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진석]지식인은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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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나라를 포함하여 어느 조직이나 붕괴 혹은 쇠락의 기운이 감돌 때 가장 분명하게 등장하는 조짐 가운데 하나는 구성원들의 이탈이다. 그런데 이 이탈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구성원들이 표면적으로는 자기가 속한 조직을 매우 절절하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절절한 걱정이 바로 이탈 현상의 암묵적 표현임을 알게 된다. 절절한 걱정은 모두 3자적 입장에서 하는 비판이나 비평으로 드러난다.

지식인의 몰락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지식인이 몰락하는 분명한 조짐은 자기가 배운 이론이나 지식의 틀을 진리화해서 주야장천 그 틀로만 세계를 보고 관리하려 덤비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식인의 몰락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대단해 보이는 지식으로 무장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진리의 대리인으로 치장해 놨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여러 가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모두 자신이 믿는 한 가지 내용만 계속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도 사실 지식인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탈해 있는 현상이다. 자신의 주인 자리를 이론이나 지식에 물려주고 정작 자기는 이론이나 지식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해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에게 사회적 사명이 있다면, 자기가 속한 세상이 전진하기 위해서 풀어야 할 문제를 발견하여 제기하고 거기에 몰두하는 일이다. 정해진 답을 찾거나 주장하는 일이 아니라, 그것들이 철지난 것임을 인식하고 아직 포착되지 않은 새로운 문제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이건 그리 복잡한 말이 아니라 그저 상식일 뿐이다. 그런데 어떨 때는 상식이 제일 어렵다. 답을 찾는 일은 논증이지만 문제를 발견하는 일은 세계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논증하는 일은 간혹 지루하기도 하지만, 이야기는 대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왜 재미있을까? 이야기 속에서는 자기가 흥미를 발동시키는 주체, 즉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신을 이탈해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지식인은 세계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 이야기 속에서 이제 새로운 문제를 포착할 수 있게 된다. 이 문제를 포착하고 푸는 과정에 개입하는 힘을 우리는 흔히 상상력이나 창의력이라고 부른다. 자신을 이탈해 있는 자기, 즉 정해진 이론이나 지식에 주인 자리를 양보한 지식인은 세계와 이야기할 수 있는 내면의 활동성을 가질 수 없다. 시중에 나도는 표현을 빌리자면, 지식을 가지고는 있어도 지혜를 발휘하지는 못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조직이나 나라가 쇠퇴의 조짐을 보일 때도 이런 이탈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럴 때는 대개 그 구성원들이 비판자나 비평가로 행세하고 참여자로 등장하지 않는다. 일류 비판가나 비평가들이 늘어나고 적극적인 참여자들이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난다면 분명 구성원들의 이탈이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탈했다고 해서 진짜 떠나는 것은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속에서 헌신한다는 착각을 하면서 그냥 기계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진정한 자기가 없고 시스템 수호자로서만 존재하는 자기가 있을 뿐이다. 자기의 주인 자리를 시스템에 양보하고, 자기는 그 자리에 없다. 이런 기계적 존재는 윤리적 미학적 헌신을 발휘하지 못하고 기능적으로만 존재한다. 내면적 활동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표면적 기능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부정부패도 이래서 심해지는 것이다.

국가가 기능적으로만 움직여서 나타나는 현상은 새로운 길을 찾지 못하고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우왕좌왕한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구성원이 남 탓으로 세월을 보낸다. 점점 각자 도생하는 집단이나 개인이 많아져서 사회적 유기성이 약화된다. 이때 부정부패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부정부패도 내용과 급에 차이가 있다. 조세와 국방은 국가 최후의 보루다. 여기에서까지 부패가 심각하다면 극단적 상황이다. 조세 제도가 뒤엉키고, 군대에까지 부정부패가 심각하다면 이는 위기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스템만 가동시키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미 내용적으로는 이탈자들이다. 이제 일류 비평가는 필요 없다. 이류라도 내면의 자발성에서 출발한 참여자나 행동가가 필요하다. 모두 위기에 더 민감해져야 한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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