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탈출 꿈꾸다 ‘편백나무 노다지’ 캐… 농촌은 창업 요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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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농·6차산업]
전남 장성 백련동편백농원 청년농민 김진환씨

백련동편백농원 김진환 팀장이 편백나무 잎에서 추출한 기름으로 만든 화장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 팀장은 편백나무로 농업의 6차산업화를 이뤘다. 그는 “청년들에게 농촌은 기회의 땅”이라고 말했다. 장성=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백련동편백농원 김진환 팀장이 편백나무 잎에서 추출한 기름으로 만든 화장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 팀장은 편백나무로 농업의 6차산업화를 이뤘다. 그는 “청년들에게 농촌은 기회의 땅”이라고 말했다. 장성=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농촌 가면 어떻게 살아요?”

전남 장성군 서삼면의 백련동편백농원 김진환 팀장(30)에게 20대 초중반의 대학생들이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이다. 대학 졸업 전에 농업에 뛰어든 ‘청년 농민’인 그가 강연 요청을 받아 대학 강단에 설 때마다 이런 질문이 나온다.

이 편백농원은 편백나무를 활용해 가구와 화장품 등을 만들고 천연 염색 등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국내의 대표적인 6차산업 성공 사례로 꼽힌다. 그 덕분에 김 팀장은 지난달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하는 ‘이달의 6차산업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학생들의 질문에는 두 가지 걱정이 담겼어요. 첫째는 영화관도 없는 시골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고, 둘째는 농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죠.”

첫 번째 걱정은 웃어넘겼다. 기차나 버스 교통편이 워낙 잘돼 있어 웬만한 시골에서도 30분∼1시간이면 영화관 있는 도시에 갈 수 있다. 문제는 두 번째 걱정이다. 시골에서 즐겁게 일하며 성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김 팀장도 그랬다. 초등학생 때인 1997년 부모를 따라 귀농한 그에게 시골은 낯선 공간이었다. 서울에서 건축 설계 일을 하던 아버지 김동석 씨(58)는 동네 사람들이 하던 대로 고추와 배추 등을 심었다. 결과는 안 좋았다. 귀농 후 7년간 수익을 낸 적이 없었다. 집안 분위기도 삭막해졌다. 당시 그의 목표는 ‘하루빨리 시골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 6차산업인으로 성장한 청년 농민

편백나무를 가지고 만든 다양한 제품들. 특유의 시원한 향을 지닌 편백나무는 항균 기능이 뛰어나 친환경 목제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장성=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편백나무를 가지고 만든 다양한 제품들. 특유의 시원한 향을 지닌 편백나무는 항균 기능이 뛰어나 친환경 목제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장성=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실패만 하던 아버지가 2007년경 밭농사 대신 편백나무를 활용할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마을 뒷산(축령산)에는 1960년대에 심어진 편백나무가 가득했다. 1960년대에는 마을 사람들이 전봇대의 재료로 팔기 위해 편백나무를 심었다. 편백나무는 특유의 향을 지녔고 항균 기능이 뛰어나다. 아버지는 편백나무로 베개와 도마 등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이 무렵 김 팀장은 막 군 복무를 마치고 광주의 한 대학에 복학했다. 원래 도시에 정착할 계획이었지만 마음을 바꾸었다. 그에게는 대수롭지 않던 인터넷 활용 능력 같은 것이 마을에서는 대단하게 여겨졌다.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면 농촌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09년에 그는 본격적으로 편백나무 사업에 뛰어들었다. 편백나무 잎을 끓여 추출한 기름으로 천연 화장품을 만들었다. 조선대, 광주여대 등을 오가며 산학협력을 했고, 그 결과 편백나무 화장품을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편백나무 숲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숲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천연 염색과 화장품 만들기로 체험 상품을 늘려 갔다. 체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농원에서 운영하는 식당과 제품 판매장을 찾는 방문객도 자연스레 증가했다. 그 덕분에 백련동편백농원은 지난해 5억7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김 팀장은 “주어진 자원만 제대로 활용해도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융합한 6차산업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 농촌, 청년에게 매력적

6차산업으로 성장하면서 지역 사회 일자리도 창출했다. 2013년에 9명이던 편백농원 근무자가 지난해에 30명으로 2년 만에 3배로 증가한 것이다. 이 농원과 거래를 하는 인근 가구도 10년 전에는 한두 곳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0가구에 이른다. 김 팀장은 특히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농업은 청년에게 매력적인 산업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어렵게 취업해서 회사에 들어가도 바로 의미 있는 일을 하기란 힘들잖아요. 하지만 농촌에선 젊은이의 아이디어가 훨씬 더 빛을 볼 수 있어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바이럴마케팅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미 5, 6년 전부터 대학 교수들을 만나 사업 아이템을 논의하고 있어요.”

농촌은 느리고 답답한 곳이란 생각은 김 팀장에게는 편견에 불과하다. 그는 그 편견만 버리면 농촌은 ‘기회의 땅’이라고 했다. 그는 창업 희망자에게 “솔직히 임차료 비싼 도시보다 농촌이 실패로 인한 위험 부담도 적고 정부 지원도 많다”고 조언했다. 이제 갓 서른 살이 된 김 팀장은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 독일 등 유럽에서 인기인 숲 유치원을 운영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편백나무 성분을 함유한 치약도 곧 내놓을 예정이다.

“제 손자, 그 손자의 손자도 이어받아 키울 수 있는 장수 농업 기업을 만들 겁니다. 그래야 계속 농촌도 젊음을 유지할 테니까요.”

장성=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농업#6차산업#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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