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건축가 왕수 “고전 산수화 기법… 대나무 벽… 세계가 中토종파 건축 인정해줘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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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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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 받은 中건축가 왕수 e메일 인터뷰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의 올해 수상자로 결정된 왕수 중국미술학원 건축예술학원 원장. 중국인 최초로 세계 건축 분야에서 최고 권위의 상을 탔지만 그는 한번도 해외에서 작품활동을 한 적이 없는 순수 국내파다. 심사위원들은 중국 전통과 현대건축을 절묘하게 결합한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에 상당한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사진 출처 바이두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의 올해 수상자로 결정된 왕수 중국미술학원 건축예술학원 원장. 중국인 최초로 세계 건축 분야에서 최고 권위의 상을 탔지만 그는 한번도 해외에서 작품활동을 한 적이 없는 순수 국내파다. 심사위원들은 중국 전통과 현대건축을 절묘하게 결합한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에 상당한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사진 출처 바이두
상하이 엑스포 텅터우관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서 유일했던 촌락을 모델로한 전시 건물. 도시와 농촌의 조화를 표현했다. 사진 출처 중국건축뉴스망
상하이 엑스포 텅터우관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서 유일했던 촌락을 모델로한 전시 건물. 도시와 농촌의 조화를 표현했다. 사진 출처 중국건축뉴스망
세계 건축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가져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올해 수상자로 왕수(王澍·49) 씨가 결정되자 세계 건축계가 깜짝 놀랐다. 스타가 아닌, 그것도 40대 순수 국내파 중국인의 수상이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왕 씨는 해외에서 작품활동을 한 적도 없다.

그는 현재 중국 저장(浙江) 성 항저우(杭州)에서 중국미술학원 건축예술학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역시 건축가인 부인 루원위(陸文宇) 씨와 함께 ‘예위(業餘·아마추어) 건축공작실’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10일 그와 e메일 및 전화로 인터뷰했다. 먼저 수상 축하인사부터 전했다.

“세계가 중국의 현대건축을 인정한 점이 무엇보다 기쁘다. 1980년대 중국에는 현대 건축물도, 건축가도, 심지어 건축학조차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중국 현대건축이 세계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또 심사평에서 ‘왕수의 작품은 문화충돌을 초월한다’고 언급한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도처에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강자와 약자 등 수많은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나는 평소 건축은 오래 존재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건축에서의 충돌만큼은 비교적 지혜로운 방식으로 해결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해왔다. 세계 건축계가 나의 이런 건축철학을 인정해준 것이 기쁘고 고맙다.”

―‘건축에서의 충돌’은 뭔가.

“세계의 건축가들은 지금도 현대와 전통, 건축 재료와 수작업의 계승과 조화, 생태환경과 지속가능한 발전 문제 등에 대해 해결 방안을 탐색하고 있다. 또 이런 탐색이 대규모 건축이나 권위 있는 건축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심사위원들은 나의 작품을 통해 중국에서 이렇게 대규모 탐색이 진행 중이고 높은 수준으로 진행되는 데 감동을 받은 것 같다. 무엇보다 중국이 상대적으로 노동임금이 저렴해 전통 건축기법인 수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유리하다고 본다. 나의 대표 작품에는 대량의 수작업 재료와 수작업이 수반된다. 일본 미국 유럽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은 중국 건축에는 일종의 기회이고 최대한 이런 시기를 활용해야 한다.”

―서양 건축가들은 그들의 건축에 국제적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적 불평등성이 담겨 있는 시각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이번 상도 서양에서 유래했다.

