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진의 오늘과 내일]반환점 돈 창조경제와 칠리콘밸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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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산업부장
박현진 산업부장
경기 성남시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이달 17일 열린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 행사장. 해외 스타트업(초기 창업기업)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이번 행사에는 예선을 통과한 78개 팀이 결선 무대에 올라 21일까지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행사를 공동 주최한 미래창조과학부가 이번 행사를 위해 벤치마킹한 해외 사례 중 하나가 ‘칠리콘밸리(Chilecon Valley)’였다. 칠레와 실리콘밸리의 합성어로 칠레 정부가 기술력 있는 해외 벤처기업을 대거 유치하겠다는 목표 아래 출범시킨 국가 프로젝트다. 칠레처럼 해외 스타트업 유치를 통해 한국에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벤처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게 이 행사의 취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핵심 경제 키워드인 창조경제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미래부 관료들은 칠리콘밸리의 다른 면을 더 주목하는 듯했다. 이 프로젝트는 칠레에 기업가 출신인 우파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던 2010년 출범했다. 2013년 12월 미첼 바첼레트의 대통령 당선으로 중도 좌파 정권이 들어서자 많은 전문가는 이 프로젝트의 생명력을 의심했다. 예상은 빗나가 칠리콘밸리는 좌파 정권 아래서 더욱 번성해 갔다.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칠레 경제의 희망을 일구고 있는 칠리콘밸리를 드러내 놓고 부러워하는 미래부 관료들까지 있다. 이명박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녹색성장 정책이 현 정부에서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된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인지 미래부 관료들의 관심은 온통 다음 달 시작될 국회 국정감사에 쏠려 있다. 몸집이 더욱 커진 야당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창조경제 정책을 도마에 올려 난도질할 것 같은 신호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고 한다. 국정감사에서 잘못된 부분을 질타하는 것은 국회의 책무다. 하지만 정치적 의도가 가미된 질책은 자칫 본질마저 다치게 할 수도 있다. 여야 어느 쪽에서 집권하더라도 다른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겠지만 창조경제의 방향성을 쉽게 부정하긴 어렵다. 제조업 등 전통 산업이 정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각국은 스타트업 벤처기업들이 캐고 있는 신성장동력에 희망을 걸고 있다. 칠리콘밸리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에서도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따라잡으려는 듯 ‘테크밸리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지난해 말 인도 벵갈루루,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중국의 베이징을 세계에서 창업하기 좋은 10대 도시로 선정했다. 창조경제에 시동을 건 지 몇 년이 지났지만 한국의 도시는 아직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한국에서도 창조경제의 거점으로 창조경제혁신센터가 2014년 9월 처음 선을 보였다. 2년 동안 18개 센터가 문을 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혁신센터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4·13총선 기간에 혁신센터를 방문한 데 이어 올 하반기에도 투어가 예정돼 있어 관계자들은 벌써부터 준비하는 데 부산스럽다. 26일에는 혁신센터 2년을 맞아 성공 스토리를 테마로 한 ‘2016 창조경제혁신센터 페스티벌’이 한양대 서울캠퍼스에서 열린다.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박 대통령의 혁신센터에 대한 애정은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집권 기간 동안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바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현장에서는 성과를 부풀려 포장하려는 욕구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창조경제 정책이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동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치적 쌓기’로 변질될 수 있는 위험성을 그 어느 때보다 경계해야 할 시기다. 그래야만 한국에서도 칠리콘밸리와 같은 생명력 있는 창조경제의 모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박현진 산업부장 witness@donga.com
#스타트업캠퍼스#칠리콘밸리#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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