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프린터-사물인터넷-드론… 규제에 가로막힌 新성장산업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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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 LED램프, 낡은 규제 덫에 1년째 낮잠
신성장 사업 발목 잡는 규제

《 하수나 공기 등의 온도차를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히트펌프’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과 달리 온실가스 배출이 적다. 하지만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처럼 신재생에너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현행 소방법은 대용량 전기를 저장해뒀다 쓸 수 있는 전력저장장치(ESS)를 건물의 비상전원 공급 장치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파리 협약’을 통해 전 세계가 신기후체제 준비에 여념이 없지만 국내법은 에너지 관련 신기술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의 흐름을 뒤쫓지 못한 규제가 3D프린터, 사물인터넷(IoT) 등 신(新)산업의 날개를 꺾고 있다. 》

2010년 설립한 발광다이오드(LED) 램프 전문업체 ‘아이스파이프’는 지난해 초 80W(와트)와 110W 고효율 LED 램프를 개발했다. 60W 이하인 기존 제품보다 밝은 빛을 내는데도 전기요금을 30% 안팎이나 절감하고 램프 수명도 10배 이상 길어 당장 수만 개의 가로등 램프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이 회사는 규제에 덜미가 잡혀 판매를 시작도 하지 못했다. 현행법상 국가기술표준원의 KS인증이나 한국에너지공단의 고효율인증을 받지 않으면 판매를 할 수 없다. 문제는 두 기관 모두 60W까지만 인증을 내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이스파이프 등 관련 업계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이달 말부터 KS인증은 150W 이하까지 받을 수 있도록 바뀌지만 고효율인증은 6개월 이상 더 기다려야 한다. 아이스파이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인증을 받지 않아도 법으로 판매까지 막지는 않는다”며 “LED 관련 기술 개발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는데 법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

대한상공회의소는 20일 사물인터넷(IoT), 3차원(3D) 프린터, 드론, LED 램프 등 법적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6개 사업부문 40개 신사업을 공개했다. 이들 사업은 △사전 규제(정부 사전 승인이 있어야 사업에 착수) △포지티브 규제(정부가 정해준 사업 영역이 아니면 기업 활동 자체가 불가능) △규제 인프라 부재(융·복합 기술로 신제품을 개발해도 인증기준 등이 없어 판매 불가)라는 ‘규제 트라이앵글’에 갇혀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국내 주력산업들은 중국 경제성장률 하락과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이미 성장잠재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종 규제들이 신성장산업의 발목마저 잡는다면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IoT 사업의 경우 통신기술 및 표준에 대한 노하우가 풍부한 기간통신사업자들은 IoT용 무선센서 등을 아예 개발조차 하지 못한다. 같은 통신사업이라도 서비스기업과 제조기업에 대한 엄격한 칸막이가 쳐져 있어서다. 3D 프린터로 제작한 인공장기, 인공피부, 의수·의족 등도 안전성 인증기준이 없어 판매를 하지 못하고 있다. 하다못해 혈당 관리나 심박수 분석 등에 필요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려 해도 의료기기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임상실험 같은 까다로운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스마트센서가 부착된 비상안내지시등, 연기감지 피난유도설비 등 지능형 방재설비, 인공지능(AI)을 통한 무인 환자이송 엘리베이터 등도 안전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시장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 해외와 비교해도 후진적 규제정책

현대자동차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수소연료전지 자동차를 상용화했지만 국내에서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에 판매하는 게 전부다. 일본은 최근 수소연료전지차 시장 형성 촉진을 위해 수소충전소에서 도시가스를 원료로 직접 수소가스를 제조·판매할 수 있게 했다. 뒤늦게 수소연료전지차 개발에 나선 도요타가 직접적인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드론도 국내에서는 포지티브 규제에 따라 군사 목적이나 사진촬영 용도로만 활용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중국은 반대로 특정 구역만 드론 비행을 제한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도 원격의료와 의약품 택배에 드론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민간보험회사가 ‘토털 헬스케어’를 표방하며 건강 관리는 물론이고 피트니스, 식단 관리까지 서비스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공적보험이 일반화된 일본에서도 건강 관리, 요양, 간병 등이 보험회사 서비스 영역으로 인정되고 있다. 반면 한국에는 이런 기준이 전혀 없다. 게다가 보험회사가 자동차 사고정보나 신용정보 등을 빅데이터로 활용하는 것마저 막혀 있다.

김태윤 한양대 교수(행정학)는 “2014년 네거티브 규제 원칙, 규제비용총량제, 규제적용차등제 등 규제 시스템 개선 내용이 다수 담긴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장기간 국회에 머물고 있다”며 “글로벌 경쟁의 현장에서 뛰어야 할 기업의 손발을 묶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3d프린터#사물인터넷#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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