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카드’로 中 압박… 기존질서 흔드는 ‘아웃사이더 외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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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만총통과 통화 파장

 “트럼프가 대선 캠페인 때처럼 미묘한 외교 문제에도 기존 질서를 깨는 수(手)를 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일 대만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통화를 하면서 1979년 지미 카터 행정부 때부터 지켜오던 ‘하나의 중국’ 원칙을 뒤흔들자 CNN은 이같이 분석했다.

 트럼프가 대선 기간부터 예고했던 전방위 대중(對中) 압박의 신호탄을 대만 총통과의 통화라는 지극히 트럼프다운 방식으로 쏘아 올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환율 문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해킹 등 사이버 보안, 대북제재 이행 등 주요 이슈마다 미국과 갈등을 빚어 온 중국을 대상으로 양안(兩岸) 문제라는 새로운 압박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즉각 진의 파악에 나섰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3일 베이징에서 열린 ‘2016년 국제 형세와 중국 외교정책 토론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대만 측이 일으킨 ‘작은 행동’으로 국제사회에 이미 형성돼 있는 ‘하나의 중국’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의 대(對)아시아 외교의 파탄 위험까지 무릅쓰며 중국 압박에 나섰다”며 이번 통화가 반중(反中) 성향 외교 참모들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특히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됐던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2일 통화가 이뤄진 시점에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나오는 장면이 목격됐다. 그는 올해 1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새 행정부는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을 허용해야 한다”며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대만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일부 공화당 의원도 트럼프 당선인의 결정을 지지하고 나서 파장이 단순히 트럼프의 돌발적이거나, 일회성 정치 이벤트로 그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트럼프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처럼)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나, 핵협상을 하겠다며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대화하는 것보다는 대만 차이 총통과 대화하는 게 더 낫다”고 지지를 표명했다. 피터 킹 하원의원도 “차이 총통과 역사적인 통화를 한 트럼프 당선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는 중국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가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서 각종 국제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외교 파트너인 중국을 대상으로 전략적인 고려 없이 돌발 행동을 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트럼프가 취임도 하기 전에 중국과의 대형 외교 분쟁을 촉발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미중 관계의 판을 완전히 깨진 않을 것이라는 해석도 없지 않다. 무역 역조 해소 등 향후 중국과의 줄다리기 협상을 앞두고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사업가 출신 특유의 승부수를 던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통화 결정을 비판하면서도 “트럼프도 우리가 북핵 문제 해결 등 중국과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차이 총통과 통화한 것은 트럼프가 소유한 ‘트럼프오거나이제이션’의 대만 사업을 위한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정원찬(鄭文燦) 타오위안(桃園) 시장이 9월 자신을 트럼프의 ‘판매 대사’로 소개한 샬린 첸 씨와 만나 타오위안 국제공항 인근의 개발 사업을 논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 내용을 3일 소개하면서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다. 영국 가디언도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첸 씨가) 자신을 트럼프와 관련돼 있다고 소개하고 투자 계획을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오거나이제이션 측은 “트럼프호텔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대만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며 트럼프가 대만에 사업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는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가디언은 “(이번 사건으로) 트럼프의 사업제국과 미국 외교정책 사이에 이해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트럼프와 대만 사이의 사적 관계가 존재한다면 향후 미중 관계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 한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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