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종수]이번 정권만큼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어이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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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벌써 12월, 험난했던 갑오년이 간다. 2주갑(二周甲) 전의 갑오년, 그러니까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던 120년 전의 갑오년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올해의 파장과 갈등은 대단했다. 세월호 침몰로 비롯된 아픔과 갈등은 영원히 씻어지지 않을 갑오년의 또 다른 기록으로 추가될 것이다.

오늘도 신문은 간단치 않은 소식들로 가득하다. 베링 해에서 배가 또 침몰했다는 소식, 청와대 문고리 권력의 국정 농단 이야기, 승마협회 결정이 정윤회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자 대통령이 직접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을 경질하라고 지시했다는 증언, 우리은행 행장이 외압에 의해 연임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큼지막하다.

권력이 지배력을 휘두르고 비선들이 이권을 챙긴다는 소식은 금시초문이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홍삼트리오’로 불렸던 DJ의 아들들, 노무현 대통령의 형,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이 구속된 적이 있다. 그들이 구속될 때, 민초들은 혀를 차면서도 ‘그래도 전두환 씨나 노태우 씨처럼 대통령이 직접 구속되는 수준은 우리가 졸업하는구나’ 하며 한편으로 안도했다. 이어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다른 건 몰라도 주변에 식솔이 적고 후보 스스로 공적(公的) 마인드를 강하게 다지며 성장했을 터이니 측근 비리는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대는 빗나갔다. 너무도 일찍, 그리고 어이없는 모습으로 측근들의 국정 농단 사태가 불거졌다. 아무리 사건을 권력형 게이트나 국정 관리 능력의 부재 차원이 아니라 단순한 청와대 서류 누출 사건으로 축소한다 할지라도, 대통령은 체면을 잃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권력 누수가 일찍 시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라 그런지, 사건의 시시콜콜한 내막으로 마음이 가지 않는다. 정윤회라는 사람이 항공사 보안승무원으로 근무하다 어떻게 권력의 주변으로 가게 되었는지, 박근혜 대통령은 왜 그를 비호한다는 의혹을 받는지, 문고리 3인방을 어떻게 인사 조치 할 것인지에 관심이 가지 않는다. 그보다 우리 사회 전체의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아직도 권력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이권을 둘러싼 암투와 갈등이 난무하는 모습 이상의 어떤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말이다.

어느 사회나 권력과 이권의 경쟁은 있다. 선진국이라면 그 경쟁이 각 세력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한 경쟁의 성격이 크다. 그것 없이 단순히 집권세력과 측근들이 이권의 쟁투를 벌이는 것은 후진적 광경일 뿐이다. 그것을 다스리고 규율하는 사회적 합의로서 우리 사회는 함께 추구하는 이야기를 상실한 듯하다. 지도자들이 솔직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는 함께 가꾸어가는 이야기를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뿌리 뽑힌 자’들이 득세하여 이권을 다투는 쟁투장처럼 비치기 일쑤다. 벌거벗은 암투가 난무하는 부박(浮薄)한 사막에서는 사람들이 추구할 게 ‘한탕’밖에 없다. 염치가 있건 없건 이익을 한몫 챙기려는 싸움이 가득하고, 힘센 자들이 자기 몫을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이전투구가 공공연히 벌어진다.

마이클 샌델 같은 공동체주의자들은 사회의 건강성을 묻는 질문으로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를 묻는다. 본래 인간은 원자화된 개인으로 이해될 수 없는 존재로 오직 서사적 탐색으로 공동체 내에서 추구했던 삶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 여기에 우리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각자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간(human being)이 되기는 어렵다. 그런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온통 ‘이익의 정치’에 매몰되어 갈등에 몰두할 뿐 ‘공공선(公共善)의 정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

거칠었던 갑오년을 마무리하며, 나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 태초나 대방광(大方廣)까지 내 존재의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지는 못할지라도, 내가 어떤 이야기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고자 한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갑오년#박근혜 대통령#마이클 샌델#홍삼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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