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 및 상임위원을 지낸 저자 역시 이런 형국이 안타까웠나 보다. 이 책은 한마디로 ‘족보란 무엇인가’의 완결판적 성격을 지닌다. 족보의 정의부터 발달 과정, 그리고 족보를 연구하는 보학(譜學)까지 두루 살폈다. 글도 글이지만 인용한 사료나 게재한 사진을 보면 여간 공을 들인 게 아니다.
그런데 총 4부로 구성된 책에서 족보의 개념 정리에 해당하는 1부의 1장은 솔직히 재미가 없다. 족보에 대해 배우려면 가장 기본적인 지식이라는 건 알겠는데, 너무 복잡하고 학술적이다. 머리 싸매고 공부할 요량이 아니면 대충 훑어봐도 무방할 듯싶다. 저자에겐 죄송한 얘기지만.
족보에 얽힌 우리네 사회문화사는 뭣보다 인상적이다. 사실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족보를 만든 건 17세기 후반부터의 일이다. 이때만 해도 농촌 도시를 아울러 성관을 가진 인구 비율은 50% 내외였다. 그런데 한 세기 지난 18세기 후반엔 90%를 넘는 이가 성관을 가졌다. 이 기세가 지금까지 이어진 걸 감안하면, 현재 어디 집안이라 내세우는 이들 가운데 반절은 ‘가짜’다. 삼국시대부터 있었다는 고유한 성씨들도 사실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후대에 소급해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 하나 명심할 게 있다. 조선 후기 이전만 해도 족보는 부계와 장손만 우대하는 답답한 형태가 아니었다. 고려시대 족보는 아버지 어머니 혈통을 모두 중시해 친손과 외손에 차등을 두지 않았다. 서자에 대한 차별도 심하지 않았다. 제대로 족보를 공부하고 싶거들랑 갇힌 물처럼 고루한 형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게 진짜 족보를 살리는 길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