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종교인 과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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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인이자 발명가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두 가지는 죽음과 세금”이라고 했다. 미국 유럽 일본에서는 종교인의 납세를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 헌법 38조도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명기했지만 종교인은 소득세의 치외법권 지대였다. 1968년 이낙선 국세청장이 과세 필요성을 처음 거론했다가 종교계의 반대로 무산된 뒤 몇 차례 과세론이 불거졌지만 그때마다 유야무야됐다.

▷천주교는 1994년 주교회의 결의 후 신부와 수녀의 소득세를 원천징수한다. 대한성공회도 2012년 교단 소속 성직자의 자진 납세를 결의했다. 일부 개신교 교회와 불교 사찰도 자진신고 방식으로 소득세를 내고 있다. 반면 강하게 반발하는 기류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지난해 한 종교 단체는 “다음 총선에서 종교인 과세에 찬성하는 정당이나 의원들의 낙선 운동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종교인은 36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법령상 납세 의무가 생기더라도 소득이 적은 상당수 종교인은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점 이하이거나 극히 소액만 낼 가능성이 높다. 세수 효과보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의 기본 원칙을 보편적으로 적용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더구나 극소수이긴 하지만 일부 종교시설은 건물이 화려하고 신자들이 내는 헌금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 아닌가.

▷기획재정부는 어제 내놓은 ‘2015 세법 개정안’에서 소득세법을 개정해 종교 소득을 ‘기타 소득’으로 과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종교인 과세를 위한 세법 개정이 국회에서 번번이 무산되자 올해 1월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내년부터 과세할 방침이었지만 시행령으로 강행하는 데 따른 부담이 커지자 법률 개정 쪽으로 선회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여야 의원들이 ‘뜨거운 감자’인 종교인 과세에 협조할지는 불투명하다. 당장 새누리당은 어제 당정 협의에서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그러나 보편적 상식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종교인 비과세를 바로잡는 일을 더 늦출 순 없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벤저민 프랭클린#종교인#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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