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민경]모든 청춘이 괜찮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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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새 식구가 들어왔다. 동아일보사 차원에서 경력기자 모집이 있었고 여러 단계의 평가를 거쳐 입사한 기자들 중 두 명이 여성동아로 배치됐다. ‘경력’ 입사라도 이제 서른. 모공 하나 보이지 않는 얼굴, 그 피부만큼 탄력 있는 마음이 눈부시다. 이 젊은 후배들의 얼굴을 보는 게 요즘의 즐거움이다. 그 입으로 밥이 들어가는 모습도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불황이라는 상황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여성동아에 어떤 사람이 입사하는지 업계에선 꽤 관심이 높았던 것 같다. 여기저기서 ‘몇 명을 뽑는지’ ‘어떤 경력이 필요한지’ 물어보기도 하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업계 분위기를 전해 주기도 했다.

매체의 환경이 많이 바뀌었지만 여성지 기자는 여전히 젊은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인 듯하다. 미디어 관련에서 인문, 패션까지 꽤 다양한 학과생들이 여성지 ‘실습’을 희망하고 기자가 되는 방법에 대한 질문도 자주 보낸다. 이번에 입사한 두 명의 경력기자들은 네다섯 개의 외국어를 말하는 스펙을 만들거나 언론고시에 매달리는 대신 오로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등대 삼아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결국 여성동아로 왔다. 한 명은 패션을 전공하고 쇼핑몰을 창업해 돈도 꽤 벌었지만 여성지 기자가 되려는 꿈을 잊지 못했다. 인터넷 매체에서 프리랜서 일부터 다시 시작해 여성지 기자로서 훌륭한 포트폴리오를 쌓았다. 또 다른 한 명은 ‘천생 기자’로, 중고교 시절 글쓰기에서 거둔 성과로 대학에 합격했고 언론대학원에 입학했지만 결국 현장에서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어 기자로 돌아왔다. 화려한 이력을 가진 지원자들이 있었지만, 이들만큼 여성지 기자의 일을 즐거워하고 그 미래에 자신의 꿈을 더해 다각도로 생각해 본 지원자가 없었다.

젊지만 ‘사회 경험’에서는 나보다 풍부한 이들에게서 세상이 달라졌음을 배운다. 다른 나라 말을 네다섯 개씩 하는 스펙(도대체 이런 능력이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이란 얼마나 부조리한가. 괴기스러울 정도로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서 일류 대학과 아이비리그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인생의 목표로 정한 학생들은 또 얼마나 무모한가. 대학 입학으로 모든 것을 이룬 사람에게 더 하고 싶은 일이 있긴 할까.

하버드와 스탠퍼드대 합격 통지 메일을 위조하고 양 대학 설립 이후 최초로 졸업장을 고를 수 있는 자격까지 얻었다는 거짓말을 한 ‘천재 소녀’의 목표는 대학도 아니라 ‘합격 통지서’였다. 그러니 고작 하나보다는 몇 개 더 받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학벌중심사회의 희생자라 부르기도 뭣하다. 만우절 거짓말 같은 얘기를 믿은 건 막장 드라마에서도 이런 사건을 본 적 없었던 우리의 상상력 부족으로 돌리자. 이제 그녀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볼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게 중요하다.

이 글이 ‘아프니까 꾀병이다’라는 뜻으로 전달될까 몹시 조심스러우면서도, 몇 개라도 상관없는 합격 통지서가 아니라 꼭 그것이어야만 하는 뭔가가 있는 청춘이라면 앞 세대가 간 길을 바라보지 말고 지금 있는 곳에서 시작해 보라는 얘기는 하고 싶었다. 그것이 여성지 기자라면 당장 현장에서 일을 하면 된다. ‘놀이하는 인간’이란 개념을 제안한 문화사가 하위징아(Johan Huizinga) 식으로 얘기하면 즐거워서 일하는 사람은 의무 때문에 노동하는 사람이 상상도 못 할 창의력을 발휘한다. 다행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완고해도 달라진다. 젊은 후배들의 행운을 빈다.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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