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강요된 회식보다 혼밥의 즐거움 찾는 세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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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 보면 싫어하는 것도 꾹 참고 먹어야 할 때도 있지. 그것도 자신이 결정하는 거야, 남이 그 결정의 자유를 빼앗을 권리는 없어. ―‘고독한 미식가2’(다니구치 지로·이숲·2016년) 》
 
재작년 기준으로 국내 ‘나 홀로’ 가구(518만 명)는 전체 가구의 27.2%에 달한다. 이 무렵부터 1인 가구는 국내에서 4인, 2인 가구를 제치고 가장 흔한 유형의 가구로 자리 잡았다. 가구 구성 변화에 맞물려 지난해부터 혼밥(혼자서 밥 먹기)과 혼술(혼자서 술 마시기)이 우리 사회를 설명해주는 키워드로 급부상했다.

그 사이 우리 사회는 한동안 어색한 것으로 여겨졌던 혼밥을 이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차츰 변해 가고 있다. 각종 문화 콘텐츠에서 혼밥은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개인이 온전한 공간과 시간을 향유하며 자신을 위로하는 행위로 해석하는 시각도 보인다. 이 같은 혼밥 예찬의 문을 열어젖힌 작품이 만화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다.

만화는 수입물품 유통업자인 주인공 고로가 혼자 식당을 찾아가 밥을 먹는 내용이 전부다. 기승전결로 전개되는 전통적인 스토리 작법과 거리가 멀어 일본에서도 단행본으로 출간된 1997년에는 별 반향을 얻지 못했다. 이 작품이 입소문을 탄 것은 2000년대 중반 들어서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홀로 맛있는 음식에 탐닉하며 자신을 위안하는 스토리가 독창적이라는 반응이 나오면서 드라마 등으로 재생산됐다. 자연스럽게 혼밥 열풍을 일으켰다.

이 책의 2권에는 혼밥이 가진 다층적인 의미를 섬세하게 포착한 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주인공은 부하에게 술을 강권하는 식당 내 다른 테이블을 보면서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음식의 선택권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주인공은 집으로 돌아와 ‘나는 부담 없는 마음 편한 걸 좋아해’라는 영화(오차즈케의 맛) 속 대사를 되새긴다.

사람을 만나고, 같이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즐거움 중의 하나다. 그렇지만 먹지 못하는 음식을 강권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보다 혼밥이 더 풍요로운 것도 사실이다. 혼밥 열풍 속에는 불가피성과 자발성, 고립과 자유가 혼재한다. 혼밥 열풍을 어떻게 봐야 할지는 그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고독한 미식가2#다니구치 지로#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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