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퇴주잔… 촛불 종북설… 거짓정보에 속아 소모적 공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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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에 휘둘리는 여론]

 《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확산되는 유언비어는 이제 단순한 소문이나 구설의 수준을 넘었다. ‘가짜 뉴스’처럼 진위를 알 수 없는 콘텐츠로 진화하면서 가늠하기 힘든 파장을 낳고 있다. 특히 개인과 단체를 타깃으로 하는 인신공격성 유언비어는 당사자에게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안겨준다. 나아가 진영논리나 양극화와 결합하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 ‘반기문 퇴주잔 사건’


 14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충북 음성군에 있는 부친의 묘소를 참배한 뒤 퇴주잔을 묘소에 뿌리지 않고 본인이 바로 마셔버리는 것처럼 편집된 13초짜리 영상이 공개됐다. 해당 동영상은 ‘반기문 퇴주잔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순식간에 퍼졌다. 누리꾼들은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는 사람이 전통 관습도 모르냐”며 반 전 총장을 비판했다.

 논란이 일자 반 전 총장 측은 페이스북에 1분 40초짜리 전체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반 전 총장이 음복 전 술잔을 두 번 돌리고 묘소에 뿌린 뒤 다시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실제로 마신 건 음복잔이었다. 반 전 총장은 18일 “페이크 뉴스(가짜 뉴스)로 남을 헐뜯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건 대한민국 국민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 ‘촛불집회에서 경찰 113명 부상, 경찰버스 50대 파손’


 박근혜 대통령 측 서석구 변호사는 5일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에서 “광화문에서 열린 대규모 촛불집회에서 경찰 113명이 부상당했고 50대의 경찰버스가 부서졌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이날 ‘김정은 동지의 명에 따라 적화통일의 횃불을 들었습네다’라는 북한 노동신문 기사를 언급하며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종북에 놀아났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 발언은 보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됐다.

 서울 광화문광장 등에서 진행된 촛불집회 중 경찰이 다치거나 경찰버스가 부서진 사실은 없다. ‘종북에 놀아났다’는 서 변호사의 발언은 누리꾼들이 노동신문을 편집해 만든 가짜 뉴스에 기반을 둔 것이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통일부 확인 결과 해당 내용이 담긴 노동신문 보도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 ‘문재인 전 대표가 김정일에게 편지를 썼다’


 지난해 12월 인터넷 카페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북한 김정일에게 썼다는 설명이 붙은 편지글이 게시됐다. 편지에는 김정일의 건강을 염려하는 내용과 ‘북남이 하나되어’ 등의 표현이 있었다. 카페 회원들은 “만천하에 알려야 한다”며 SNS로 유포했다. 문 전 대표를 ‘간첩’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당 내용의 편지는 박근혜 대통령이 2005년 작성한 편지다. 2002년 방북의 답례성이다. 기본적인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종북몰이를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 ‘광주시에 인공기가 펄럭인다’


 3일 보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 ‘광주시 중앙로 가로등에 걸린 인공기, 북조선 전라공화국’이라는 글과 함께 인공기 사진이 올라왔다. 글에는 ‘광주에서 인공기가 펄럭인다’ 등의 내용과 함께 호남을 비하하는 악성 댓글이 달렸다. 이 글은 온라인을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사진 속 인공기는 광주시와 무관했다. 해당 인공기는 ‘2014 인천 아시아경기’ 당시 경기 고양시 종합체육관 앞 가로등에 게양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사망’


 지난해 6월 30일 갑자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망설이 퍼졌다. ‘엠바고 상태이며 오후 3시경 발표 예정’이라는 그럴듯한 설명도 붙었다. 이날 삼성그룹 관련주 거래량이 급증하고 주가는 요동쳤다. 다음 날 삼성전자는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 의뢰 진정서를 제출했다.

 수사 결과 미국에 거주하는 최모 씨가 보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 조작된 사망 기사를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경찰은 최 씨를 전기통신기본법 등의 혐의로 입건하고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수배했다.

○ ‘성주 참외 사드(THAAD)세요’


 지난해 7월 정부가 경북 성주군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전자파 때문에 참외가 죽는다’, ‘사드 전자파로 암이나 백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빠르게 확산됐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드는 해발 400m 고지대에서 상공을 향해 직진 전파를 발사해 주민들이 전자파에 노출되거나 농작물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립전파연구원은 사드 전자파로 꿀벌이 없어지고 참외 꽃이 수정을 못해 성주 참외가 사라질 것이라는 괴담도 “일부 연구 결과가 와전된 것”이라고 밝혔다.

○ ‘해외 정치학자, 한국 탄핵운동과 시위 비판’


 지난해 11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영국과 일본 등 해외 유명 정치학자들이 촛불집회를 비판했다’는 글이 돌았다. 박 대통령 지지자들은 “국내 언론이 이런 내용을 의도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 “외국에서 바라보는 객관적인 촛불집회 평가”라며 SNS 등으로 유포했다.

  해당 기사에 등장하는 영국의 정치학자 아르토리아 펜드래건은 일본 애니메이션 ‘페이트’ 시리즈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일본의 정치학자 히키가야 하치만도 애니메이션 ‘역시 내 청춘 코미디는 잘못됐다’의 남자 주인공 이름이다. 해외 학자가 촛불집회를 비판한 사례는 보도된 바 없다.

김배중 wanted@donga.com·허동준·박성진 기자
#반기문#가짜#페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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