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구자룡]중국 단둥에서 느낀 분단의 서글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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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평양 메주 된장은 콩과 정제된 소금을 주원료로 한 전통 조선식 된장입니다. 한 통에 15위안(약 2500원)입니다. 평양 고추장은 매운탕 불고기 요리 등에 이용하면 더욱 맛있습니다.”(조선능라도무역총회사)

“혈궁불로정(血宮不老精)은 혈관이 막히거나 기억력이 떨어지고 심장이 안 좋을 때 좋습니다. 금강-2는 간염 관절염에 좋고요.”(조선부강제약무역회사)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마주한 중국 랴오닝 성 단둥에서는 16일부터 20일까지 ‘조중(朝中)경제무역문화관광박람회’가 열렸다. 상품전시회에는 북한에서 103개 업체가 참가했다.

17일 오전 둘러본 북한 업체 부스에서는 대부분 술 식품 의류 잡화를 전시해 팔고 있었다. 보석 공구 광물 등을 파는 업체도 몇 곳 눈에 띄었고 ‘조선삼지연창작사’는 그림과 공예품을 선보였다.

일부 부스에서는 서울 명동에 나타나도 손색없을 정도로 세련된 양장을 차려 입은 젊은 여성이 유창한 중국어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상당수 북한 부스는 전통 한복이나 제복을 입은 중년 여성들이 ‘열심히 배운 중국어’로 또박또박 말하며 고객을 맞이했다. 중국어로 말하는 것만 빼면 20, 30년 전 남한 전통시장에서 봤던 시장 아주머니들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단둥은 일제강점기 당시 ‘남만주’쯤 되는 곳이다. 전시회에 나온 북한 사람들을 보면서 남북이 분단되기 전 한반도에서 만주 땅을 오가며 물건을 팔았을 형제자매이자 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자가 중국어가 아닌 ‘남조선 말’로 말을 건네자 북한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분단된 남북한의 현실’이 드러났다. 중국의 조선족 말투가 아닌 ‘유창한 한국말’로 말을 붙이면 거리를 두는 듯했다. 남북한은 한 민족인데 뭔가 경계하는 눈빛을 주고받아야 하는 분단의 서글픔을 느끼게 했다.

‘조선 평양역전 백화상점’이라는 부스에 있던 한 남성은 “평양 기차역 맞은편 광장 좌측에 있으니 언제든지 찾아오라”며 명함을 건넸다. 기자가 ‘남조선에서 왔다’고 하면 뭐라고 할지도 궁금했다. 새삼 북한 업체 직원 가슴에 붙어 있는 김일성이나 김정일 얼굴 사진이 든 배지가 그들과의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가로 세로 3m 크기의 부스에 5000위안을 내고 전시회에 참가한 업체 정도가 되면 북한에서는 제법 내로라하는 회사들이겠지만 그 종사자들도 북한 ‘폐쇄체제의 굴레’ 속에 갇힌 민초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북한이 조금만 더 개방된 체제라면 그들의 역량은 압록강 바로 건너편의 변경도시 단둥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단둥 남부의 황금평은 북-중 양국이 2010년 함께 개발하겠다고 선언한 뒤 공동관리위원회도 만들었으나 여전히 들판으로 남아 있다. ‘황금평 경제구역’ 부스도 차려졌으나 상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북한 체제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으면 황금평뿐 아니라 나진선봉과 평양 가리지 않고 투자 상담이 이어지지 않을까.

밤이 되면 불야성의 단둥과 압록강 너머 칠흑 같은 어둠의 신의주는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신의주가 단둥보다 훨씬 더 잘살았다. 전시회에서 꿀 한 통이라도 더 팔려는 민초들은 갑갑한 체제의 벽에 부딪혀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였다.―단둥에서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북한#조중(朝中)경제무역문화관광박람회#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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