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동아일보] 국립발레단장 강수진! 엄격한 잣대로 자신을 조련하다

우먼동아일보 입력 2015-03-05 19:51수정 2015-03-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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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발레를 좋아하게 된 후부터 공부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기준을 되도록이면 90점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것으로 정했죠. 매일 새벽 4시에 첫 버스를 타고 남산도서관에 갔어요. 가서 반나절은 잤지만 제 발전을 위해 매일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는 자체가 좋았어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타고난 것일까? 국립발레단장으로 만난 발레리나 강수진은 타고난 리더십의 소유자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본인은 경험을 통해 배워나간 삶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솔직하고 단호하며 시원시원하게 답변하는 국립발레단 7대 단장 강수진과의 유쾌한 만남.

1967년 서울 출생 / 1982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유학 / 1985년 스위스 로잔 발레 콩쿠르 우승 / 19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입단 / 1997년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 발레리나 / 2002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종신단원 / 2007년 존 크랭코 상 수상, 독일 캄머 탠처린(궁정 무용수) 선정 / 2014년 대한민국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 취임, ‘바덴비르템베르크’ 공로훈장 수상 / 현재 국립발레단 7대 단장, 독일 슈투트가르트 수석 발레리나
인터뷰 석상에서 마주한 강수진(48) 단장은 질문을 던질 때마다 ‘오해 없이’ 자신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답변이 조금이라도 본래 의중에서 벗어난 듯하면 “아니, 아니요”라며 정정했고, 책임지기 어렵거나 불확실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발레리나로서만이 아닌 공적인 발레단 대표로서도 자신에게 엄격할 뿐 아니라 더욱 철저한 책임감을 갖고 말 한마디까지 신경 쓰는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어이없게도 “정치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라고 묻고 말았다.
아름다움과 솔직함, 친근함에 결단력까지 갖춘 강수진 단장에게 홀딱 빠진 기분 좋은 만남을 풀어본다.
한번 한 선택은 후회하지 않아
국립발레단장에 취임한 지 1년이 됐습니다. 지난 1년은 어땠습니까.
보람 있고 행복했어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싶을 정도로 배운 것도 많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 재미도 있었고요. 물론 그동안 하지 않았던 행정 관련 일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인생은 배우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여러모로 감사한 해였습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종신 단원이자 수석 발레리나인데 그동안 한국에 올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나요.
여러 번 (한국으로 와서 일해달라는) 제의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하진 못했어요. 이번에 제의를 받았을 때도 여전히 바쁜 일정 속에 있었는데, 이번이 아니면 3년 뒤에는 더 선택하기 어려워질 것 같았어요. 지금이 적기라 생각해서 결정했죠. 새로운 예술 감독이 오면 환경 자체가 바뀌어서 단원들도 힘들었을 텐데 모두 발전하고 잘 적응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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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 겸 예술감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었나요.
저는 단원들의 발전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작품이든지 흥미를 가지고, 자신이 발전하는 걸 느끼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제일 기뻐요. 단원들이 많이 발전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봐서 좋았어요.

친화력과 더불어 빠른 판단력과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평이 나오고 있어요.
전 4남매 중 둘째예요. 어릴 때는 내성적이고 소심하며 부끄러움도 많았어요. 그런데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지금의 제가 된 것 같아요. 어린아이가 돼서 다시 태어나야 했죠. 정말 많이 울었어요. 말도 안 통하고 들리지도 않고 시기와 질투도 많이 받았죠. 그런 경험을 하면서 후천적으로 지금의 제가 된 것 같아요. 어리바리하고 순수하고 수줍음 많은 제가 점점 강한 정신력을 갖게 됐고, 경험을 많이 하면 할수록 강해졌던 것 같아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한번 한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아요. 그 순간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에요. 실수할 수도 있어요. 저도 엄청나게 실수하고 선택을 잘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잘못된 선택도 제가 한 것이니까 책임도 져야 하는 거죠. 그러면서 배우는 거예요. 실수하지 않으면 배울 수가 없어요. 그걸 자책하지 않아요. 그때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삶의 방식이에요. 거창한 꿈을 꾸기보다는 오늘 하루, 이 상황에서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거죠.

처음부터 발레가 그렇게 좋았나요.
아니요. 부모님이 권해서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워낙 늦게 시작해 처음에는 잘하지 못해서 하기 싫었어요.

