제기되자 정부는 행안부 활성단층조사단과 기상청을 중심으로 굴착과 시추작업을 통해 액상화 여부에 대한 정밀조사에 착수키로 했다. 땅에 구멍을 뚫어 분석을 해보지 않고 육안으로 관측된 샌드 혹은 머드 볼케이노(모래나 진흙이 솟구치는 현상)만으로 액상화를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진으로 인한 액상화 현상으로 보려면 첫째 강진이 있어야 하고, 둘째 땅속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 모래나 진흙인지를 규명해야 한다. 규모 5.4는 우리에겐 충격적인 강도이지만 강진은 아니다. 성급하게 액상화로 단정 짓고 과도한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더욱이 액상화가 문제가 된다 해도 주로 해안가에 지어진 건축물에 해당되는 만큼 당장 모든 건물이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지진과 같은 대형 재난은 정부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다. 몇 년 전 소방방재청이 정부 시추 조사망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해 전국 액상화 재해도를 만들었으나 공표하지 못했다. 시추 과정 없이 DB를 근거로 만들어서 정확도가 떨어지는 점도 있었지만 자기가 사는 ‘땅속 사정’을 알게 된 사람들이 반발할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참으로 한국적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도 지진 위험이 확인된 만큼 포항 지진을 계기로 땅속을 알기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지하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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