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자연적’이란 말은 ‘윤리적’이란 말과 별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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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윤리적 기준을 갖고 선택하지는 않는다. 자연은 그저 자연일 뿐!―‘다윈의 식탁’(장대익·바다출판사·2014년)

“강간도 적응인가?” 책은 불편하고도 불편한 쟁점으로 문을 연다. 남성의 강간 행위도 진화적 적응의 결과인지에 대해 ‘그렇다’라는 ‘리처드 도킨스 팀’과 ‘아니다’라는 ‘스티븐 제이 굴드 팀’이 치열하게 맞붙는다. 과연 강간이 성욕이 주원인인 ‘성’폭력인지, 학습된 문화적 행동으로 일어나는 성‘폭력’인지에 대해 학자들의 시각차는 좀처럼 좁혀지질 않는다. 두 진영은 서로의 주장에 대해 “이데올로기일 뿐 과학은 아니다”라며 비판한다.

보통 사람들은 ‘A는 자연적인 것이다(본성이다)’라는 말을 ‘A는 해도 된다’ 또는 ‘A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저자를 비롯한 주류 진화론자들이 오해를 받는 이유다. 진화론자들이 ‘강간은 (진화적) 적응이다’라고 할 때 강간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실제 모습이 어떤지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응책을 논의해보자는 것이다.

사실 법과 제도는 ‘본능’을 제약하려는 것투성이이고, 그것이 법과 제도의 본질이기도 하다. 사람에게는 싫어하는 사람을 죽도록 때리고 싶은 본성도 있고, 스스로 자제하지 않으면 술과 마약에 중독돼 버리는 성향도 있다. 이런 ‘자연적’인 것들을 막는 제도를 ‘부당하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진화론자들도 “본성을 잘 억제시키려면 본성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그럼에도 ‘자연적이다’라는 말의 어감은 강력해서 아직도 부족한 느낌이다. ‘숭고한 대자연이 부여한 본성이 그렇게 추할 리 없다’라는 인식은 강력하다. 그럴 땐 노자 도덕경을 보자. ‘천지불인(天地不仁).’ 자연(천지)은 인자하지 않다. 저자의 표현으로 바꾸자면 “자연은 여성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성 편도 아니다. 자연은 그저 자연일 뿐!” 정도 될 것 같다. 윤리는 자연이 아닌 인간의 일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본성’을 거스르는 데서 시작한다.

도킨스 팀과 굴드 팀이 싸운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그래도 ‘진화론’을 인정하는 틀 안에서 싸운다. 그러나 진화론을 부정하는 한국창조과학회라는 곳도 있다. 진화론이 대중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지는 않은 것이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자연적#윤리적#장대익#다윈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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