처음에는 한국무용을 했는데 발레로 바꾼 건 발레가 더 좋았다는 의미 아닌가요.
그건 맞아요. 한국무용으로 시작한 것은 저만의 색깔을 갖는다는 면에서는 참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결정적으로 발레가 좋아진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무용 선생님의 영향이 커요. 참 예쁘게 생기셨는데, 그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했죠(웃음).

힘든 외국 생활 ‘고집’ 유전자 덕에 견뎌내
자연인 강수진은 어떤 사람이에요?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남성적인 면도 있을 것 같아요.
하하하. 그래요? 제가 고집이 좀 세요. 자존심도 세고. 진주 강씨와 구씨 모두 고집이 세다고 하잖아요. 저희 부모님도, 외할아버지(‘한국의 로트레크’로 불리는 화가 구본웅 선생)도 그랬고요. 그 영향을 받아선지 외국 생활이 혼자 견디기엔 정말 힘들고 어려웠지만 뭐라도 배우지 않고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힘들면 언제라도 돌아오라고 하셨지만요. 원래 무엇을 하나 하려고 마음먹으면 꾸준히 하죠. 성향은 전형적인 한국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맘이 변하지 않더라고요. 후배들을 이런 마음으로 많이 가르치기도 했어요.

갈등이 생길 때는 어떻게 하나요.
사람에 치이면서 배운 것이 있어요. 사회생활을 해보니 제 맘이 나쁘지 않다면 다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제게 나쁘게 한 사람이 있지만 저도 그렇게 하지는 않아요. 상대를 많이 이해하고 또 배려하려고 노력했어요. 제 의견만 주장하지 않아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만 무조건 그 의견을 따르지도 않아요. 그 안에서 제가 결정하죠. 사람은 다 똑같아요. 결국은 전해져요. 동료들과의 사이도, 선후배 관계도 좋아요.

낯선 곳에 적응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죠.
외로움과 고독함이요. 처음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발레는 두 번째였어요. 생활 자체를 할 수 없었죠.

어떻게 견뎠나요.
아까도 말했지만 자존심과 고집이 좀 있어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고국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어요. 뭐든지 할 수 있는 걸 하자, 생각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연습밖에는 없었어요. 그렇게 하니까 결국은 되더라고요. 하면 된다는 걸 깨닫고 계속했죠. 인복도 많았던 것 같아요. 특히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의 마리카 교장선생님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할 때 저를 붙잡아 주셨죠. 제게 타고난 것이 있다면서 그것은 연습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셨죠.

타고난 것은 천부적인 재능 같은 것인가요.
아니요.

그럼 타고난 체형이었나요.
아니요. 그것도 아니에요. 제 비율이 발레하기에 적합하긴 하지만 전문 무용수들은 거의 그렇죠. 그분들은 그걸 ‘잇(it)’이라고 표현했는데, 제가 무대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시선을 잡아끄는 ‘it’이 느껴진다고 하셨죠.
강수진 단장은 자신을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무용수로 이해할까 봐 우려했다. 아니라는 걸 거듭 강조했다. 그가 갖고 있는 그 ‘it’은 아마도 우리가 말하는 예술적인 끼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는 작품 속에서 맡은 역할을 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창적인 인물로 창조해내는 세계 최고의 무용수로 인정받는다.

아름다운 것은 인정하나요(웃음)?
제가 예쁘다면 부모님께 감사해야죠. 좀 서구적인 외모가 유학 당시에는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지금은 많이 달라져서 동양적인 느낌이 각광받지만요. 어머니가 제게 해 주신 말씀인데, 아빠를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래요. 하하. 처음 본 순간 이 사람과 결혼하면 아이들은 괜찮겠구나, 하셨대요. 저희 부모님 결혼 사진을 보면 두 분 다 정말 멋져요. 저희 남매들도 다 잘생기고 예쁜 편이죠.

