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쪽지 공약’… 돈 어디에 얼마나 필요한지는 아직도 ‘미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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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들 ‘공약 가계부’ 깜깜… 수십조 투입 사업 부실검증 우려

《 대선 후보들의 정책공약집은 국민과 후보들이 맺는 일종의 고용계약서다. 국민은 공약집을 보고 각 후보의 정책을 검증해 5년간 나랏일을 맡길 대리인을 뽑는다. 그러나 올해 장미 대선에서는 계약 조건조차 제대로 알리지 않은 장밋빛 공약만 보고 깜깜이 투표를 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선이 2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제대로 된 공약집과 예산 대차대조표를 내놓는 후보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


그나마 나오는 공약의 상당수도 기존 복지제도에 따른 지급액을 늘리는 식의 ‘덧대기 공약’에 머무르고 있다. 재정·복지에 대한 큰 틀의 설계 없이 불쑥불쑥 던지는 쪽지 공약들이 장기적으로 정부 정책 전체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제목 장사만 열 올려…대차대조표는 ‘캄캄’

1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는 대선 후보들의 슬로건 수준의 ‘10대 공약’ 외에 구체적인 공약 내용이 올라 있지 않았다. 시민단체들도 구체적인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주요 대선 후보에게 △종합 질문 △유권자 10대 핵심 의제 △총공약과 우선순위 및 대차대조표 △17개 시도별 공약 수용 여부 등 45개 질문을 담은 질의서를 2주 전에 보냈지만 19일까지 후보들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

유력 후보 진영이 일부 공개한 공약 내용마저 사실 검증과 실현 가능성을 판가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국정공약 총 200개를 이행하는 데 추가로 연평균 33조 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계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에 얼마만큼의 재원이 들어가는지 보여주는 대차대조표를 공개하지 못했다. 한국정책학회는 “문 후보 측은 아동수당으로 5세 이하 아이들에게 매월 10만 원씩 지급하는 데 매년 2조6000억 원이 소요된다고 발표했지만 재원 마련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평가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문 후보가 내놓은 복지공약 이행에 연 5조∼8조 원이 들어갈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복지 공약의 소요 재원을 자의적으로 추측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안 후보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을 내년부터 30만 원으로 올리자고 제안하며 연평균 3조3000억 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산정 근거에 의문을 제기한다.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경영학과 교수는 “문 후보 측은 기초연금을 2018년 25만 원, 2021년 30만 원으로 단계적으로 올리는 데 연평균 4조4000억 원이 필요하다고 봤다”며 “후보마다 셈법이 제각각이라 누구 말이 맞는지 알 도리가 없다”고 꼬집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역시 조 단위의 나랏돈이 들어가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연도별 추진 계획조차 밝히지 않았다. 소득 하위 50% 이하 가구 아동에게 월 15만 원씩 지급하자는 공약이 대표적이다. 연간 4조2000억 원의 재원이 들어갈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이 돈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 공약 가계부 실종에 난감한 관가

이처럼 후보들의 공약과 재원 마련 대책이 허술하다 보니 다음 달 10일부터 새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에 맞춰 나라살림을 꾸려야 하는 주요 부처는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각 부처는 정부 예산 지침에 따라 5월 26일까지 기획재정부에 내년도 예산요구안을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유력 후보들의 정책이 무엇인지조차 감을 잡을 수 없다 보니 대선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이렇다 할 준비를 못하고 있다.

A부처 고위 관계자는 “예산요구서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몰라 실·국장들이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B부처 관계자는 “각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을 찾아 거기에 맞춰 준비는 하고 있지만 실제로 손에 잡히는 공약은 몇 개 되지 않아 난감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 내내 이 같은 부실 공약이 쏟아져 나온다면 최소한 내년 말까지, 최악의 경우엔 임기 내내 ‘설계도 없는 나라살림 운영’과 ‘장밋빛 공약’ 뒤치다꺼리가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종=박민우 minwoo@donga.com·박희창·천호성 기자
#공약#대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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