항저우 샹산캠퍼스 항저우 중국미술학원 샹산 캠퍼스. 버려질 뻔했던 700만 개의 폐기와와 옛 벽돌이 옥상과 벽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 중국의 고전 산수화 기법이 현대건축 속에 녹아 있다. 산과 물을 따라 건물들이 서있다. 왕수 씨 제공
항저우 샹산캠퍼스 항저우 중국미술학원 샹산 캠퍼스. 버려질 뻔했던 700만 개의 폐기와와 옛 벽돌이 옥상과 벽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 중국의 고전 산수화 기법이 현대건축 속에 녹아 있다. 산과 물을 따라 건물들이 서있다. 왕수 씨 제공
“심사위원 대부분이 유럽과 미국 사람이고 그들이 현대건축의 기본적인 표준을 결정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내 작품에서 그런 기본적 표준을 발견하고 인정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제 서양문화권이 그들의 문화 이외의 건축물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수상 소식을 듣고 한 아프리카의 건축가가 내게 축하 편지를 보내 ‘아시아-아프리카 문화가 세계무대에 올라설 수 있게 됐다’고 말한 게 기억이 난다.”

그는 1963년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태어났다. 난징(南京)공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항저우에서 활동했다. 그의 건축 뿌리는 기와 돌 등 폐자재를 재활용한 닝보(寧波) 역사박물관과 중국 산수(山水)화 기법이 녹아있는 항저우 중국미술학원 샹산(象山) 캠퍼스 등에서 보듯 흉내 낸 서양 건축이 아닌 중국 전통이다.

―샹산 캠퍼스는 전통가옥에서 나온 폐기와와 옛 벽돌 700만 개를 사용해 지붕을 덮고 벽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또 닝보 역사박물관도 옛 벽돌 등으로 벽을 만들었다. 이런 상상력은 어디서 나오나.

“어느 날 친구가 옛날 집을 철거하는데 당(唐)대 송(宋)대 청(淸)대 벽돌들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절약은 중화민족의 전통적인 도덕이다. 전통 재료들로 집을 새로 짓는 것이 전통문화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이런 방식으로 건물을 짓는 것은 중국에서만, 아마도 저장의 동쪽에서만 가능하다. 현재 이 지역에서는 80여 종의 서로 다른 기와와 벽돌이 발견된다.”

―옛 재료를 빼면 당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건축재료는 종류가 많지 않다.

“사람이 어떤 건축물로부터 느낌을 받는 것은 건축 재료가 전부는 아니다. 어떤 재료를 썼건 작품의 완성도와는 관련이 없다. 건축에 담긴 것이 사람들에게 경험과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나는 작품에 사상과 사고를 담으려 하지 단지 ‘건축’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전통을 보호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전통을 보호하면서, 어떻게 전통이 계속 생명력을 갖고 살아있게 만드느냐다”라고 덧붙였다.

―전통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중국 역시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닝보 역사박물관 바닷가 도시인 닝보 지역의 문화적 특징 및 전통건축 요소를 현대건축 형식과 방법으로 결합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옛 벽돌과 거푸집으로 만든 시멘트 대나무로 벽을 완성했다. 왕수 씨 제공
닝보 역사박물관 바닷가 도시인 닝보 지역의 문화적 특징 및 전통건축 요소를 현대건축 형식과 방법으로 결합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옛 벽돌과 거푸집으로 만든 시멘트 대나무로 벽을 완성했다. 왕수 씨 제공
“가히 도시들이 폭격을 당하는 수준이다. 누워 있을 뿐인데 총에 맞는 격이다(l着也中槍·중국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표현으로 억울하게 당한다는 뜻). 상하이는 이미 ‘중국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소외된 도시이고 내가 살고 있는 항저우 역시 이미 절반은 산산조각이 났다. 쑤저우(蘇州)는 현대화된 큰 도로가 도시를 분열시켰다. 선전(深(수,천))은 계속 발전할 공간조차 없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고속 발전 속에 우리가 가진 옛것은 이제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런 점에서 현재 중국의 ‘옛것’은 모조리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 어떤 ‘옛것’이라도 말이다.”