특히 드라마틱 발레, 스토리 발레를 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저에게 표현은 자연스러운 부분이었어요. 기술적인 면은 힘든 경우가 있지만 역할에 제 개성과 색깔을 입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작업이었죠. 일단 역할을 맡으면 책이나 다른 작품들을 통해 그 인물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해요. 남들은 표현하는 것을 ‘액팅(acting)’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수많은 줄리엣이 있지만 강수진의 줄리엣은 저만의, 제 자신의 줄리엣이니까요. 작품을 통해 다양한 삶을 살다 보니 병은 안 걸리는 것 같아요.
단장이 무대 서는 건 이기적, 발레리나에게 기회 줘야
가장 좋아하는 작품과 역할을 꼽는다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나요.
‘카밀리아 레이디’의 마그리트, ‘오네긴’의 타티아나를 제일 좋아해요. 어떤 역들은 할 수 있지만 스스로 거절하는 것도 있어요. 그 역을 계속하는 것이 저나 관객에게 예의가 아니다 싶을 때 그렇죠. 하지만 그 두 작품은 하면 할수록 성숙해지면서 깊이도 느껴지고 더 빨려 들어가죠.

올해 11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오네긴’으로 공연할 예정이죠.
네. 한국에서 전막 공연으로는 마지막 무대가 될 거예요.

국립발레단 단원들과 함께 무대에 설 계획은 없습니까.
단장으로서 무대에 설 수는 없어요. 그건 저의 이기심이죠. 발레리나에게 한 번이라도 더 기회를 주는 것이 단장의 역할이죠.

2016년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입단한 지 30년이 되는 해인데 은퇴 계획을 밝혔어요. 은퇴 후 발레리나로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이 많아요. 은퇴 이후 일이 어찌 될지는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자기가 한 말에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하하.
지금은 개인 강수진이 아니니까 더욱 그래요. 물론 계획하는 것이 있지만 상황이 변할 수도 있죠. 은퇴하는 날까지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 그 일들이 선행돼야 제가 생각한 은퇴 날을 맞게 되겠죠. 그래서 오늘이 중요하고, 당장 해야 할 일들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야 상관없지만 제가 한 말이 혹여 발레단에 누가 되면 안 되니까요. 책임자로서 더 엄격해질 수밖에 없어요.

국립발레단 단장으로서 앞으로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우리나라 무용수들이 정말 발레를 잘해요. 세계에서 한국 발레를 다 알아요. 그간의 단장님들과 단원들이 잘해왔죠. 이 상태에서 제가 발전에 기여해야죠. 물론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려워요. 올해는 새롭고 다양한 레퍼토리를 많이 시도하려고 해요. 21세기의 발레단은 모든 스타일의 발레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용 외에 단원들이 가진 다양한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해요. 직접 안무해서 창작 발레를 올린다든가, 그 외의 취미로 키워온 재능이 있다면 그런 재능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요즘 세대는 정말 똑똑하고 다양한 재능이 있으니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제 역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단장님도 안무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제게는 그런 탤런트가 없어요. 그걸 알기 때문에 생각도 안 해요.

혹시 발레단을 넘어서 문화와 예술계를 위한 행정이나 정치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까.
그건 모르겠어요. 또 다른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저는 그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하겠죠. 제 성격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어요. 지금 뭐라고 답할 수 있는 말은 없어요.

Epilogue
지난해 한 시상식 리셉션에서 그를 만났을 때 내게 반갑게 건넨 첫마디는 “‘내조의 여왕’ 잘 보고 있어요. 재미있더라고요”였다. 예상외의 그녀 말을 듣는 순간 기뻤지만 한편으론 놀랐다. 아니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가 부부 토크쇼를 재미있게 본다고? 하는 생각과 더불어 저 멀리 딴 세상에서 반짝이던 별이 살며시 내려와 친근하게 내 옆에 서는 느낌이었다.

김치를 너무 좋아해서 한국에 온 것이 더 좋고 단것, 특히 너무 많이 먹어서 이가 썩을 정도로 초콜릿을 좋아하고-시간이 없어서 이 치료를 못 받고 있다고 한다 - 자신의 인생 최고 행운인 남편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 사랑하게 된다는 닭살 멘트를 소녀처럼 이야기하는 반면, 함께 일하는 주위 사람들과 편안하고 소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갑자기 벌어진 발레단의 문제들에 빠르게 대처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서 그에게 감탄하고 매료됐다. 그는 타고난 리더처럼 보인다. 물론 낯선 환경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그 자리를 수십 년간 유지하며 여전히 현역 최고령 발레리나로 활동하기까지 스스로를 훈련시킨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쉬운 길을 선택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자신에게 엄격한,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강철 나비 강수진의 내일이 몹시도 기다려지는 이유다.

기획·김지영 기자 | 글·진양혜 아나운서 | 사진·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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