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우경임]교육은 없고 표만 남은 교육정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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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정책사회부 기자
우경임 정책사회부 기자
서울시교육청이 내년 서울 초등교사 임용시험 선발 인원을 당초 예고 인원(105명)보다 대폭 늘린 385명으로 발표한 13일,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직접 브리핑룸 단상에 섰다. 그는 “시험 준비에 매진해야 할 시간에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수험생들에게 송구한 마음이 크다”고 사과했다.

조 교육감을 오랫동안 보좌한 측근이나 단체협상에 나섰던 노조 관계자나 ‘90도 폴더’ 인사를 받은 교사나 모두 한결같이 “그는 선하다”고 한다. 교육감으로서, 선생님이 되려고 어렵게 교대에 입학하고도 ‘임용절벽’ 앞에 선 교대생들을 매정하게 외면할 수 없었을 터다. 그런데 그의 이런 선의에 고개가 선뜻 끄덕여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 일이 또 있다. 서울 강서구 옛 공진초 부지의 특수학교 설립 논란이 번지자 조 교육감은 라디오에 나와 “(한방병원과 특수학교를) 반반(半半)씩 지을 수도 있고…”라고 말했다. 시교육청 관계자가 “검토한 바 없다”고 바로 부인했지만 강서구민과 특수학교 부모의 표를 ‘반반’이라고 계산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이었다.

시교육청은 한방병원 부지를 내어 줄 권한이 없다. 오히려 양측의 갈등만 증폭시킬 발언이었음은 물론이다. 조 교육감은 7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특수학교 설립에 주민 반발도 심하고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변의) 우려도 듣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 교육권을 위해 특수학교 설립만은 미루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의 초심을 배반한 땜질 증원 결정이나 특수학교 ‘반반’ 생각은 ‘정치적 선의’ 때문이라는 것 외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시교육청은 부쩍 교원단체나 학교 비정규직 노조, 교대생 등 특정 집단의 목소리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년 6월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표심 잡기’와 무관치 않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교육계 관계자는 “정당 추천이 없는 교육감 선거는 후보가 난립하다 보니 20% 안팎의 득표율에서 당락이 갈린다”며 “조 교육감이 ‘조직’의 마음만 잡으면 재선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가 늘어난다고 아이가 더 태어날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딱 서울교대 졸업생만큼 선발 인원을 늘렸다. 곧 더욱 가파른 임용절벽이 찾아올 게 분명한데도 폭탄 돌리기를 한 거다. “서울시교육청이 서울교대청이냐”는 비아냥거림이 들린다.

‘조직되지 않은’ 일반 국민은 교사 증원에 분노한다. 정부가 실패한 교원 수급 정책의 대가를 세금을 내는 국민이 치르게 생겼다. 이런 정치적 결정의 가장 큰 피해자는 투표권이 없는 학생일 것이다. 교사 인건비와 연금을 대느라 고정비용이 늘어나면 학교 시설 투자부터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조 교육감이 교사 증원이 아니라 특수학교 설립에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했다면 대다수 국민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을 게 분명하다.

장기적인 계획과 효과 분석을 바탕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이 선거를 앞두고 표 계산으로 왜곡되는 일은 수도 없이 보았다. 교육 정책은 타협이나 절충의 문제가 아니다. 2014년 6월 당선 직후 조 교육감은 한 인터뷰에서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함부로 조령모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초심대로 ‘백년지대계’를 이야기해야 표심이 응답할 것이다.
 
우경임 정책사회부 기자 woohaha@donga.com
#서울 초등교사 임용시험 선발 인원#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논란#백년지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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