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가안전처, 또 하나의 면피용 재난대책기구여선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30일 03시 00분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재난 안전의 컨트롤타워로 국무총리실이 관장하는 ‘국가안전처’(가칭)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구를 통해 사회재난과 자연재해 관리를 일원화해 통합적인 재난 대응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당초 거론되던 ‘청’급보다 격상한 기구다.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 안전행정부 산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피해자 통계를 수차례 틀리고 부처 간 협업 및 소통 부재로 혼란을 부추기며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 뒤늦게 구성된 범정부 사고대책본부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해 새로운 형태의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국가안전처가 출범하면 재난 관리 이원화로 혼선을 빚었던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컨트롤타워를 국무총리 산하에 둘 경우 국가안전처장의 직위를 장관급으로 높이더라도 관련 부처를 총괄적으로 지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안행부 장관이 다른 부처를 지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드러나서 정홍원 총리를 본부장 삼아 새로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를 꾸려야 했다. 대통령경호실처럼 대통령 직속으로 군과 경찰을 비롯한 모든 유관 부서를 지휘하는 강력한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도 이 때문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의 법안심사 보고서에서 국가 재난대응 체계도의 대통령 바로 밑에 위치한 국가안보실의 역할은 어떻게 할지도 의문이 생긴다. 김장수 안보실장은 세월호 참사 발생 뒤 “국가안보실은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발뺌했지만 작년 4월 국회에 출석해 “국가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천안함 폭침 사태처럼 군사적 재난이 발생할 경우 국가안전처와 군의 역할 분담도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 후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비롯한 모든 위기관리 조직을 국토안보부(DHS)로 흡수 통합했다. 연방정부는 FEMA를 통해 사고 수습 가이드와 지원체계 구성 등 재난관리를 통합 지휘한다. FEMA는 필요할 경우 각 기관에 동원을 요청, 재난 수습에 최우선적으로 대처하는 기능을 갖췄다. 상황에 따라서는 군대까지 동원이 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관료사회의 ‘갑’이라 할 수 있는 안전행정부를 실질적으로 해체하는 정부조직 개편을 염두에 두는 것 같다. 정부 조직을 흔들어 부처 이기주의를 깨겠다는 의도이지만 대형 참사가 날 때마다 새로운 부처를 만든 것은 역대 정권마다 해왔던 일이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직전인 2003년 192명이 사망한 대구 지하철 참사 사고가 발생하자 2004년 소방방재청을 재난 관리 전담기구로 신설했다.

멀쩡히 존재하는 재난 컨트롤타워에는 ‘자연재해’만을 관리하도록 업무를 축소하고, 안행부 안전관리본부에 ‘인적·사회재난’을 맡기는 이원화로 세월호 참사 대응에 혼선을 가져온 것이 박근혜 정부다. 더구나 부처 이기주의 때문에 방재청의 재난구조 전문 인력은 안행부로 옮겨가지 못해 ‘대처 실패’는 예고된 것과 다름없었다. 현재 있는 기관을 제대로 정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새 기관을 만들어 공무원 인력과 예산만 늘렸다가 다음 정권 때 또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꾼다고 안전이 강화되지 않았듯이 국가안전처만 만든다고 국민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안전처의 신설을 국무총리실 산하로 못 박을 것이 아니라 전문가의 의견과 여론을 폭넓게 수렴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정부 여당과 힘을 모아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진력하겠다”고 했다. 역대 정부가 만들었던 재난총괄조직처럼 정부가 바뀌면 없어지는 포말조직이 되지 않으려면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한다.

국민도 안전 강화를 위해 적극 협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선진국에서 유람선을 타면 사고에 대비해 구명조끼를 입고 대피하는 연습을 시키고 승선자들은 묵묵히 따른다. 어떤 재난 컨트롤타워가 생기든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재난안전 교육을 몸이 저절로 반응할 수 있을 만큼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이 거저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평소 교육과 훈련을 통해 재난 발생에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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