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공사 ‘政피아 사장’ 이어 비상임이사도 黨靑출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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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36곳 ‘낙하산 인사’ 실태

낙하산 인사로 공공기관 비상임이사직을 꿰찬 인물 상당수가 여당 또는 친박(친박근혜) 성향 단체 출신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의 비상임이사직은 민간 기업의 사외이사처럼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견제하는 자리다. 하지만 정권 창출에 관여한 낙하산 인사들이 비상임이사에까지 임명되면서 공공기관의 총체적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공공기관 낙하산 잔치 여전

30일 본보 취재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지정한 ‘중점관리 공공기관’ 36곳 가운데 낙하산 비상임이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 전체 비상임이사직 6명 가운데 3명이 낙하산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총 7명 비상임이사직 가운데 3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또 그랜드코리아레저, 대한석탄공사, 한국동서발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한국중부발전은 각각 5명 중 2명이 보은성 낙하산 인사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2013년 ‘친박(친박근혜)계’ 김학송 사장 임명으로 시끄러웠던 한국도로공사는 최근 또다시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휩싸였다. 그 중심에는 김항술 새누리당 전북도당위원장이 있다. 김 위원장은 새누리당 부대변인 출신으로 도로공사 이사로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북한학을 전공해 남북을 잇는 통일 도로에 관심이 많다”는 자기소개서로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쳐 비상임이사로 임명됐다.

함께 선임된 유영준 이사는 대통령 경호실 근무와 경호안전센터 연구위원이 공개된 이력의 전부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오랜 회계 업무 경험이 있어 이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지만 도로공사 업무와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는 평가가 많다.

관련 사업을 하면서 유관 공공기관의 비상임이사로 들어간 사례도 있다. 조영재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전국시도연합회장은 지난달 한국수자원공사 비상임이사로 선임됐다. 하지만 조 회장은 공공하수도 관리 사업을 하는 대진환경개발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어서 적합한 인사가 아니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비상임이사는 인맥과 경력 관리를 원하는 정치권 주변 인사들에게 특히 매력적이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고 더 높은 자리로 옮기기 위한 징검다리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김선덕 대한주택보증 사장, 이영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이번 정부 들어 비상임이사에서 기관장으로 임명됐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비상임이사는 기관장이나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비상임이사 자리가 기관장만큼 화려하지는 않아도 하는 일에 비하면 급여 수준도 적지 않다. 비상임이사는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하면 기본급과 참석수당으로 평균 250만 원을 받는다. 1년 12번 출근에 연봉 3000만 원을 챙기는 셈이다. 2013년 ‘연봉 최대 3000만 원’ 가이드라인이 내려오기 전에는 조건이 더 후했다. 2012년 국정감사에서는 농협이 비상임이사에게 연봉 8000여만 원을 지급해 질타를 받기도 했다.

○ 제구실 못하는 ‘거수기 이사회’


기관장은 물론이고 비상임이사까지 낙하산이 활개 치는 현실은 결국 공공기관의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 공기업 임원은 “일부 이사들은 업무 이해도가 떨어져 중요 사안에 대해 토론조차 못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공기업 관계자는 “이사회에 온갖 이유를 대며 참석하지 않거나 마지못해 서면으로 대체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곽채기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권 창출 공신은 많은데 나눠 가질 자리는 한정돼 있다. MB 정부 이후 비상임이사 자리에도 보은인사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투명한 선임 절차는 낙하산 인사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인사 공정성을 위해 임원추천위원회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거치지만 국민은 그 내용을 들여다볼 수 없다. 관련법에는 임추위의 의사 결정 과정을 공개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해당 기관들은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의 예외 조항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연임을 노리는 비상임이사가 경영진 견제 역할을 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연임 금지 조항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임추위에 노조 추천인사를 포함시켜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min@donga.com·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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