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연구중심대학… 소수정예교육으로 글로벌 인재 양성

유덕영기자 입력 2016-11-25 03:00수정 2016-11-2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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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한국 미래과학교육 100년 준비하는 포스텍
한국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며 출범한 포스텍이 다음 달 3일 개교 30주년을 맞는다. 포스텍은 포스코의 파격적인 지원과 우수한 교수진 및 학생을 바탕으로 이공계 최고 명문대로 성장했다. 사진은 포스텍 전경. 포스텍 제공
 21세기 과학 한국을 이끌어갈 세계적 이공계 대학을 목표로 1986년 출범한 포스텍(POSTECH·포항공대)이 다음 달 3일 개교 30주년을 맞는다. 한국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한 포스텍은 포스코의 파격적인 지원 아래 첨단 교육연구시설을 갖췄고, 우수한 교수·학생들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특히 포스텍은 지방에 설립됐다는 불리함을 극복하고 짧은 기간에 명문대로 자리를 잡았다. 또 탁월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국민과 정부에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재인식시키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5년 8월 17일 포스텍 착공식에서 악수하고 있는 박태준 설립이사장(오른쪽)과 김호길 초대 총장. 포스텍 제공


○ 박태준의 ‘교육보국’ 철학으로 설립


 포스텍 노벨동산에 있는 고 박태준 설립이사장(1927∼2011)의 조각상에는 ‘강철거인 교육위인(鋼鐵巨人 敎育偉人)’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세계적 거장인 중국 조각가 우웨이산(吳爲山) 교수가 “젊은이들이 박 이사장의 정신을 본받게 되기를 염원한다”는 뜻에서 새겼다.

 이렇게 포스텍은 국가 산업을 이끌 최고의 이공계 대학을 만들겠다는 박 이사장의 교육보국(敎育報國) 철학과 이에 따른 파격적인 지원 아래 성장했다. 박 이사장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을 통한 산업의 고도화가 절실하고, 자주과학과 자립기술이 중요한 과제라고 여겼다. 이를 위해 과학과 첨단 기술 분야의 인력 양성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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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박 이사장은 당시 공대 교육으로는 이를 이루기 어렵다고 보고 고급 두뇌 수요에 대처하기 위한 인재확보 방안으로 대학 설립을 구상했다. 당시 이론 위주의 이공계 교육, 지나치게 많은 교수 1인당 학생 수, 미흡한 산학협동 등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신설하려는 대학에서는 운영 방법을 쇄신하기로 했다. 대학의 규모와 학생 수를 줄여 소수 정예로 대학과 산업체, 연구소가 유기적으로 협동하는 연구중심 대학을 가장 적합한 모델로 삼았다.

 박 이사장은 1986년 개교 기념사에서 “산업의 선진화와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첨단 기술력의 확보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으며, 산업체-연구기관-대학이 유기적 협동으로 상호 발전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구상으로 연구중심 대학을 설립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포스텍 설립이 추진되면서 당시 연암공전(현재 연암공대) 학장으로 있던 고 김호길 박사(1933∼1994)가 초대 총장 후보에 올랐고, 김 박사의 의지와 추진력을 높이 산 박 이사장이 김 박사를 초대 총장으로 선임했다.

 세계적인 명문인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를 모델로 소수정예 연구중심 대학을 세우겠다는 박 이사장의 구상은 김 총장이 구체화했다. 김 총장은 “학생 수는 적게, 교수는 많이 모집해 교수들의 강의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연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박 이사장은 김 총장에게 대학 운영에 대한 전권을 위임했다.

 김 총장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수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서 필요하다”며 방사광가속기 건설을 제안했고, 박 이사장이 결단을 내리면서 포스텍 설립 2년 만인 1988년에 약 1500억 원을 들여 방사광가속기 공사에 착수했다. 1994년 세계에서 5번째로 3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완공됐다.

○ 우수 교수·학생 확보하며 명문대로 성장

 포스텍은 설립 당시부터 우수한 교수 확보에 역점을 뒀다. 설립 당시 설립심의위원회는 미국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과학자를 집중적으로 초빙하는 데 나섰다. 이는 대도시 선호가 높은 한국에서 지방에 위치한 소규모 신설 대학에 기존의 대학 교수들을 초빙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 총장 등은 미국에서 한국인 과학자들과 수차례 간담회를 갖고 개별적 접촉을 하면서 “남은 생애를 조국을 위해 일하자”고 설득했다. 이런 노력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던 과학자들이 포스텍 교수를 맡아 귀국했고, 지방대 부임을 주저하던 젊은 교수들도 속속 합류했다.

 당시에는 교수진 전체를 박사학위 소유 학자로 채우기 쉽지 않았지만 포스텍은 개교 초기에 전원 박사학위를 가진 석학 60여 명을 교수로 확보했다.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들이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국내 과학계에도 큰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

 김 총장은 개교 이후 최초로 학생을 모집하면서 지원 자격을 당시 학력고사 성적 280점(320점 만점) 이상으로 제한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학생이 전혀 입학하지 않으면 교수들이 연구만 하겠다는 각오로 배수진을 친 것.

 하지만 학생 모집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첫해 입시에서 경쟁률이 2.2 대 1, 학력고사 평균 300.6점(320점 만점)이었다. 당시 일류 명문대에 충분히 갈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입학생의 57%는 출신고의 반대를 뚫고 포스텍에 소신 지원했다.

 포스텍은 1991년 첫 졸업식(대학원은 1990년)을 거행한 이후 지금까지 학사 6891명, 석사 7417명, 박사 3319명 등 총 1만762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들은 국내외에서 대학교수, 기업 간부,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 연구원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소수의 영재를 모아 질 좋은 교육으로 국제적 수준의 인재를 양성하자는 건학이념에 따라 포스텍은 학부에서 매년 320명의 인재를 선발해 수준과 강도가 높은 교육을 하고 있다.

 포스텍은 2010학년도부터 줄 세우기식 평가보다 학생의 잠재력을 정성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학생부종합전형(당시 입학사정관제)으로 모든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학부생 연구 참여 프로그램, 2년제 기숙대학(RC), 신입생 대상의 멘토링 프로그램(SMP·Student Mentoring Program) 등 소수 정예만이 가능한 학생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포스텍의 큰 장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포항=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포스텍#박태준#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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