―중국은 역동적인 역사를 가졌다. 당신의 성장 배경은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면 샹산 캠퍼스에는 나의 어린시절 추억이 아주 많이 담겨 있다. 어렸을 때 문화대혁명이 발생했다. 폭력행위도 발생했고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닫고 혁명활동에 참가해야 했다. 학교를 개간해 밭으로 만들어 나와 선생님 모두 농민이 됐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 농민들은 윈난(雲南)에서 온 푸얼(普이) 차와 커피를 마시면서 푸시킨(러시아 작가)과 루쉰(魯迅·중국 작가), 그리고 외국 이야기를 했다. 돌아보면 당시 운동에서 유토피아적인 성질을 볼 수 있다. 물론 실제로는 참 무서운 시대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꼬마에 불과했다. 어린이의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본 것이다.”

―본인의 성격을 말한다면….

“아이큐는 높지 않다. 단, 지혜는 조금 있는 것 같고 특이한 편이다.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에 안 갈 때 종일 도서관에 앉아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에 파묻혀 있을 때는 책을 들고 촌마을을 순례했다. 책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10년 내내 건축학과 관련된 책은 보지 않았다. 건축가이지만 내 집에 대한 설계는 생각을 거의 안 해봤고 우리 집은 여전히 1960, 70년대 모습 그대로다. 집 안 곳곳에 책과 설계도가 쌓여 있어 옆으로 살살 피해 다녀야 한다. 나와 논쟁이 붙어 이긴 사람이 별로 없다. 학생 때부터 반항을 시작했고 시련을 통해 단련됐다.”

―부인도 건축가이고 함께 건축회사도 운영 중인데….

“수상 소식을 듣고 우리 둘이 함께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없었다면 내 설계도는 땅 위의 건축물이 되지 않았고 이렇게 높은 수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때 아내의 월급에 의지해 살았다. 나는 돈을 어쩌다 벌었을 뿐이다.”

―현재 중국의 건축가에게 가장 부족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보나.

“자기 문화에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더욱 자신의 문화에 깊이 들어가 볼 것을 건의한다. 중요한 것은 가서 해보는 것이다. 토론해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국의 건축을 어떻게 보나

“현대성과 국제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이미 매우 높은 수준에 올라 있다. 서방 세계와 진행 속도가 비슷하다.”

―한국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국적인 특색을 가진 더욱 많은 당대 건축물을 봤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앞으로 어떤 건축을 추구할 것인가’라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고상한 건축가로 있지 않을 것이다. 밑으로 내려와 보통 민중 속에 있을 것이다. 건축가가 만들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런 건축물이 종종 가장 멋지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 中 건축가 왕수는 누구

―1963년 신장 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 출생
―1985년 장쑤 성 난징공학원 건축과 졸업
―2000년 상하이 퉁지(同濟)대 건축학 박사, 현재 저장 성 항저우 중국미술학원 건축예술학원 원장
―수상: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 2005년 2010년 부인 루원위 씨와 함께 셸링 건축상, 2011년 프랑스 건축 아카데미 금상 등 국제상 및 국내상 다수
―주요 작품: 상하이 엑스포 텅터우관. 닝보 역사박물관, 항저우 중국 미술학원 샹산 캠퍼스, 쑤저우(蘇州)대 원정(文正)학원 도서관 등 다수
:: 프리츠커상 (Pritzker Architectural Prize) ::


매년 인류와 환경에 중요한 공헌을 한 건축가에게 주는 상. 하이엇호텔 체인을 소유한 하이엇재단의 전 회장 제이 프리츠커 부부가 1979년에 제정했다. 오스카르 니에메예르, 프랭크 게리, 알바루 시자, 페터 춤토르, 렘 콜하스 등 세계의 유명 건축가가 상을 탔다. 일본은 단게 겐조(1987년), 마키 후미히코(1993년), 안도 다다오(1995년), 세지마 가즈요(2010) 등 4명을 배출했지만 한국은 아직 없다. 1983년 중국계 미국인 I M 페이가 수상했으나 중국 토종 수상자로는 왕수가 처음이다. 시상식은 5월 25일 베이징에서 열리며 10만 달러(약 1억1000만 원)의 상금과 메달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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