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수]인사검증을 마치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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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 사회부 차장
김상수 사회부 차장
한 달 전인 지난달 중순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14층 회의실. 오후 10시 기자 18명이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각자 그날 취재한 내용을 하나씩 풀어놨다.

“본인이 쓴 논문을 학회지 두 군데에 발표했어요. ‘자기 표절’이죠. 또 법무관으로 군복무하면서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문제가 될 것 같은데요? 서울대 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니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 부위원장 하면서 수업도 많이 빼먹어 ‘폴리페서’ 논란도 있고요.”(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김명수가 도대체 누구야?’라는 게 교육계 반응이에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서울대 교육학과 선배인 문용린 전 서울시교육감과 가까운데 1980년대 초반에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공부할 때 옆집에 사는 사이였대요. 교육계에서는 문 전 교육감이 김 후보자를 청와대에 추천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전화해보니 ‘이번 인사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뭐, 추천했다 해도 일단 부인하겠죠.”(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이 양반 깨끗해요. 평판 조회 해보니 흠 잡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재산도 많지 않고. 나올 게 없습니다.”(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선 완전 ‘멘붕(멘털 붕괴)’이에요. 문화나 체육 쪽하고는 인연이 전혀 없어요. ‘뭥미(뭐지)?’ 이런 반응이라니까요. 전문성 논란이 있을 것 같아요.”(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동아일보는 7개 부처 장관 개각 하루 전인 6월 12일부터 종합편성TV 채널A와 공동으로 인사검증팀을 꾸렸다. 18명의 기자들이 약 3주간 인사검증 대상자들을 면밀히 체크해 나갔다. 검증팀은 재산 병역 국적 학력 논문 등 기본적인 사항부터 이념 등 무형의 문제들까지 다양하게 검증했다. 인사검증 매뉴얼을 바탕으로 각종 서류를 확보하고 발품을 팔아 현장 확인도 꼭 했다. 후보자들의 논문을 입수한 뒤 논문 표절 검증프로그램을 돌려 표절 여부를 검증하기도 했다. 제자 논문을 자신의 연구결과인 것처럼 학술지에 게재한 김명수 후보자의 표절 논란도 본보가 이 검증프로그램을 활용해 처음으로 문제제기했던 사안이다.

이 정도의 취재 인력이 인사검증을 하면 뭐 하나씩은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검증팀은 공직임무 수행에 있어서 결정적인 흠결이 아니거나 사생활에 관한 것, 배우자나 자녀 등 가족에 관한 사안들은 보도하지 않고 접었다. 검증팀이 취재한 게 10개라면 보도한 것은 2, 3개에 불과하다.

장관이 갖춰야 할 덕목 두 가지는 ‘능력’과 ‘자질’이다. 능력을 검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능력은 주로 평판 조회를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자질은 노력 여하에 따라 검증이 가능하다. 국무위원으로서 공직업무를 수행할 만한 자질을 갖췄는가 하는 것은 주로 도덕성과 직결된다. 도덕성 문제는 과거 행적을 추적하면 드러난다.

언론사와 국회 청문회의 인사검증이 ‘신상털이’로 흐른다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사생활 뒤지기가 아니다. 능력과 자질이 안 되는 인물들이 격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아서 국가 정책을 망치는 걸 막는 게 목적이다. 원래 인사검증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만 정부가 시원치 않으니 언론이 나서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높아진 검증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분을 찾기가 어렵다”고 털어놨지만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고위 공직자의 임명 기준은 더 높아져야 한다. 언론도 더 독하게 인사검증을 할 것이다. 입각에 뜻이 있는 분들은 자신이 없으면 아예 나오지 말기를.

김상수 사회부 차장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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